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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May 05. 2024

가고 싶지 않은 모임은 안 가도 괜찮습니다.

사람과 만남을 자주 하지 않는다. 설사 만난다고 해도 다양한 사람보다 소수 몇 명과 깊은 관계를 맺는 걸 선호한다. 예민한 기질을 타고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급격히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나 같은 유형은 사람을 만나면 한 번에 과도한 정보가 들어오는데 새로운 사람이면 더하다.


남보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센서가 예민해서 그렇다.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리는 크툴루 신화를 보면 인간이 절대신을 만나면 인간 뇌를 초과한 정보량 때문에 정신이 나가버리는데 나도 이와 비슷하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과 만남 빈도수를 조절한다. 의도적이라기보단 생존 본능에 가깝다. 만나자는 사람들을 다 봤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미라로 발견되지 않을까 싶다.  


밥 한 번 먹자는 누군가 말에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이유는 다양하다. 부서를 이동한 지 얼마 안 돼 여유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결혼한 지금은 아내 핑계를 가장 많이 댄다. 이 때문에 친구들에겐 아내에게 잡혀사는 캐릭터가 됐지만 난 나름 만족스럽다. 여보 미안해.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만남을 조절한다 해도 몰리는 달이 있다. 내게는 이번 4,5월이 그랬다. 온라인 독서모임에서 오프라인 만남을 갖기로 했고 부동산 강의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임장 약속을 잡았다. 그러면서 회사 결혼식 동기 모임부터 절에 다닐 때 알았던 친구들 모임까지 모임 폭격이 쏟아졌다.


이런 포탄이 내 스케줄에 하나둘씩 떨어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졌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대세 걸그룹이 이런 기분일까. 겉으론 좋다 말했지만 속으론 '이 약속 취소 안 되나?' 라며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날들이었다. 로또 당첨보다 약속이 취소되기를 더 바랬다.  


물론 모든 모임이 다 이렇게 괴롭진 않다. 좋아하고 기다려지는 모임도 있다. 바로 좋아하는 활동을 같이 하는 모임이다. 예를 들어 같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독서모임이 그렇다. 난 현재 두 개의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이 시간은 내게 소모가 아닌 충전이다. 


이런 모임의 특징은 만나는 날이 기다려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만나면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이상하게도 좋은 만남을 할 때는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


반면 좋아하지 않는 모임도 있다. 회사 동기 결혼식이라거나 만나고 싶지 않은 친구들과의 만남은 영 달갑지가 않다. 이런 경우엔 모임을 잡은 날부터 만날 때까지 괴롭다.  


이런 모임 중 최근에 내가 주도해서 만든 게임 모임도 있다. 이제는 게임을 즐겨하지 않아서 나가고 싶은데도 내가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책임감 때문에 나가고 싶은데도 눈치만 보고 있다.       


이런 모임의 특징은 이야기가 겉돈다는 점이다. 대화가 깊게 들어가지 못하고 표면에서만 머문다. 회사, 연예인, 각종 사건 사고들 이런 얘기들에는 난 관심이 없다. 그런 대화에서는 내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관심이 많다. 요즘 치는 기타곡에 어떤 부분이 좋은지 얘기하는 걸 좋아하고 글을 쓸 때 소재를 어디서 얻는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이 이런 자기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겉도는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껀덕지가 없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해가 지날수록 이런데 소모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 이십 대 때는 체력도 있고 마땅히 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삼십 대가 되니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다른 관심 가는 취미들이 많아졌다. 굳이 원하지도 않은 모임에 나가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혼자서 즐거운 취미생활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출장 중 이런 고민을 회사 과장님께 털어놓았는데 들었던 대답이 인상 깊었다. 그가 말하길 자기가 나이를 들어보니 이렇게 억지로 만난 모임들이 자신에게 고통만 주고 큰 의미가 없었단다. 


그러면서 지금은 만나고 싶은 시간과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는데 삶이 너무나도 편하단다. 이렇게 말하는 과장님 표정이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사실 이런 내용들을 심리학 책에서 먼저 접했었다. 그때는 그렇구나 하고 넘겼는데 나랑 비슷한 결을 가진 과장님이 본인의 경험을 통해 말해주니 체감되는 게 달랐다. 


미래에서 온 내가 과거의 나에게 미리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래서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말은 인생을 훨씬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 굳이 가고 싶지 않은 모임을 책임감이라던가 무리에서 배제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물론 내 성격상 이렇게 마음먹었다고 해서 한 번에 달라지진 않을 거다. 그럼에도 마음에 내키지 않는 만남은 한 번이라도 덜 가고 기다려지는 모임은 한 번이라도 더 가리라 결심해 본다. 



※ 이 글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나 직위들은 작가에 의하여 모두 임의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림 출처 : Ai Copi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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