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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 Feb 03. 2021

[천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드라마]와...

엘리스 밀러, 너무 대단하시다.

2021년 1월 best book


[가장 기억에 남는 네 문장]

"유아적인 종속성을 버리고 선과 악, 좋고 싫음 들을 구별할 수 있는 양립적 감정을 가지게 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어떤 부모든지 자신의 어린 시절 억압 상태에서 벗어나야만 자식의 마음을 읽고 공감해 줄 수 있다."


"과대성은 자아상실에 따른 고통, 즉 우울증을 방어하기 위해  나타나며, 그 고통은 현실을 부정하는 데서 온다."


"우리는 우울증을 통해 상처가 난 부위까지 다가가지만, 한때 놓쳐버렸던 것에 관한 슬픔, 즉 결정적인 시기에 놓쳐버렸던 슬픔을 체험할 때만 그 상처가 온전히 아물 수 있다."




00 하면 깜찍 발랄하고 애교스러운 표정과 댄스, 노래에도 능한 만능 엔터테이너가 생각나네.
.......
00 넌 역시나 즐겁다.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항상 쭉~
........
00 씨, 늘 주변 사람을 유쾌하게 만드는 그 웃음을 잘 지켜가기 바라요. 내가 응원하고 있는 것 아시죠?


다음 달 이사를 앞두고 하나씩 짐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예전에 받은 편지들. 나의 20대는 저런 텍스트가 어울렸다면, 나의 30대는 이와는 반대로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경험했다. 깜찍 발랄 보다는 분노 절망, 좌절, 낙담, 우울, 즐겁지 않음, 주변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부정적 감정까지.....


러나, 이 책에서 역시나 그 모든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아마도, 20대의 나는 약간은 강박적인,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우는 캔디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분위기 메이커로서 밝게 빛나야 한다고~


물론, 내 코어가 그런 에너지가 가득한 건 맞겠지만 말이다. 뭐, 이제는 가끔 웃지만 나의 다양한 감정을 인정해 주고 있다. 그것은 나쁜 것도 아니며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돌고 돌고 돌아서, 곧 이사와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과 나의 새로운 일 시작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곡선길에 서 있다. 지금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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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핵심 내용 요약]


1장. 감정 세계를 잃어버린 후


#나를 이해하는 숨겨진 열쇠


-우리는 누구나 심리적인 문제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 무기란 <감정의 체험>으로 어린 시절에 가졌던 부정적인 감정을 더 이상 억누르지 않고 자유롭게 나타내는 것.


-하지만 진실은 절대 할 수 없다. 우리 영혼이 진실을 잃어버리게 되면 몸의 질병으로 이어져 그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진실은 결국엔 우리에게 새로운 자유를 가져다주지만, 진실을 알고 인정하기까지는 고통이 따른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의식적인 깨달음을 통해 그 고통스러운 진실을 받아들이고 진실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는 있으며, 잃어버렸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 그건 물론 어려운 과정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를 가두고 있는 감옥, 즉 잔인한 어린 시절이라는 감옥을 떠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이 과거에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한때 자신을 실제로 위협했던 상황을 여전히 두려워하며 회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사실은 무의식에 쌓인 기억들, 억압된 감정이나 욕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내 경우를 돌이켜보자면, 불규칙한 생활습관/ 안식년/ 엄마와의 싸움/ 잦은 이직이 그러한 듯하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그림자


-그 모든 성공 뒤에는 우울증과 공허함, 자기 소외, 존재에 관한 무의미가 숨어 있다.


-스스로 설정한 목표와 이상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느끼자마자 그들은 곧바로 강한 두려움이나 자책감, 자괴감에 시달린다.


-한때 어린아이였던 자신에게 한 치의 동정심도 없다.


-그들 자신이 어린 시절에 가졌어야 마땅한 감정들을 부정하며 감정을 지나치게 자제하거나 왜곡하려는 성향, 또는 훌륭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그들의 성격에서 나타난다. 경멸과 모순, 조롱과 냉소를 드러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감정을 존중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관대한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는 이별의 단계가 왔을 때 어머니와의 공생 관계를 떠나 독립의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이 전제 조건들이 충족되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려면 부모 또한 그러한 분위기에서 자랐어야 한다. 그런 부모라면 아이에게 안전하고 따뜻한 보살핌을 줄 수 있고, 그 보살핌 속에서 아이는 부모와 사회에 대한 신뢰감을 쌓게 된다.


