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발로 걷어차기

#송사리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by 에고고 프로젝트

"TV에 한 번 나와보는 게 소원이지 말입니다."


일병 때였다. 분기마다 실시하는 부대 훈련 때문에 평소 친해지고 싶던 김병장과 한 참호에 들어가게 됐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김병장도 마찬가지. 마침 동갑내기도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짬찌' 답지 않게 할 말 다 하면서, 나름 유머러스도 한 송사리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다.


이때 다 싶어 한 술을 더 떴다. 테레비에 내 얼굴 나와보는 게 소원이라고. 진짜였다. 글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사람들을 웃기는 재주가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기왕이면 나의 끼를 공개적으로 표출하며 희열을 느끼고 싶었다. 입대 전 유병재 같은 인물에 심취해 있었기도 하고.


"얌마, 송사리 너 TV 나오는 게 소원이라며 미쳤냐!"


얼마 지나지 않아 김병장에게 핀잔을 듣게 됐다. 당시 인기였던 <슈퍼스타 K>는 인재 확보를 위해 군대를 직접 찾아 오디션을 실시했다. 당연히 우리 부대에도 참가자 신청을 받았다. 그런데 하필 내가 비번인 날에 오디션을 실시하는 것이다. 어차피 내가 최종우승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뭐하러 쉬는 날에 고생이람. 이런 생각으로 신청조차 안 했다.


그래서 혼이 났다. 나도 깜빡하고 있었던 소원을, 김병장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게. TV에 나오고 싶다면서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더니. 스스로가 좀 한심했다. 김병장 말고도 내가 나올 거라 기대했던 지인들이 좀 있었다. 부끄럽게 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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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리야 너 영상 공모전 신청해라?"

사내 TF에 참여한 선배가 명령했다. 영상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만큼 회사도 조직을 갖추고 톡톡 튀면서, 정보를 전달하고, 자기파괴적이며, 회사의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갈 영상 아이템을 공모 받는단다. 온갖 휘황찬란한 말이 가득하지만 알맹이는 없는 전형적인 구닥다리 공모전.


선배 말이 곧 법이오니, 알겠다고 했다. 다시 찬찬히 공고를 읽어보는데, TF 기간 동안 '본래 업무 배제'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아니 너무 탐났다. 부서 배치 3달 만에 일에 찌들어버린 나니까. 다만 공모전 아이디어를 냈단 이유만으로, 벌써부터 일 빼려고 한다는 핀잔을 듣지 않을까. 이런 고민도 당연히 들었고.


결과적으로 엊그제까지 공모에 참가하지 못했다. 혹시나 받을 시선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아이디어가 없어서. 스스로 끼가 있다는 생각은 여전하고, 한때 무한도전과 1박2일을 보면서 김태호, 나영석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꿈꾸기도 했다. 근데 아이디어가 없어서 업무도 배제하고 상금도 주는 공모전에 참여조차 못한다니. 이게 뭐야.


그 와중에 이런이런 아이디어는 어떠냐며 도움을 주려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지원서를 내지도 않았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딱 이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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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놓치지 않겠다고 항상 다짐하는데, 나를 놓치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만 간다. 어디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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