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 밀러, 너무 대단하시다.
"유아적인 종속성을 버리고 선과 악, 좋고 싫음 들을 구별할 수 있는 양립적 감정을 가지게 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어떤 부모든지 자신의 어린 시절 억압 상태에서 벗어나야만 자식의 마음을 읽고 공감해 줄 수 있다."
"과대성은 자아상실에 따른 고통, 즉 우울증을 방어하기 위해 나타나며, 그 고통은 현실을 부정하는 데서 온다."
"우리는 우울증을 통해 상처가 난 부위까지 다가가지만, 한때 놓쳐버렸던 것에 관한 슬픔, 즉 결정적인 시기에 놓쳐버렸던 슬픔을 체험할 때만 그 상처가 온전히 아물 수 있다."
00 하면 깜찍 발랄하고 애교스러운 표정과 댄스, 노래에도 능한 만능 엔터테이너가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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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넌 역시나 즐겁다.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항상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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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씨, 늘 주변 사람을 유쾌하게 만드는 그 웃음을 잘 지켜가기 바라요. 내가 응원하고 있는 것 아시죠?
아마도, 20대의 나는 약간은 강박적인,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우는 캔디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분위기 메이커로서 밝게 빛나야 한다고~
내 경우를 돌이켜보자면, 불규칙한 생활습관/ 안식년/ 엄마와의 싸움/ 잦은 이직이 그러한 듯하다.
* 책에서 본 <엄마의 역할>
1) 믿을만하고 위로가 되는 조력자
2) 조언을 구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
3) 아이에게 안전하고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을 주고 신뢰감을 주는 사람
4) 있는 그대로(아이의 감정과 느낌, 그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 모두를 포함) 존중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내 경우를 돌이켜보면,
이상적인 따뜻하고 인자하고 부드러운 말씨를 가진 사람에 맹목적인 충성을 했었다. 그 사람들에게도 강점과 취약점, 양면성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좋은 면만을 바라봤고, 나의 엄마나 내 기질과 비슷한 사람에게는 취약점 만을 바라보며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받으려는 내 행동은,
1) 화가나도 먼저 연락하기
2) 주변 사람 챙기기
3) 열성적으로 노력하기 (부모/친구/기타를 위해)
내 감정이 해소 안 됐는데 억지로 쾌활하려고 노력하지 말 것.
내 경우 엄마가 그 역할을 해줘서, 엄마와의 관계가 전보다는 회복되었다.
"우울증과 내면의 공허함은 그렇게 철저하게 감정을 억누르고 감독한 뒤에 나타나는 필역적인 결과다."
Q) 내가 지금 종속되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
A) 예, 남편/엄마/친구/상담자의 말 등
그런가 보다. 안식년을 마친 뒤 아이의 5세 이후, 특히 7세 이후 아이와 좀 더 가까워졌다.
이 포인트에서 아들에게 미안해진다. 아들 출산 이후 한 5세까지 혼란을 겪느라 근심을 많이 보여준 듯하다.
나의 안식년 이후 아들과의 관계.... 사실 작년 코로나 이후 내 집 마련도 못했는데 돈 낭비한 거 아닌가 후회가 잠시 몰려왔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잡고 보니 참 용기 있는 선택을 내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에 한 것 같다.
Q) 무엇을 위해?
Q) 무엇을 원하지 않아?
Q) 사랑받아도 OK. 미움받아도 OK
나는 사랑받는 것에 얽매이며 여전히 미움받기를 조금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관계에서 뭔가 상대가 불쾌하게 느낀 것 같으면 사족을 달아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아이에게 줄 정서>
1) 신뢰감/ 지속성 /견고함
2) 정서적 유대/ 건전한 자의식
3) 안정감/ 친밀감/ 보호 받음
한편 바르바라는 자신의 욕구와 분노를 깨닫지 못했던 지금까지 자신이 낳은 아이들에게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동시에, 내내 어머니를 이해하고 염려하는 역할을 떠맡아야 했던 것이다.
-우울증은 <자아 상실>의 직접적인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자아 상실은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부정>할 때 일어난다.
나의 안식년도 그러하다.
-슬퍼할 줄 아는 능력, 즉 '행복한' 어린 시절이었다는 기만적 허상을 버리고 고통스러웠던 상처들을 그 크기 그대로 느끼고 인지하는 능력은 우울증을 겪는 사람에게 활력과 창조성을 되찾게 해 준다.
기존의 나는 긍정적 감정만이 나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우울증과 중독 없는 삶을 살고 싶다면 자기 자신 속에서 지지 기반을 찾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형제들만 굴욕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비로소 그들은 사랑하는 부모에게 맞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굴욕을 당하고 버림받은 느낌에 사로잡혔는지 깨닫는다.
-다시 말해 아이의 존재를 기뻐하지 않고 '내 아이는 이래야만 한다'는 본인의 특정한 소망에만 매달렸다면, 바로 거기서 첫 분리가 일어난다.
흠... 아마도 첫 육아에서 내가 이러했던 것 같다. 나의 <이상화된 아들>의 이미지에 우리 아들을 끼워 맞췄던 것 같다. 미안하다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