-어린 시절에 이러한 분위기에서 자라지 못한 부모는 욕구불만 상태다. 그들은 자신의 부모가 적절한 때에 자신을 온전히 보살펴 주고 온전히 이해해 주며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는 존재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그 갈망은 물론 완전히 충족될 수 없다


-그 억눌리고 잊힌 과거사를 알지 못하는 한 강박 상태에 빠져 들고 그 욕구를 대체물로라도 충족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한 대리만족을 이루기에 가장 적절한 대상은 대부분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다. 아기는 생존하기 위해 부모의 보살핌과 사랑을 계속 받아야 하고, 따라서 사랑을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


* 책에서 본 <엄마의 역할>

1) 믿을만하고 위로가 되는 조력자
2) 조언을 구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
3) 아이에게 안전하고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을 주고 신뢰감을 주는 사람
4) 있는 그대로(아이의 감정과 느낌, 그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 모두를 포함) 존중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무의식에 숨겨진 그날의 감정


-어렸을 때 두려움을 느꼈거나 고통받은 일이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 말 뒤에 감춰진 비극성을 직감한다.


-본래 아이는 다른 사람이 늘 함께 있어 주면서 자신의 감정을 받아 주고 이해해 줄 때에만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만일 한 여성이 어렸을 때 자신이 느끼는 모든 욕구를 억눌러야만 했다면, 내면에서 아이인 채로 성장이 멈춘 자아는 그 모든 감정들을 깊은 무의식 안에서 되살려 끝내 충족시키기 위해 온갖 애를 쓰게 된다. 이런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이 아이는 엄마가 처한 곤경을 뚜렷이 느낀다. 아주 일찍부터 엄마의 욕구를 감지하는 촉각을 발달시켰기 때문에 정작 자신이 어떤 곤경에 빠졌는지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은 포기해버린다. 아이는 그런 엄마 앞에서 고독함을 느낀다.


-그에게는 고독을 극복하는 데 꼭 필요했던 환경, 즉 공감하고 배려해주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기에 자신이 파괴되지 않도록 모든 감정을 방어하고 억눌러야 했을 것이다.


-모든 종류의 방어기제들은 원래 갈등의 원인이 되었던 상황, 그리고 그와 결부된 감정을 억압하는 현상과 함께 나타난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자기만의 참된 감정을 경험하고 발전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 순간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고착화되며, 자신의 욕구와 다른 사람의 욕구를 구분하는 경계를 설정할 수 없게 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배우자나 그룹,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지가 낳은 자식에게 인정받기만을 바라면서 '부모'역할을 대표하는 인격체들에게 휘둘리며 살아가게 된다.


내 경우를 돌이켜보면,

이상적인 따뜻하고 인자하고 부드러운 말씨를 가진 사람에 맹목적인 충성을 했었다. 그 사람들에게도 강점과 취약점, 양면성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좋은 면만을 바라봤고, 나의 엄마나 내 기질과 비슷한 사람에게는 취약점 만을 바라보며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진실과 마주하는 시간


-하지만 어른이 되어 상담치료를 통해 자신만의 진실을 경험하고 감정을 되찾는 것은 가능하다.


-감정을 회복하여 일종의 통찰력을 얻게 되면 그토록 많은 수고와 희생, 헌신으로 얻었던 모든 종류의 '사랑'이 사실은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한 때 아이였던 자신 자신의 원래 모습 때문에 사랑을 받은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그 순간은 상담치료에서 중요한 고비가 된다.


사랑받으려는 내 행동은,

1) 화가나도 먼저 연락하기
2) 주변 사람 챙기기
3) 열성적으로 노력하기 (부모/친구/기타를 위해)


-"무엇인가가 나를 슬프게 하거나 행복하게 할 때, 나는 마음껏 슬퍼하거나 행복해해도 돼. 누구에게도 억지로 쾌활하게 굴어야 할 의무가 없고, 걱정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의 욕구에 따라 억누를 필요가 없어. 나는 화를 내도 돼. 그렇다고 죽는 사람도 없고, 그것 때문에 머리가 아플 사람도 없어. 어머니나 아버지가 나한테 상처를 주면 아프다고 날뛰어고 괜찮아. 그런다고 해서 부모님을 잃는 건 아니야."

내 감정이 해소 안 됐는데 억지로 쾌활하려고 노력하지 말 것.


-우리는 자신의 현재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예전에는 자신이 감정이나 욕구를 어떻게 대했는지, 그리고 당시로서는 그러한 행동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음을 곧 깨닫게 된다.


