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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공감하되 침몰하지 않기

타인의 고통에 머무르되, 나 자신까지 삼켜지지 않는 법

by Eunhye Grace Lee

사회복지사로 일을 시작하며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감정은 ‘공감’이었습니다. 듣고,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는 일. 사람의 고통은 숫자로 설명되지 않고, 언어로 다 옮겨지지도 않기에, 우리는 그저 곁에 머무는 방식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저 역시 누군가의 사연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졌고, 함께 울고, 함께 분노하며, 그 아픔을 품은 채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습니다. 타인의 고통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 순간 그것이 나의 감정과 구분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나인지, 타인인지 알 수 없는 무거움 속에서 나는 자주 무너졌습니다.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쉽게 침몰하는 걸까?”


사회학자들은 공감의 본질을 ‘경계’에서 찾습니다. 타인의 감정을 나의 감정처럼 느끼되, 그 선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지요. 경계가 무너지면 우리는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무너지는 사람’이 됩니다. 저도 그 경계 위에서 많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공감은 타인의 고통을 내 전부로 삼는 일이 아니라, 곁에 머무는 일이라는 것을. 레비나스가 말했듯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윤리의 시작이지만, 그것은 흡수가 아니라 책임입니다. 누스바움이 강조했듯 감정은 도덕적 판단을 가능케 하지만, 그 감정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마음을 다시 붙잡기 시작했습니다. ‘이 고통은 나의 몫인가?’, ‘이 감정은 내 안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마음을 대신 짊어진 것인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서 균형을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꼭 기억해주었으면 합니다. 공감은 침몰이 아닙니다. 거리를 둔다고 해서 냉정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그 거리가 관계를 더 오래, 더 안전하게 지켜주는 힘이 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잠시 멈추고, 내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다가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따뜻함을 오래 지킬 수 있습니다.


공감이란 곁에 머무는 일, 그러나 그 곁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 자리여야 합니다. 저 역시 이제는 조금 더 단단하게, 그러나 여전히 따뜻하게 사람의 곁에 서고 싶습니다. 당신도 그 길 위에서, 스스로를 지키며 오래도록 타인과 함께 걷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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