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국적과 상관없이 사람을 돕는다는 것

보편성과 공공성 사이에서

by Eunhye Grace Lee

“선생님, 도와주실 수 있나요? 저는 일본 국적이 아니에요.”
어느 날 상담창구를 찾아온 한 외국인 이용자가 조심스럽게 던진 첫마디였다. 그 질문 속에는 단순한 상황 설명을 넘어 이미 수차례 거절당한 흔적, 자신이 이 사회에서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취급받아온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나는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외국인도 생활보호 받을 수 있나요?"
"국적이 없어도 지원받을 수 있나요?"
"가족 중 한 명만 합법 체류자인 경우에는 어떻게 되나요?"


이런 질문은 결국 하나의 주제로 귀결된다. 복지는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과연 ‘국적과 상관없이 사람을 돕는 것’이 가능한가?


이 질문은 사회복지의 근본적 가치인 보편성과 공공성 사이의 균형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보편성이란, 누구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반면, 공공성이란, 그 보장이 공공의 자원에 기반하며 합리적 기준과 절차를 통해 운영되어야 한다는 원리다.


현장에선 이 두 원리가 자주 충돌한다. 어느 날은 귀화하지 않은 고령의 외국인 부부가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건강보험 없이 치료를 거부당한 사례가 있었고, 또 다른 날은 무연고 외국인 노동자가 사고를 당한 후 사회적 보호 없이 고립되는 모습을 지켜본 적도 있다.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고민한다.
“우리가 돕지 않으면, 누가 도와줄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동시에 떠오르는 현실적 물음이 있다.
“지속가능한 복지란 무엇인가?”


복지제도는 자선이 아니다. 개인의 선의나 감정에 의존하지 않고, 공공의 기준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전체 사회의 신뢰를 얻고, 모든 구성원에게 안정적인 삶을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성만을 앞세울 때, 보편성은 쉽게 훼손된다. 특히 국적이나 체류자격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도움을 거절당한 사람들은, 그 어떤 공공성의 이름으로도 자신의 존엄이 부정당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디서 그 균형을 찾아야 할까? 나는 ‘기본적인 생존권’과 ‘지역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기본적인 생존권은 국적에 상관없이 지켜져야 한다. 응급 의료, 아동의 교육, 폭력 피해로부터의 보호, 심각한 빈곤 상황에서의 최소한의 생활보장 등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해치는 위기 상황에 대해서는 국적 여부를 따지기 전에 사람으로서 응당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이 부분은 사회복지사의 윤리 강령에서도 강조되는 지점이다. ‘모든 사람은 존엄과 권리를 지닌 존재이며, 그에 상응하는 기본적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는 원칙은 국경을 넘는 윤리이다.


둘째, 지역 공동체의 공공자원은 책임 있는 참여를 전제로 운영되어야 한다. 일본 사회에서 장기 체류하며 세금을 납부하고, 지역활동에 참여하고, 지역 주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외국인은 단지 ‘외국인’이 아니라,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 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이때 사회복지사는, 외국인의 ‘국적’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삶의 맥락과 사회적 기여도, 지역 내 역할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지원의 범위와 방식을 조정하는 조율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나는 한 베트남 출신의 젊은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일본인 남성과 결혼했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아이와 함께 도망쳐 나와 도움의 손길을 찾고 있었다. 체류자격은 배우자 비자로 불안정했고,
경제적 자립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행정 시스템은 체류자격 미확정이라는 이유로 생활보호 신청을 기각했지만, 아동의 안전과 생존이 달린 문제였기에 지역 아동상담소와 연계해 긴급 보호처를 마련했고, 나는 장기적으로 체류자격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법률지원까지 연계했다.


이러한 개입은 단순히 제도를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보완성을 실천으로 채우는 일이다. 사회복지사는 바로 그 보완의 주체다.


복지는 완성된 구조가 아니라,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해석되는 사회적 계약이다. 그리고 그 재구성의 최전선에는 늘 ‘사람을 만나는 사람’, 바로 사회복지사가 있다.


국적을 넘는 복지는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현실이며, 우리가 마주해야 할 ‘공존의 기술’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가, 도울 수 있다면 어디까지 도와야 하는가, 이 물음에 공감과 원칙으로 균형 있게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복지를 통해 사회를 만든다.


복지는 법의 경계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회의 중심으로 초대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초대는, 국적이 아니라 존엄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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