-이를테면 지금까지 자신의 요구를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고 다른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기만 하던 남자가 갑자기 화를 낸다.


-분노는 먼저 자신을 도우려는 사람들에게 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심리상담사나 자신의 아이들, 말하자면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에게 향한다. 발화점이 되기는 했으되, 분노의 근본 원인은 아닌 사람들을 향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실과 마주할 때 허상을 깨버릴 수 있다. 허상을 과거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시선을 왜곡시켜 왔다. 우리는 스스로가 느끼는 만큼 그렇게까지 늘 잘못하지는 않았다.


-과거의 비극에 관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경험할수록 점점 더 강해지고 온전한 자신이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른이 되어 자신에게 애정을 기울이는 부모나 부모를 대신하는 대리인을 가지지 않고서는, 다시 아이 상태로 돌아가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체험할 수 없다.

내 경우 엄마가 그 역할을 해줘서, 엄마와의 관계가 전보다는 회복되었다.


"우울증과 내면의 공허함은 그렇게 철저하게 감정을 억누르고 감독한 뒤에 나타나는 필역적인 결과다."


-감옥에서 해방된 뒤에야 자아는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성장하면서 창조성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조금도 기대하지 못했던 생명력이 움튼다. 그것은 귀환이 아니다. 돌아갈 집은 아예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건 오히려 집을 처음 발견하는 순간이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


-유아적인 종속성을 버리고 선과 악, 좋고 싫음 들을 구별할 수 있는 양립적 감정을 가지게 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Q) 내가 지금 종속되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
A) 예, 남편/엄마/친구/상담자의 말 등


-어떤 부모든지 자신의 어린 시절 억압 상태에서 벗어나야만 자식의 마음을 읽고 공감해 줄 수 있다.

그런가 보다. 안식년을 마친 뒤 아이의 5세 이후, 특히 7세 이후 아이와 좀 더 가까워졌다.

-이렇게 억압된 상태의 부모 곁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영리하고 주의력 깊고 섬세하며, 부모의 안녕만을 바라기 때문에 늘 곁에 있으면서 부모가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온다.


-부모가 어린 시절에 겪은 비극은 그 억압 상태가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는 한 자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전해져 이어간다.


-자신의 과거사를 잘 알수록 자신이 당하는 통제 또한 점점 더 꿰뚫어 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을 가로막는 것은 우리의 어린 시절이다.




2장. 우울증과 과대성


#한 아이의 욕구가 겪게 되는 운명들


-만약 엄마가 자신의 기대와 두려움, 욕망을 투영해 아기를 바라본다면 아기는 엄마의 눈동자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엄마의 근심만을 보게 된다.

이 포인트에서 아들에게 미안해진다. 아들 출산 이후 한 5세까지 혼란을 겪느라 근심을 많이 보여준 듯하다.

-이런 친밀감은 아기에게는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과 안정감을 주는데,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다면 아기는 엄마를 믿지 못한다.


-심리적으로 억압된 자신의 어린 시절 때문에 아기와 정서적 유대를 쌓지 못한 여성이라 해도 상담치료를 받거나 억압 상태에서 벗어나면, 자기 아이에게 정서적 유대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중에라도 아이가 그 결핍을 극복하도록 도울 수 있다.

나의 안식년 이후 아들과의 관계.... 사실 작년 코로나 이후 내 집 마련도 못했는데 돈 낭비한 거 아닌가 후회가 잠시 몰려왔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잡고 보니 참 용기 있는 선택을 내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에 한 것 같다.

-건전한 자의식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가 느낀 감정과 욕구들이 자신의 자아에 속하는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의심 없이 확신한다. 이 확실성은 성찰하여 얻은 결과가 아니라 그냥 거기 있는 것이다. 마치 제대로 작동하는 한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맥박과도 같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깊이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길 때, 우리는 지지기반자기 존중감을 갖게 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나 끊임없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느끼며 슬퍼하거나 좌절하기도 하면서, 필요할 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위험에 처하면 두려워해도 되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화를 낼 수도 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를 잘 알 뿐만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안다. 그리고 사랑을 받든 미움을 받든 거기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Q) 무엇을 위해?
Q) 무엇을 원하지 않아?
Q) 사랑받아도 OK. 미움받아도 OK

나는 사랑받는 것에 얽매이며 여전히 미움받기를 조금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관계에서 뭔가 상대가 불쾌하게 느낀 것 같으면 사족을 달아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아이에게 줄 정서>

