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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감정의 거짓말은 나를 침식시킨다

웃는 얼굴 뒤에 숨겨진 피로가 나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by Eunhye Grace Lee

나는 한동안 웃는 얼굴을 자주 연습하곤 했습니다. 어색하지 않도록, 지나치지 않도록, 불편함을 주지 않도록. 그래야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고, 신뢰를 얻을 수 있으며, 내 존재가 안전하게 받아들여질 거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조절했고, 표현하기보다는 감추는 것을 성숙한 태도라고 여겼습니다. 사회복지사의 현장에서도 나는 늘 내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에 민감해야 한다고, 내 마음은 사소한 것쯤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조금씩 나를 잠식했습니다. 웃고 있었지만 웃고 있지 않았고,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속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감정의 거짓말이 반복될수록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돌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사회학자 아를리 호크실드는 감정노동의 핵심을 ‘감정의 부조화’라 했습니다. 진짜 감정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감정 사이의 간극, 그 간극이 클수록 사람은 정서적으로 분열되고 지쳐간다고. 저 역시 그 틈새에 오래 서 있었습니다. 웃는 표정은 점점 익숙해졌지만, 마음은 굳어갔습니다. 겉으로는 따뜻했지만, 속은 차갑게 식어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동료가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 힘들면 그냥 힘들다고 하자.” 그 단순한 말이 저를 크게 흔들었습니다. 감정을 진실하게 말하는 것이 타인을 실망시키는 일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당신, 사회복지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감정의 최전선에 서는 일입니다. 우리는 감정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감정을 통해 관계를 이어갑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진짜일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거짓된 감정은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 나 자신을 갉아먹으며 상대에게도 가짜 온기만을 남깁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내 감정을 숨기지 않으려 합니다. 기쁘면 기쁘다고 말하고, 슬프면 그 슬픔을 감추지 않고, 지치면 지쳤다고 털어놓으려 합니다. 감정을 진실하게 느끼고 표현하는 것, 그 용기가야말로 나를 회복시키는 첫걸음이 되었으니까요.


당신도 기억했으면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웃는 얼굴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진심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그 진심이 때로 서툴고 불완전하더라도, 감정을 속이지 않는 용기야말로 우리를 살아 있게 하고, 진짜로 일하게 만드는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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