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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허투루 Dec 29. 2023

바카디

알쓰의 일탈 


 대학원이면 다를 줄 알았나? 똑같다. 과제하고 과제하고 과제해서 제출하는 건 대학 때나 매한가지다. 한 학기를 어리둥절 두둥실 보내고 두 번째 학기가 시작하려 한 개강모임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대학원도 개강모임이라 지칭해도 되나? 그래도 석사 과정인 만큼 학부 때보단 조금 더 고절하고 품위 있는 단어가 있을 줄 알았는데, 학부 때나 똑같이 개강 첫 주에 모여 교수님과 대학원생들이 모여 술이나 한잔 꺾어마시는 일 따위를 개강모임이라고 했다.

 그래도 주머니 아무리 털어봐야 소주 맥주 막걸리를 벗어나지 못하던 그때보다 대학원 때는 직업이 있고, 나름 경제활동을 해오는 원생들의 더러더러 있는지라 회비의 비용이 학부 때보단 훨 많이 걷어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모임의 수준이 한층 높아진 건 두말해 봐야 입만 아프다. 우린 그 입을 술을 들이켜는데 쓰기 몹시 바쁘다. 그렇다고 엄청 고급 요리와 비싼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다. 단지, 닭고기에서 돼지고기, 돼지고기에서 소고기, 소고기에서 간혹 회와 양고기 등등 선택에 폭이 조금 넓어졌을 뿐이다 중요한 건 음식이었으나, 더 중요한 건, 본래의 맛을 더 풍요롭고 풍미를 가열하게 음미할 수 있는 술이라는 점.

 그중 하나가 바로 바카디란 럼주였다. 태어나 처음 먹어본 럼주가 바키디라는 건, 다음에 어떤 주종을 만나더라도 미리부터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아예 술과 철천지 원수가 되는 태도가 생긴다는 것이다.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그 과정은 매우 청춘의 패기 혹은 오기로써 숙성되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소소한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러니, 시도하지 않은 이유가 없는 호기심 만땅의 신비로운 경험을 마다 할 필요가 없다.  

 한 모금에 식도가 타는 듯한 엄청난 열기가 몸속을 뒤흔들었다. 차가운 물로 단숨에 그 열기를 제압하려 했으나, 작은 불씨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딱 한잔 마시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게 무슨 맛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첫 럼주는 다른 어떤 매력을 찾아낼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러곤 한참을 럼주란 주종과는 먼 주류생활을 이어왔다. 그 후 보드카 와인 데낄라 위스키 같은 여러 종류의 술을 접하며 느낀 것은 생각보다 내가 술이 약하지 않다는 것이다. 알딸딸한 취기는 금방 올라오지만, 여러 잔을 비워내도 그 알딸딸함을 꽤 유지한다는 것이다. 다만 어느 순간 취기가 확 솟구쳐 오르는 순간이 있는데, 딱 그지점이 나의 한계임을 알 수 있었다.

 그 기점이 첫 확인 한 순간이 ‘바카디’를 마셨던 때였던 것 같다. 소맥으로 달리던 어린 시절에는 취함의 경계가 선명하지 않았는데. 다른 술을 접하며, 그 술과 사람. 분위기를 느끼며 우연찮은 취함의 경계를 스스로 자각할 수 있었다. 내가 나로서 결정하고 절제 혹은 폭주의 발화점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것. 어쩌면, 독한 술은 자신이 어느 정도에 취함을 느끼는지 일종의 실험주 아닐까?

 그렇다고 매번 독한 술을 찾는 사람은 실험이 아니라 아마 시험이 될 거라 여긴다. 술이 독한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독해지듯 무모하고 어리석어지는 “시험” 말이다. 이상하게 좋은 술과 음식을 만나는 순간이 오면 기다림이 설렘으로 바뀌곤 한다. 그래서 앞으로 술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 한다. 그냥 술과 관련된 소소하고 사소한 일상 말이다. 그리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또한 그리 빼는 타입은 아닌 정도의 온도 혹은 색의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늘 첫 잔은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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