1) 신뢰감/ 지속성 /견고함
2) 정서적 유대/ 건전한 자의식
3) 안정감/ 친밀감/ 보호 받음

-아이의 나이에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할 욕구들이 통일성 있게 형성되지 못하고 분열을 일으키거나 억눌리고 만다. 이 아이는 어른이 된 뒤에도 스스로 잘 의식하지 못한 채 과거에 갇혀 살아가게 된다


-네 아이의 엄마인 바르바라는 어머니에 관해 희미한 기억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때때로 어머니에게 품었던 동정심만은 또렷이 기억했다....... 그런데 분노의 감정을 드러낸 것을 계기로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다..... 그토록 오래 쌓여 있던 분노를 체험하고 해석하자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기억들은 실제로 그녀가 이야기한 어머니의 부정적인 성격들을 증명할 만한 것이었다.


한편 바르바라는 자신의 욕구와 분노를 깨닫지 못했던 지금까지 자신이 낳은 아이들에게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동시에, 내내 어머니를 이해하고 염려하는 역할을 떠맡아야 했던 것이다.



#우울증과 과대성, 동전의 양면


-우울증이라고 불리거나 공허함, 존재의 무의미, 심리적 빈곤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이라고 느껴지던 것들이 나에게 와서는 자아 상실의 비극 내지는 자기 소외로 밝혀졌고, 그것들은 언제나 이미 아주 어린 시절에 시작된 운명이었다.


-과대성 안에는 우울증이 끊임없이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우울한 기분 뒤에는 과거에 겪었던 비극적인 역사에 관한 예감이 억눌린 채 숨어 있다. 원래 과대성은 자아 상실에 따른 깊은 고통, 즉 우울증을 방어하기 위해 나타나며, 그 고통은 현실을 부정하는데서 온다.


-과대성, 즉 과대 자아를 가진 사람은 어디를 가든 경탄을 받아야 하고, 그러한 경탄을 꼭 필요로 하거나 경탄 없이는 살 수가 없다. 하는 일마다 멋지게 해내야 하며, 또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스스로도 자신을 경탄한다. 자신의 성격과 아름다움, 총명함과 재능, 성공과 업적이 훌륭하다는 생각에 도취되어 있다. 이것들이 무너지면 야단이 난다. 곧 우우증이라는 무거운 재앙이 덮친다.


-과대성을 가진 사람은 단 한순간도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늘 다른 사람들의 경탄에 얽매여 있고 그 경탄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성격과 역할, 업적 따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울증을 통해 상처나 난 부위까지 다가가지만, 한때 놓쳐버렸던 것에 관한 슬픔, 즉 결정적인 시기에 놓쳐버렸던 것에 관한 슬픔을 체험할 때만 그 상처가 온전히 아물 수 있다.


-우울증은 <자아 상실>의 직접적인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자아 상실은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부정>할 때 일어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허상


-우리 부모나 양육자에 관한 진실, 그리고 우리 자신에 관한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이 금지되어 있는 한,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이어지는 마야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억눌렸던 감정을 해소한 뒤에 자신의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나의 안식년도 그러하다.

-어른이 된 우리는 조건 없는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유아적인 욕구이다.


-예전에 엄마에게서 받고자 했던 사랑은 이제 그녀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마야는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엄마의 가슴에 뚫린 구멍이 깊을수록 왕관을 장식하는 구슬은 커야 했어요. 엄마의 모든 활동들이 근본적으로 엄마 안의 무엇인가를 억누르기 위한 것이었기에 엄마는 그 보석 구슬이 필요했던 거예요.



#상담 중에 찾아오는 우울한 기분


-우울증은 그 감정이 사실은 늘 이 여성의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 외에도, 그동안에는 그 감정을 부정하고 억눌려 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 지금 겪고 있는 우울증의 원인이 되었던 감정을 소화할 시간을 가진다면, 그렇게 해서 다시 깨어난 감정들 덕분에 부모에게 반기를 들 수도 있을 것이고 억눌렸던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려는 욕구가 명확해질 수 있다. 그러는 동안 우울증은 자연스럽게 점점 사라진다. 우울증이라는 방어 기능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슬퍼할 줄 아는 능력


-우울한 기분이 신체의 병으로 나타날 수 있다거나 신체의 고통 안에 숨을 수 있다는 것은 경험으로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겪고 있는 우울증은 지금 억누르고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과거부터 지속되어 온 종속 상태를 나타내는 신호다. 우울증과 우울증이 생겨난 원인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하는 순간 우울증이 가진 유익한 기능 또한 알아차릴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울증으로부터 자신에 관한 진실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 길에 들어서야만 우리는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자아와 운명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낼 수 있다.


