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왜 이 일을 하는가?

의미는 일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여하는 것이다

by Eunhye Grace Lee

“왜 이 일을 하세요?”

제가 사회복지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분들은 종종 이렇게 묻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고, “이렇게 힘든 일을 왜 선택했냐”는 안타까움이나 의아함이 담긴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명확히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우연히 시작했어요.”,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늘 흐릿한 대답만 반복했습니다. 마치 누군가의 인생에 끌려 들어온 듯한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질문이 제게 되돌아왔습니다. “나는 정말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의 삶에 깊이 몰입하면서도 정작 제 삶의 이야기는 어디에 있는지 놓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히 직업의 동기를 묻는 것이 아니라, 제가 제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라는 사실을요.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의미를 만드는 존재이며, 삶은 그 의미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말했습니다. 의미는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습니다. 보수나 지위, 명성 같은 조건이 삶의 의미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받아들이고, 나의 이야기를 그 안에 어떻게 녹여내는지가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앤서니 기든스는 후기근대 사회의 개인을 ‘자기 서사를 스스로 쓰는 존재’라 정의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 또한 정체성을 완성하는 한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일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의 가치와 고통, 회복은 이 일 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가?”라는 질문 없이는, 일은 점점 기계적이고 생계 수단으로만 남게 됩니다.


사회복지는 자주 ‘의미 있는 일’로 불립니다. 그러나 저는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스스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일을 또 다른 기능으로 전락시킬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미란 본래부터 어떤 일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서 비롯됩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소진되고, 누군가는 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존 롤스는 인간의 존엄은 ‘자신의 합리적 계획’을 설계하고 추구할 자유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저에게 사회복지사의 일은 단순히 타인을 돕는 일이 아니라, 제 윤리를 설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려 했을 뿐 아니라, 저 자신의 가능성과 경계를 시험해 왔습니다.


물론 어떤 날은 벅찹니다.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상황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누군가의 이야기가 오래 남아 저를 고단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묻게 됩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조용히 제 안에서 답이 돌아옵니다. “이 일이 너를 너답게 만들어주기 때문이야.”


의미는 이 일이 저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떤 나로 살아가고자 하는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집니다.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도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이 일을 합니다. 정답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 질문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는 한, 저는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기억하는 한, 저의 일은 저의 삶을 의미 있게 이끌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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