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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Sep 19. 2016

부끄러운 초등학생 때의 기억

어린 시절이 어른 시절에 미치는 영향

내겐 종종 찾아오는 초등학생 때의 기억들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의 일들은 거의 다 잊어서 이야기하고 싶어도 이야기할 것들이 잘 없는데 
나의 상상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아주 짧은 순간의 기억들이다.
 
1. 급식소에서 아이들이 밥을 먹고 있다수많은 아이들 사이에 내가 있다나는 무릎을 꿇고 있다내 앞에는 나와 친했던 한 아이가 밥을 먹고 있다나는 그 아이에게 사과를 하고 있다왜 사과를 하고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그냥 그렇게 수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무릎을 꿇고 친구에게 사과하고 있다
 
2. 나는 초등학교 6학년 2학기에 전학을 왔다그 전에는 시골의 작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내겐 단짝이라 부르는 두 명의 친구가 있었다. Y J. 나는 분명 유치원 때부터 J와 친구였고 Y랑도 오랜 친구였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들과 약간 떨어져 있었다그 나이 때친구들끼리 손을 잡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는데 나는 늘 망설이고 고민했다아무렇지 않게 손을 잡고 나서는 두 친구를 보며 혼자 울었고 슬퍼했다
 
3.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겐 유진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었다그 친구는 왜소하고 소심한 나에 비해 키도 크고 당당했다유진이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아마 집안 형편이 어려웠는지 내게 종종 돈을 빌리곤 했다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금액은 커졌고 초등학생인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찼다그래서 나는 엄마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급기야 엄마가 모으던 저금통을 부수어 유진이에게 돈을 가져다주었다. 후에 엄마가 알게 돼서 그 친구와는 영영 멀어지게 되었고 이사를 오고 난 후 내겐 잊고 싶은 기억이었는지 잊고 살았었는데 엄마에겐 그 일이 꽤나 충격적이어서 언제나 친구를 사귈 땐 그때를 언급하며 조심하라고 했다.

4. 은진이란 친구가 있었다아주 예쁘장하게 생긴 친구였는데 언니가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언니여서 모든 아이들이 그 친구 앞에선 작아졌다나 역시 그랬는데 나는 그 친구를 자주 업고 다녔다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억에 그 친구는 자주 내게 업어달라고 했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 친구를 업고 다녔다. 집에 가서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팠지만 그것이 그 친구가 내게 보이는 관심이라고 생각했던 걸까언젠가 그 친구가 내게 업어달라고 하지 않을 때 이상하게 섭섭했다.
 
나는 이렇게 친구 관계인지 갑을 관계인지 알 수 없는 형식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그래서 내 동생은 초등학교 시절의 나를 쭈구리찌질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지금이야 웃으며 넘길 수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가 참 가엾고 불쌍하다미움받는 게 두렵고무서워서 잘못된 방식으로 친구를 만들었고 사귀었다그 친구들이 어떤 친구들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어쩌면 상처 많은 내 어린 영혼이 지나치게 피해의식을 갖고 남긴 잔상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이러한 기억들은 꽤나 많아서 종종 떠오른다
그리고 그때의 감정이나 기억들이 중학교고등학교 심지어 어른이 되어서도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는 것 같기도 하다더 이상 무릎을 꿇지도 돈을 바치지도 않지만ㅎ 진심을 주고받는 것에 약하고 부족한 내 모습은 그때부터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다.

 인간관계는 모두에게 어려운 것이지만 나와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겐 유독 어렵고 무섭다자라면서 눈치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능숙해졌고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방식상대가 원하는 말이나 행동들을 금방 알아차리고 아무렇지 않게 잘 해나가고 있는 듯 하지만 늘 불안하고 두렵고 무섭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 친구들이 나쁜 게 아니라 내가 많이 서툴렀다는 점이다물론 나의 그 서투름을 이용한 친구들도 있겠지만 모든 것을 그 친구들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법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언제나 약자였고 잡아 먹혔다사실 나를 잡아먹으라고 내어준 것과 다름이 없다나를 나타내고 주장하기보단 언제나 나를 낮추고 숙이는 아이였다

 엄마는 그에 비해 늘 당당하고 멋진 여장부셨다그래서 나는 늘 엄마에게 답답하고 못 미더운 딸이었다. 엄마는 날 공주처럼 키우고 싶었지만 나는 늘 하녀였고좋아하는 옷도 친구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싶어 마음대로 입지 못하는 바보였다. 엄마는 그런 내가 언제나 걱정되어 학교의 학부모위원, 운영위원을 도맡아 하셨다. 하지만 그건 내게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다. 엄마가 학교에 오는 날이면 늘 가슴 졸였다. 엄마는 당당한 내 모습이 보고 싶다며 반에 햄버거나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을 돌렸지만 그것은 뇌물과도 같았다. 나는 언제나 친구들에게 엄마를 백으로, 먹을 것을 백으로 두는 아이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절대로 내 아이의 학교생활엔 아이가 원하지 않는 한 참여하지 않겠다고 결심 했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 이렇게 긴 이야기를 썼냐 물으면 잘 모르겠다. 그냥 쓰고 싶었다. 부끄럽고 창피한 기억이지만 꽁꽁 숨겨두자 하니 너무나 괴로워서 이젠 말할 수 있다!처럼 글을 쓰고 싶었다. 어떠한 의미를 가진 기억들인지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냥 난 어렸을 때부터 사람 대하는 게 참 서툴렀다. 그래서 지금도 서툴고 늘 노력하고 있다는 것. 

어린 친구들 중에서 어린 나처럼 친구 관계에 서툰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굳이 그렇게 친구를 사귈 필요는 없다는 말. 

나처럼 막 무릎 꿇어 가며, 돈 바쳐가며 만든 친구는 결국 금방 사라진다. 

그에 반해 그때의 기억은 나이가 들어도 남아서 이렇게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니 부디 나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당당해지길 바란다. 

친구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나 자신이다.

진정한 친구를 만들려면 진짜 나를 만나야 하고 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면 안 돼!!!!! 이런 게 아니라 

간도 쓸개도 다 빼줘도 좋으니 제발 그 간이랑 쓸개를 튼튼하게 만들어놓기를 바란다. 


건강한 인간관계는 건강한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에 부디 어린 이진솔처럼 자신을 바보로 만들어가며 친구를 사귀고 있다면 제발 그만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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