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성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월요일. 저녁에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좀처럼 엉덩이 붙이고 앉아 일하기 어려웠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엔 근처 카페에 가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잘 가는 카페들이 전부 월요일 휴무였다. 어쩔 수 없이 집에 있는 두유에 커피 원액을 조금 타서 마셨다. 방울토마토를 씻어 먹고, 거래처와 유관부서에서 오는 전화를 겨우 받고, 마감해야 하는 보고를 겨우 끝내니 시간은 오후 8시.
점심에 냉우동과 덮밥을 먹어 여전히 배가 불렀지만, 순간의 감각을 믿고 끼니를 거르면 뭘 더 먹기 애매한 10시, 11시쯤 배가 고플 것이다. 속지 않기 위해 순두부를 숭덩숭덩 썰어내고 방울토마토 몇 알을 마저 썰어 간장, 설탕, 식초, 참기름, 깨를 넣고 먹었다. 여름철 즐겨 먹는 간식인데, 시원한 게 새콤하고 든든하다.
8시 반. 간단한 운동복을 갖춰 입고 덴탈 마스크를 착용했다. 근처 공원엔 사람이 많았다. 장마를 앞두고 미리 강아지 산책을 나온 사람, 배드민턴 치는 신혼부부, 집에 가기 싫은 학생들 무리, 비슷한 키에 비슷한 체형을 가진 모녀들, 벤치에 앉아 쉬는 어르신.
수술 후 한 달 동안은 격한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해서 좀체 움직이지 않았던 요즘이었다. 어느새 한 달이 부쩍 넘었는데도, '오늘 좀 많이 걸었다' 싶은 날에는 배가 조금씩 당겨왔기 때문에, 쉬는 기간을 좀 더 길게 가져가야지, 생각해왔다. 해서, 러닝 대신 빠르게 걷기를 택했다.
흰 티에 검정 바지. 한 손에 휴대폰을 쥐고 에어팟을 낀 남자가 앞서 걸었다. 왠지 그를 제치고 싶었다. 따라잡기 힘들었는데 속력을 내니 추월할 수 있었다. 조금 걷다 보면 또 추월당할 줄 알았는데 어느 샛길에서 빠졌는데 다시 볼 수 없었다.
한 바퀴, 두 바퀴 돌 때마다 같은 곳임에도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목을 꺾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 있던 연인도 온데간데없고, 공 놀이를 하던 어린 자매들도 사라져 있었다. 한 바퀴 도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무게 중심이 흔들려 원치 않는 방향으로 걷거나 걸음이 꼬였다. 그럼 아차차,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하체에 힘을 주고 걷는 데만 집중한다. 후, 후, 하, 하. 호흡에 집중하면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두 바퀴 반째에 조금 지겨워져 집에 돌아갈까 고민했다. 그렇지만 모처럼 나왔는데, 제대로 하고 가고 싶었다. 몇 바퀴 돌까? 네 바퀴? 어쩐지 숫자가 마음에 안 들어. 다섯! 다섯 바퀴만 돌고 가자. 너무 힘들면 네 바퀴째부터는 슬슬 걷는 속도를 줄이자. 진짜 운동은 힘들고 지난한 세 바퀴 이후부터 될 거야.
생각보다 금세 다섯 바퀴를 채웠다. 어릴 적 오래 달리기를 할 때처럼 마음속으로 "네 바퀴...!" "지금 천왕성 선수 네 바퀴 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섯 바퀴가 머지않았습니다!!" 하면서. 귓바퀴에 흐르는 음악 소리 비트에 발걸음을 탕탕 맞춰 걸으며 신나게! 다섯 바퀴를 채웠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달이 지구를 돌듯이. 개개인의 인생도 결국은 동일한 궤적을 끊임없이 따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안에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 같은 사물도 있을 것이고, 맞은편에서 계속 마주치는 행인도 있을 테고, 잠시 눈을 돌렸을 뿐인데 다른 길로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겠지. 우리는 앞선 사람을 보고 따라잡느라 진을 빼기도 하고, 부러 옆 사람과 발맞춰 걷다가 서로의 땀을 닦아주기도 할 거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잠시 휘청거리기도 할 거고. 그럼 속으로 나만의 목표를 세워 속도를 조절해가며 계속 전진하겠지. 꾸준히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