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좀 주세요

언제부터 내가 싫었니?

by 지음 허투루

김영하 소설가의 산문 『보다』의 「시간도둑」에서 2014년쯤 뉴욕타임스에서 소개한 '폰스택(phone stack)'게임의 함의를 풀어놓고 있다. 폰스택이란 고급식당에 모여 식사할 때 모두의 휴대폰을 식탁 한가운데 쌓아놓고는 먼저 휴대폰에 손을 대는 사람이 밥값을 내는 게임이다. 김영하 소설가는 더 '오랜 시간 스마트폰에 무시할수록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 함의를 끄집어내었다.

즉 스마트폰이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거나, 직접적이지 않더라도 큰 타격을 입는 건 지위가 높거나 부자들이 아니라 늘 생존전선 최전방에 있는 사람이란 뜻에 다른 이견은 없다. 하루에 수십 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고, 스마트폰 없이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는 나도 마찬가지다.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2014년이면 아마 아이폰6S 기종을 사용했을 것이다.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점점 논문압박이 피부에 닿을 시기였기에, 쓸만한 맥북을 하나 신중하게 고심하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수업과 알바를 병행하기에 한 자리에 오래 머무는 여유가 없었다. 갖고 있던 태블릿은 타이핑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집에 고이 처박힌 데스크톱은 늘 힘겨운 부팅과 업데이트를 반복하느라 급격히 노쇠해졌다. 아마 이 시기부터 테크노필리아(기술, 특히 디지털 기기를 열렬히 사랑하고 과도하게 선호하는 성향.)의 병리가 삶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늘 새 기종이 나오면, 지금 사용 중인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팔아 새 기종을 마련하기 위한 자금으로 전환했다. 사용하지 않아도 항상 맥북 따위를 들고 다녔고, 혹시 모를 파손을 염려해 보험에 가입했고, 스타벅스만 고집했고, 점점 카페인에도 중독, 줄줄이 새는 소비습관으로 잔고는 항상 헐거웠다.

이건 사실 김영하 소설가의 폰스택에 대한 함의와는 결이 좀 다른 얘기다. '중요한 연락'이란 주체가 누가 되느냐 뜻이 크다. 연락을 하는 입장이 주로 갑의 위치에 있고, 연락을 기다리는 입장이 을의 위치란 견해와 자기 시간을 분배하는데 스스로 독점할 수 있거나 남는 시간에 끼워 넣거나 하는 식의 계층을 보여주는 예시로 폰스택을 취사선택했을 것이다. 그 계층은 주로 고소득층과 중산층의 층간을 조명한 것일 터, 보다 가난함을 의미하지, 사회보장제도가 없으면 살기 힘든 절대적 빈곤층은 이 게임의 유저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고급식당이란 전제가 그렇다.

하지만 '시간도둑'은 벼룩의 간을 빼먹듯 냉혹하다.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릴만한 활동이 없으니, 의미 없는 광고성 연락만 호주머니를 휘젓고, 오히려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야만 그나마 사회활동이나 최소한의 경제 활동이 가능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디지털기술은 아쉬운 소리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동시에 사회 참여의 기회인 셈이다. 예컨대, 해외여행, 값비싼 레저활동 등등 시간과 자본이 넉넉한 사람들의 활동을 화면으로 보면서 '좋아요' '댓글' 따위로, 언젠가 자신도 직접적인 활동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는 거니까.

그나마 어찌어찌 멀고 살고는 있다. 한 번도 디지털 기기와 떨어져 지내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서 디지털 디톡스 Digital Detox(디지털 기기와 디지털 서비스의 사용을 일정 기간 동안 의도적으로 중단하거나 제한하는 행위)는 멀기만 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코앞으로 데려올 수는 있다. 아무런 냄새를 맡지 못하고, 시각과 청각만이 화면에 빼앗겨 온종일 갇혀버린다는 말이다. 졸음으로부터 풀려나면, 두부 대신 두유를 넣은 라테부터 찾는다. 이놈의 커피는 마시고 마셔도 갈증은 채워지지 않는다, 외롭고 높도 쓸쓸한 가난만이 카페인에 중독된 것처럼 그냥 놓여 있다.

커피를 내려놓으면 스마트폰.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면 커피. 혹은 둘 다 들고 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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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