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02. 03.
오늘부터 3일 동안의 신규 연수가 시작되었다.
사랑하는 우리 지역 교육 가족 여러분, 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토록 합격을 원했지만 그 과정이 꽤나 길어서 그랬는지 꿈같다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드디어 나도 그 말을 듣는구나, 라는 생각에 서럽게 기쁜 마음이 잠시 스쳤다.
연수의 첫 주제는 교육 철학이었다. 따스한 미소로 연수를 시작하신 교감 선생님께서는 자신을 표현하는 시를 골라 자신을 소개해보자고 하셨다. 아, 역시 여긴 국어과다, 싶었다.
내가 지금까지 마음에 품어온 시는 고정희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긴 임용 시험 준비 기간을 버티게 한 말이었다. 처음으로 남들 앞에서 소리내어 읽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작년, 임용 시험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때, 운 좋게 학교에서 일하게 되었고, 첫 수업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낭독하였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쉽지 않은 경험을 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일어서고 성장의 기회로 삼자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읽는데 어쩐지,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구절에서 목이 메었다.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지만 어쩌면 나에게 해주고싶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담담하게 읽어냈다 생각했지만 순간 흔들리는 목소리를 느꼈는지, 낭독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이 일제히 박수를 쳐주었다. 안내와 격려를 해주기 위해 했던 행위에서 내가 격려를 받았었다.
학교는 사회화 기관이다. 교과 학습을 통해 인지적 영역을 신장시킴과 동시에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생활 교육을 받으며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을 신장시켜야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특성을 인식하고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해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마샤의 정체성 유형에 기반하자면,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위기,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하고 이를 신장시키는 헌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시행착오, 실수, 실패에 관대하지 않다. 두어번의 실수만으로도 실패자, 모자람의 낙인을 스스로 찍고 두려움과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조급함을 버리고, 자신을 믿으며 꾸준히 옳은 방밥을 찾아 실행하고, 잘 안 되면 또 새로운 방법을 찾아 보완해가며 성장하는 것이다. 이 말을 좋아한다. "경험을 통해 배우고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 실패에 부딪힐 때 좌절 대신 다시 일어나 해결해보려는 노력을 하는 회복 탄력성을 지녀야한다.
교사는 학생 옆에서 옳은 방향을 알려주고, 그 곳을 등대처럼 비춰 안내해주며, 성취해낼 수 있도록 격려를 제공하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학생마다 특성과 속도가 다르니 끈기있게 학생들을 기다려주며 꾸준히 성장을 위한 자극을 제공해야 한다. 학생들의 "마주 잡을 손"이 되어주면서도 결국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손을 맞잡으며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교사는, 나의 교육 철학은 이런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또 시를 찾아보았다. 위의 시는 어쩐지 나의 고통과 비명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좀 더 따스한 희망과 응원을 주는 시를 마음에 품고 싶었다. 그러던 중 아래의 시를 발견했다.
<응원>, 나태주
오늘부터 나는
너를 위해 기도할 거야
네가 바라고 꿈꾸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그날이 올 때까지
기도하는 사람이 될거야
함께 가자
지치지 말고 가자
먼 길도 가깝게 가자
끝까지 가보자
그 길 끝에서
웃으면서 우리 만나자
악수를 하자
악수하며 하늘을
올려다 보자
부드럽고 따뜻한, 새로 시작하는 봄에 어울리는 시였다. 어쩐지 마음에 훅 들어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교감선생님께서 발표를 요청하실 때 위의 시를 읊었다. 왠지 떨렸다. 벅찬 것일 수도 있다. 항상 생각만 해왔는데 이제 정말 저 말을 해줄 수 있게 되어서.
올해 중학교 1학년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어지간하면 4년 만기를 채운 뒤 학교 이동을 할 생각이기에 어쩌면 올해 담임을 맡게 된 친구들을 졸업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길의 끝, 짧게는 1년, 조금 길게는 중학교 졸업까지 함께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3월 2일, 개학날, 그리고 학급 시간에 나를 소개하며 위의 시를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너희를 응원하고 안내해줄거야. 필요하다면 기다려줄거야. 실수하는게 당연하니 어떤 것을 더 배울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줄거야. 너희들을 힘껏 사랑해볼거야. 라는 마음을 담아서.
내일은 공직자에 대한 이해 및 학급 운영에 대한 연수를 듣는다. 연수, 여러 가지를 앞으로도 꾸준히 들을 터. 하루 하루 한 뼘씩 마음의 키가 크고, 학생들을 받쳐줄 수 있는 교사가 되고자 한다. 앞으로의 나 자신에게도 응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