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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den Nov 30. 2024

소든하게_커피와 위장병

커피 한 잔 소소하지만 든든하게

#1 커피와 위장병


소소하지만 든든하게 [ Soːden ]

언젠가 아주 까마득한 과거에 커피를 마시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 이 커피 한 잔으로도 든든 해질 수는 없는 걸까? '

이 생각은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먹을 때도 은연중에 자꾸만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정확히는 중학교 2학년때 딸기를 먹고 찾아온 갑작스런 급체와 함께 위염이 시작되었다.

30살이 된 지금, 뉴스며 각종 온라인 매체에서 흔히 들려오는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대다수 앓고 있을지도 모르는 위장염이란 질환을 갖게 되었다.


그런 내가 커피가 너무도 좋아서 커피 없이는 단 하루도 보내기가 싫을 정도가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위장염과 사투를 벌이며 살았을지는 불 보듯 뻔한 장면들이 보일 것이다.


어떤 날은 위가 안 좋음에도 굳이 커피를 마시겠다며 약국에서 파는 일명 위보호제인 '알 x겔'을 사서 먹고는

꾸역꾸역 커피맛을 느끼는 나의 모습이 일반 직장인으로서( 이 당시에는 일반 사무직원이었다 ) 살아남기 위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카페인중독인가, 그게 아니라면 정말 저 커피가 먹어보고 싶었던 것일까  참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몸을 망가뜨리면서 마시는 커피가 카페인중독이라던가 아니면 직장인으로서 잠을 깨기 위한 일종의 수면방어적 역할이라면 커피를 마시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편이 좋겠다고 다짐하며 한동안 이를 악물고 커피와 단절된 채 몇 주를 보내며 살았다.


몇주 만에 한결 위가 좋아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니 슬금슬금 드는 커피생각에 어찌나 그 한 모금이 간절해지기 시작하는지, 길가를 지나다가도 코끝을 스치는 원두의 향만으로도 어떤 체인점의 커피인지 알아챌 정도였다.


그래 딱 한 모금만 마시자며 통제력 따위 상실했지만 일말의 양심은 남아있던 터라 편의점에서 파는 제일 작고 저렴한 아메리카노 한 병을 집었다. 얼른 집으로 돌아와 얼죽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텀블러에 얼음을 가득 담고 곧바로 미지근한 편의점 아메리카노를 부었다.


얼마만의 커피인가 하며 신이 나야 하는 나였던 터인데 그대로 텀블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 편의점 아메리카노 맛이 없다. 아니 맛이 없는 것을 떠나 엄청난 산미를 갖고 있었다.

( * 산미 :  과일에서 느껴지는 신맛이 커피에서 느껴지는 맛 )


난 산미가 느껴지는 커피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산미를 내뿜는 커피라니.

애초에 처음부터 잘 보고 구매하지 않은 나의 잘못이니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강한 산미를 내뿜는 원두는 라떼(Latte)로 제조해 마시면 커피의 신맛과 우유 특유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의 발란스가 아주 좋다. ( 아메리카노 x / 에스프레소 o )

그렇지만 위에는 우유마저도 아주 쥐약인 터라 나의 선택사항에는 없었다.


하지만 하나 깨달은 건 맛에 따라 커피의 선호도여부가 달라지는 것과 일주일정도 거뜬히 커피를 끊었던 것까지 이 정도면 적어도 나는 카페인중독은 아닐 거니와 뭐 요새 카페인중독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물음도 함께 던졌지만, 이 정도로 커피에 진심이라면 위에 조금 덜 자극적이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소소하지만 나의 위는 든든하게 말이다.





Ps, 어쩌면 커피를 앞으로는 영원히 끊지못할수도 있겠다.

바리스타가 커피를 안마신다니 직업을 바꾸지 않는이상 그건 불가능하니까.





요즘엔 모카포트로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오전에 모카포트로 커피를 끓이면 방안 가득 커피 향이 은은히 나는 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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