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냥이 Sep 05. 2023

이제는 억지로 다가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통해 자신을 본다.

우리 회사 특성상 지원 근무가 필수적이다. 다른 조에 있는 사람이 우리 조로 지원을 와서 같이 일해야 하는 거다. 이런 상황은 서로에게 난감하다. 가는 쪽은 다른 조가 일하는 스타일을 모르고 인간적으로도 어색하다. 지원을 받는 쪽도 어떤 일을 시켜야 할지 난감하고 새로운 사람이 불편하긴 매한가지다.


이런 문제 때문에 지원은 항상 껄끄럽다. 이번에 오신 분은 K과장이었다. 그는 덩치와 목소리가 크고 사무실 청결을 중요시 여긴다. 다른 직렬 사람이나 심지어 팀장님한테도 큰소리치면서 할 말 다한다. 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오나 싶다가도 목소리와 몸을 보면 납득이 되기도 한다.


조용한 걸 좋아하는 나는 그를 평소부터 어려워했다. 가끔 감정을 토해내며 격앙되게 말하실 때가 있는데, 이때 메시지보단 감정이 쏟아지는 게 버거웠다.

  

여하튼, 이 날은 그를 포함해서 조장님과 나 셋이서 근무였다. 우리 조장님은 다른 장소로 가고 이 분과 단둘이 일을 하기로 했다. 회사 차는 조장님이 가져가고 나는 K과장님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단 둘이 무슨 얘기를 할까 고민했지만 바보 같은 걱정이었다. 처음 인사치레 담아 던진 한마디 이후에 짧은 답변 이후론 이십 분 동안 아무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살짝 어색했지만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이런 내 모습이 의외였다. 이십 대 나였다면 이런 어색함을 깨기 위해 억지로 질문을 던졌을 거다.


“어디 사세요?”부터 "일이 힘들진 않으세요?"등 궁금하지도 않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이어가려고 안간힘을 다했을 거다. 7080 음악과 대비되는 적막만 흐르는 차 안에서 난 내가 많이 변했음을 느꼈다.           


그렇다. 이제는 억지로 다가가지 않는다. 더는 마음의 무게중심을 상대방에게 두지 않는다. 사실 난 말이 없는 편이기도 하고 특별히 하고 싶은 말도 많지 않은 사람이다. 싸가지 없을 수도 있지만 이제 난 거다. 상처받기 싫어서 벽을 치는 게 아니다. 있는 그대로 행동하는 거다.


가끔 이런 내게 서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땐 로버트 그린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상기한다. 

지금 상대가 경험하는 욕망이나 실망감은 나를 만나기 수년 전 혹은 수십 년 전에 이미 시작된 것들이다. 그러다가 때마침 나를 만나 내가 그들의 분노나 좌절의 편리한 타깃이 되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어떤 자질을 내게 투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나라는 개인을 보고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 대부분의 상대는 나를 보지 않는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상대방이 어찌 나를 알 수 있겠는가. 그는 나를 통해 자기를 보는 셈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욕구를 알아차려 잠깐은 환심을 살 순 있다.

 

실제로 과거에 몇 번 사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니 내가 피곤하다. 상대방은 인위적인 내 모습이 진짜 모습인 줄 안다. 그리곤 그 모습에 맞춰 나를 지속적으로 대한다. 곧 나는 불편해진다. 왜냐하면 그건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유지하기 위해선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난 상대방에게 서서히 멀어지고 그는 서운해한다.

     

이런 몇 번의 아픈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이건 상대방에 대한 기만이기도 하고 나 스스로도 지속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점을. 내 본모습을 보여줘야 진정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모습이더라도 가짜 모습을 보여주면 상대방은 나에게 가짜 피드백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렇게 마음이 바뀌고 나니 인간관계가 많이 편해졌다. 처음엔 난리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 둘과 관계가 단절되기도 했다. 그때는 친구에게 진정한 모습을 못 보여주는 내가 이상한 건가 싶었다. 그런데 걔들도 내가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하기로 한 것은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였다. 눈치 보는 관계는 친구가 아니다. 덕분에 시간과 에너지 돈 모두 아꼈다.    

지금은 내가 보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물론 집안이나 장례식 같은 경조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가기도 한다. 아직 모든 관계에서 자유로워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대다수 관계에서 내 모습을 솔직히 보여줄 수 있으니 삶이 이렇게 평온할 수가 없다. 모든 문제는 인간관계로부터 온다는 말이 다시금 와닿는다. 


사진: Unsplash의 Bernard Hermant


                    

매거진의 이전글 이 사람들은 일 안 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