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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공무원 의원면직

GOODBYE 공무원

by 태리우스 Oct 25. 2023


드디어 8년 가까운 공무원생활이 끝났다. 하하하! 2016년 1월 1일부터 2023년 10월 24일까지 지방시설관리주사보 7급으로 일을 했다. 자꾸 퇴사는 여행이다라는 책이 생각나는데 면직도 여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원섭섭하냐고? 시원섭섭하다. 시원함이 99%, 섭섭함이 1%! 다른데 취업한 것도 아니고 창업 준비를 철저히 한 것도 아니다. 이제 다음 달부터 월급이 나오지 않는 상황인데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다. 신기하다. 일을 미친 듯이 안 해도 월급이 나올 때에는 그렇게 불안하더니 말이다.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공무원으로 하는 일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멀미를 할 지경이었다. 누군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인생을 낭비하는 최고의 방법은 재미없고 지루한 일을 꾸역꾸역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이란 게 재미있을 때도 있고 토가 나올 정도로 하기 싫을 때가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하기 싫은 일을 꿋꿋하게 참고 인내할 때 얻는 성숙과 성장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나는 전자에 더 힘을 주고 싶다.


20대 때 디자인 전문회사를 다닐 때는 디자인에 ‘디’ 자만 들어도 토할 것만 같았다. 디자이너가 한때 유행해서 미대입시 미술학원이 호황을 누릴 때가 있었다. 드라마의 많은 여주인공들이 디자이너였던것처럼 디자이너는 한때 잘 나가던 직업군이었다. 하지만 현실 속 디자이너는 박봉과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클라이언트의 노예로 빛 좋은 개살구였다. 디자이너의 민낯이 드러나자 거품 같았던 디자이너 인기도 금세 푹 꺼져버렸다. 나도 그때쯤에 디자이너의 인생을 포기했다.


그리고 어쩌다 공무원이 되었는데 패턴이 비슷하다. 2015년쯤 공무원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노량진에 쓰나미처럼 청년들이 몰려왔다. 새벽부터 밤까지 노량진 컵밥거리는 야시장을 방불케 했고 교실마다 학생들로 가득가득 찼었다. 신기한 건 코로나가 터지고 불경기가 계속되는데 철밥통 공무원 인기가 더 치솟을 것 같았지만 오히려 공무원 인기는 곤두박질쳐서 경쟁률이 3분의 1로 떨어졌다. 공무원 연금개혁으로 공무원 연금이 더 이상 메리트가 없어졌고 민선으로 구청장을 뽑게 되면서 표를 얻어야 하는 구청장들은 지역행사를 무지막지하게 만들었다. 결국 평일 밤낮도 모자라 주말에도 불려 나가고 당직, 일직, 각종 선거근무, 국가행사 등으로 워라밸이 무너지는데 박봉을 받으니 영리하고 똘똘한 MZ세대는 뒤도 안 돌아보고 공무원을 때려치우고 있다. 그래서 공무원 휴직자와 퇴직자 수가 놀랄 만큼 많다고 한다. 이제 공무원은 극한 직업, 기피직업, 3D 업종 취급을 받게 되었다.


 나도 물들어올 때 들어오고 썰물처럼 빠지는 꼴이 되었다. 퇴사하는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공무원은 퇴직이란 말을 쓰지 않고 의원면직이라고 한다. 스스로 원해서 공직을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의원면직을 하고 싶다고 바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민형사상 처벌을 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면직하는 공무원들을 막기 위해 경찰기관을 통해 조회가 완료돼야 면직명령을 받을 수 있다.


의원면직과 면직명령 사이의 2주 기간동안 하고 싶었던 분야인 제빵과 디자인 업체에 면접을 보았다. 결과는 실망 그 자체였다. 근무환경, 대우,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 다른 현실에 부딪히자 사직원을 쓴 것이 잘한 것인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냥 다닐까?’


브런치 글 이미지 1


다시 고민하고 갈등을 하기 시작했다. 10월 12일 사직원을 제출하고 일주일이 지난 10월 19일 아침에 다시 마음이 바뀌었다. 경찰서에서 아직 조사 중일 테니까 의원면직을 철회하고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몇 개월이라도 더 다니자! 군경력 포함하고 8개월 다니면 10년 채울 수 있다!'


 나는 굳게 마음을 먹고 출근하고 자리에 앉아 코로나로 집에서 쉬고 계신 행정실장님에게 사직원을 철회하겠다고 연락을 드렸다. 실장님에게 곧바로 전화가 왔다.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1주일 밖에 안 됐는데 어제 면직발령 문서가 왔다는 것이다. 순간 얼굴이 붉어지고 아쉬운 마음이 밀려왔다. 아주 잠깐이었다.


‘뭐야? 이런 초스피드 행정은??’

  

당황스러움도 잠깐 곧바로 내 마음은 먹구름에 가려졌던 태양이 얼굴을 내민 것처럼 밝아졌다.


'이제 됐다! 하하하!'


브런치 글 이미지 2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더 이상 공무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더 이상 공무원을 할지 말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내 앞에는 수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의 길이 열려있다는 즐거움이 몰려왔다. 나는 오랜만에 마음으로 웃을 수 있었다. 또 다행인 것은 공무원연금을 받기 위해 10년 이상 재직해야 해서 공무원연금을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그런데 공적연금연계제도가 생겨서 공무원연금 가입기간과 국민연금가입기간을 연계합산하여 10년 이상 되면 가입기간을 모두 인정받아 두 연금을 함께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도 훗날 공무원 연금을 받는 남자가 된 것에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가장 마음에 걸렸던 건 역시 엄마였다. 늘 고만고만하게 살다가 겨우 공무원이라도 돼서 자리를 잡나 싶더니 공직을 뻥-하고 메몰차게 차고 나온 아들의 모습을 보고 많이 속상하셨을 것이다. 저녁밥을 먹고 과일을 먹는 시간에 온 가족 앞에서 말했다.


"나는 더 이상 공무원이 아니야."


엄마는 뭔 소리냐며 역시나 잔소리를 늘어놓으셨지만 지난 몇 개월동안 계속해서 그만둘 거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놀라시진 않은 것 같았다. 결국 엄마도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신 것 같다.


오늘은 민간인으로 컴백하여 한걸음을 내딛는 첫날이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지만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내가 바라는 건 -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하고 퇴근시간과 주말만 기다리는 인생이 아니다. 시간이 너무 안가서 지겨워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하루를 보내고 싶지않다.


내가 하는 일이 좋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하고 잠자리에 들 때 내일 빨리 출근하고 싶은 인생, 일에 몰입하며 시간을 아까워하는 인생, 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 물론, 돈도 많이 버는 인생. 훗훗훗.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며 지난 시간 동안 나를 지켜주시고 앞으로도 선한 길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께 사랑과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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