-내담자는 단 한 번도 기억해 낸 적 없는 상황을 의식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 상황에 담긴 비극성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결국 그 상황에 걸맞은 슬픔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슬픔의 변증법이다.


-우울증과 과대성에서 해방되는 일은 어린 시절 경험에 관한 깊은 슬픔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슬퍼할 줄 아는 능력, 즉 '행복한' 어린 시절이었다는 기만적 허상을 버리고 고통스러웠던 상처들을 그 크기 그대로 느끼고 인지하는 능력은 우울증을 겪는 사람에게 활력과 창조성을 되찾게 해 준다.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거리낌 없이 경험하는 자유를 누리기 시작한다. 언제나 명랑하고 유쾌하고 좋은 감정만을 느낀다는 말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온전히 다 체험한다는 뜻이다. 시기, 질투, 분노, 화, 좌절, 그리움,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포함된다.

기존의 나는 긍정적 감정만이 나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우울증의 사회적 단면


-온갖 관심사나 이데올로기에 무작정 휘말리지 않고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누구나 자기 내면에서 지지 기반을 찾아야 한다.


-우울증과 중독 없는 삶을 살고 싶다면 자기 자신 속에서 지지 기반을 찾아야 한다.


-검정적으로는 무의식에 그대로 남아 있던 어린 시절의 어머니상과 떨어지지 못했다. 그가 어린 시절의 감정을 체험하지 못하는 동안, 아내가 내내 그의 어머니상을 대신했다.


-과대성을 가진 사람은 성공이라는 허상 안에서, 우울한 기분을 자주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사랑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끝없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상담실의 나르키소스


-우리가 생명력을 갖게 하고, 우리의 존재를 깊어지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인생에 관한 통찰력을 갖게 하는 감정들은 결고 '아름답고' '좋고' '기분 좋은' 것만이 아니다. 흔히 무력감과 부끄러움, 시기, 질투, 혼란, 분노 슬픔 같이 우리가 회피하고 싶어 하는 불편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인 경우가 많다.


-과대 자아를 가졌거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나르키소스는 결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3장. 경멸의 시간을 지나


#경멸과 멸시 그 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자신의 무력함을 잘 알고 있는 강자는 남을 멸시하여 자신의 강함을 일부러 내보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그때 겪었던 고통스러웠던 감정들을 다시금 느끼고 받아들인다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여러 가지 굴욕의 얼굴


-그런가 하면 어른이 된 남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이상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모든 사람이 한때 정말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머니에게 복수하는 대산 다른 여자들을 경멸한다.


-경멸과 멸시는 약자의 무기이며, 자신이 경멸당한 감정을 회피하려는 방어책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20년 뒤에 어른이 될 테고, 이들이 경험한 모든 것이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잔인함을 전달하는 '대물림'을 감정의 의식화로 해소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형제들만 굴욕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비로소 그들은 사랑하는 부모에게 맞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굴욕을 당하고 버림받은 느낌에 사로잡혔는지 깨닫는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이렇게 극심한 학대를 당한 경우에도 아이들의 이상화 능력이 너무나도 강력해서 오랫동안 그 상처가 감춰진 채 숨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강박증과 도착증이 품은 이야기


-감정과 욕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야만 한다.


-'자신을 드러내는'과정에서 따라오는 고통스러운 자괴감 또는 뼈아픈 수치심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수치심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예전에 수치심을 한 번 겪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하지만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다시 체험하고 그때의 상황과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나면, 그것이 당시에 얼마나 정당한 감정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반면에 그러한 내면의 이해 과정이 없으면 내담자는 자신의 부모와 똑같이 그를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계속 만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들에게 이해받기 위해 애쓸 것이고, 그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음속에서 격렬한 원망을 느끼고 나자 반복해서 고통을 받으려고 했던 강박적인 욕구도 마침내 사라졌다.


-다시 말해 아이의 존재를 기뻐하지 않고 '내 아이는 이래야만 한다'는 본인의 특정한 소망에만 매달렸다면, 바로 거기서 첫 분리가 일어난다.


흠... 아마도 첫 육아에서 내가 이러했던 것 같다. 나의 <이상화된 아들>의 이미지에 우리 아들을 끼워 맞췄던 것 같다. 미안하다 아들아~~~~


-부끄러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까지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체험할 각오를 해야만, 어린 시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인식할 수 있다.


