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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달걀 Mar 18. 2017

봄이었구나

두 달 남짓. 미치도록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출근을 하고.

날짜가 가는 것도 모르게 구역질을 참아가며 피곤한 눈을 달래라며 지냈다. 그리고 모처럼만에 주말 출근이 없는 오늘 아침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낮인지 밤인지 구분 못하며 지낸지라 나는 여태 코트 차림으로 다녔고, 새벽에 나갔다 오밤중에 들어오니, 그 차림으로도 여전히 추운 겨울이었다. (동료들 옷차림도 분명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닌가.)출근하기 전에 꺼내 둔 아이의 옷도 내 기준으로 꺼내 두고 나갔었지 뭐람.


모처럼 출장을 가게 되어, 남편과 역할을 바꿨던. 내가 아이를 보내고 남편이 하교시킨 어제 아침은. 봄볕이 집안을 환하게 비추는 화사함 그 자체였다. 어두 칙칙한 내 옷장과 아이의 옷장 서랍들도 아직 겨울 옷들로 가득한데. 언제 봄이 왔지? 그리고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그냥 조끼만 입고 가면 안돼? 덥고 좀 답답해"

아... 바보처럼 그제야 시리에게 날씨를 물었다. 15도까지 올라간단다.

바보처럼 나만 겨울이었노라 부끄러웠다. 내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나의 미련함. 남편이 덥지 않겠냐고 말을 했을 때에도 춥다고 몇 번을 번복하며 여태 겨울 옷을 입혀 보낸 나였다. 젠장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거구나.


3학년이 되면 복습 좀 시켜줘야지 했는데, 꺼내보지도 못하고 벌써 1단원이 끝나버렸고. 집안 구석구석 내 손길이 닿지 못한 곳에는 몇 달째 묵은 먼지와 때가 숨어있다. 사실 과로 때문인지 갑자기 생긴 다리 통증에 몸을 아껴야 하건만. 오늘도 내일도 겨울을 정리해야 하는 숙제가 생겨버렸다. 예의 없이 봄을 맞이한 실수로. 오늘은 옷장 정리를 좀 해주어야겠고, 아이가 학교에서 무얼 배워왔는지 한 번쯤은 들여다보아야겠다.

그리고 그동안 힘들었을 나를 위한 작은 선물과 칭찬, 그리고 격려도 잊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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