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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누 Nov 21. 2023

장수생 일기 (4): 초보 교사의 성장통

19. 09. 08.

  성장은 고통과 각성같은 통과의례를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외디푸스가 자신의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취한 것을 깨닫고 자신의 눈을 스스로 파내고서야 성장이 완료되었다는 서양의 신화가, 태어나자마자 버림받고 다른 형제들에게 죽음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이를 극복하여 한 나라를 건국해낸 주몽의 신화가 이를 증명한다.


  나 또한 그렇다. 내가 학습 내용을 체계적으로 준비해가면 수업이 잘 흘러갈 줄만 알았으나, 이틀 뒤에 있는 수학여행으로 인한 들뜸이라는 상황 변수와 개개 반의 학습자 특성이라는 교수 조건이 나의 교수 행위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저번 주 월요일에는 상당히 높은 좌절감을 겪었다. 한 반의 몇몇 아이들은 계속해서 수업을 거부하였고 또 한 반의 몇몇 아이들은 몇 차례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등을 돌리고 저들끼리 수학여행에 대한 설렘을 나누었다.


  이후 다른 선생님들과 이러한 상황에 대해 나눴던 이야기의 결론은 어느 정도는 상황 탓을 하는 게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 수업이 잘 되는 것은 나의 준비 덕도 있지만 아이들의 상태라는 통제 불가능한 조건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한다는 것, 최소 10년을 나보다 먼저 수업을 해보셨던 분 또한 나와 같은 좌절을 겪어보았다는 것.


  2-3여일 동안 혼자 괴로움도 겪고 두려움도 겪고 막막함도 느꼈다. 그러다 내가 내린 결론은 지금까지 어느정도 수업이 내 뜻대로 이뤄졌던 것은 운이 좋았던 것이니 이렇게 안 되었을 때를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겠다는 것. 방법적인 측면에서든, 좀 더 의연해지고 단단해지는 정의적인 측면에서든.


  어쨌든 내일의 수업 준비도 다 되었고 나는 내일 또 수업을 하러 간다. 내일은 아이들이 수학여행에서 돌아와서 그 여운이 모두 가시지는 않았을 것이고, 비가 와서 축축 처질 것이고, 며칠 후 추석이니 또 놀 기회가 생겨 설렘이 가득할 것이다. 이럴 땐 또 어떻게 대처해가면 좋을 지 직접 겪어보고 또 좌절해가면서 성장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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