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경 - 화학평형
그림을 그려놓고 가겠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물감으로
당신의 위아래 옆을
정확하게 그려놓고 가겠다
벽은 물들 것이다
하염없이 물들어
쏟아낼 것이다
나의 마음을
그 물감 속 섞인 물에
나의 수줍은 손가락 끄트머리의 온기와
세포 한 더미로 남길 것이다
어지러운 세상에
그대를 벽에 그릴 것이다
하염없이 적시고 먹여
세상을 물들일 것이다
삶을 담는 것이 작품이라면
그릴게 이것밖에 없으니
모든 것을 벽에 남겨
벽 속에 평생 살겠다
당신과 손 잡고
흐르지 않으며
종이처럼 썩지 않고 파묻히지 않으며
다음 생에도 만나겠다 약속보다
이번 생을 끝내지 않겠다고 약속하겠다
이런 억지스러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