-결국 도착증이나 강박증 환자들은 화난 어머니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나 상황을 앞에 두고 그 당시에 겪었던 고통을 그대로 반복한다. 그리하여 계속해서 똑같은 드라마를 연출하게 된다.


-전에는 한 번도 자신이 기만을 당했다거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자신의 바람이 착취당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에게 가해졌던 부당한 일을 느끼지도 못했거니와, 그런 감정을 느끼도록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비극을 발견하고 그것을 소화해야 자신은 물론 타인마저 파괴하는 도착증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경멸을 처리하는 방식과 죄책감


-<데미안>에서 헤세의 욕망이 주막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실은 부모의 편협한 가치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이었음을 생각하면 더욱 기괴하게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가 용서를 구해야 할 존재는 남들이라기보다 먼저 자기 자신이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소질 때문에-감정의 강렬함, 체험의 깊이, 호기심, 지적 능력, 비판력을 포함하는 명석함까지도-부모와 갈등을 일으키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타인들의 힘에서 자유로워지기


-도착증은 분석적인 언어가 아니라 오로지 감정을 체험하는 것으로만 해소될 수 있다.


-'당신의 중독이 병든 사회에 대한 반응이라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그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볼 수 없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은, 아주 어린 시절에 마주해야 했던 부조리하고 이율배반적인 부모의 행동이다. 그들은 부모의 그러한 태도를 기억하지 못한다. 당시에 느꼈던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도록 강요당했기 때문이다.


-자유를 억압하고 순응을 강요하는 것은 사무실이나 공장, 정당에서 처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생애 첫 주부터 시작된다.


-달리 말하면 적어도 누군가를 경멸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동안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이 일은 그러면 절대 할 수 없는"-, 성과가 없으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 슬픔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어리고 의지할 데 없고 무력한 아이는 다른 존재의 힘에 휘둘리고, 상대하기 귀찮거나 까다로운 아이 역시 경멸당한 채로 남는다.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과 스트레스에 맞서자 꿈속에서 먼저 첨탑이 사라졌다. 그는 과대성의 환상을 벗어던질 수 있었으며, 모든 것을 위에서 내려다만 보던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도시-자기 자신을 암시함-'의 여러 사물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성숙한 감정의 연대


-가정에서 영문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대물림된 경멸은 다양한 얼굴을 드러내 보인다..... 그들의 태도는 한 번도 의식한 적 없지만 부모가 그들을 대하던 태도를 그대로 반영한다.


-한편 아주 다정할 수는 있지만 조금은 선심 쓰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주변 사람들을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듯이 대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다른 이들 앞에서 오로지 자신만이 존재하며, 오로지 자신만이 흥미롭거나 중요한 것을 말해야 한다는 듯이 행동한다.


-상담치료가 성공하려면 내담자가 부모의 파괴적인 행동 양식을 분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결국 자신의 비극을 의식적으로 소화해 낸 사람은 훨씬 더 명료하고 빠르게 다른 이들의 어려움을 감지한다.


-또한 죄 없는 이들에게 분노를 떠넘겨 정말로 그 분노를 받아야 마땅한 사람을 보호하지 않는다. 미움을 받아 마땅한 것을 미워할 줄 알게 되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을 사랑한다.


-설령 미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부모라 해도 그 진실을 피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았는데도 오히려 부모를 보호한다거나, 부모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대신 부모를 대신할 희생양을 만들어 적으로 여기는 맹목성에 빠지지 않는다.


-강렬한 감정을 체험함으로써 우리는 어린 시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한 체험이 우리로 하여금 현실의 눈을 뜨게 해 허상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억눌렸던 기억들을 되찾게 하며, 때론 몸의 병도 사라지게 한다. 이런 체험은 인간을 강하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 분노가 마침내 체험되어 정화되면 분노는 그 즉시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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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by 투루언니


 


서른 중반, 나 자신을 찾으려는 목마름과 갈망으로 6개월간 퇴직금 630만원으로 내면아이를 달래주는 프로젝트인 <엄마의 안식년>을 통해,

저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글로 담았습니다.


뭔가, 나같지 않다고 느껴지며 엄마로서의 삶이 공허하고 답답하다고 생각되시거나

알파걸 같던, 진취적인 우리 아내가 출산 후 달라졌다고 느끼는 남성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서른여섯, 좋은 엄마 되려다 멈춰 서다>가 궁금하시고 리뷰글을 써주실 수 있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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