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솔 Jan 15. 2018

난 동정받는 법을 알아

도망치는 사람입니다.



비가 눈으로 바뀌는 순간에 나는 거리를 걷고 있었어. 
장대비처럼 쏟아지던 것들이 하얗게 내려 앉는 게 참 예쁘더라. 




*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어. 견뎌야 한다고.
사람들이 사랑은 이상이고 로망이고 어쩌면 욕심이라고 할 때 나는 늘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의 난 그 말들에 현혹되는 것처럼 이 곳에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어. 인생은 원래 힘든 거니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다른 이들이 인정할 만한 직업을 가져야 하고 모두와 같은 행복의 기준 안에 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휴일이 견딜 수 없을만큼 외로웠어. 너무 쉬고 싶었는데 막상 쉬면 쉬는 게 너무 싫은거야.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고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밖은 너무 춥고 걷기에 위험하고 해는 4시가 지나면 져버리는 이 곳에서 나는 불도 키지 않고 혼자 방 안에 박혀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으며 폭식을 했어. 피자 한 판을 30분도 안되서 다 먹어 치우고 달고 짠 자극적인 음식들만 생각나고, 그렇게 먹다가 참을 수 없이 슬퍼져서 혼자 울어. 여기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있어서 난 여기에 와 있을까? 그런 질문을 해. 

난 오랫동안 이 곳을 꿈꿨어. 내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이 곳을 꿈꿨어. 그거 알아? 나는 도망 치고 싶었어. 사랑할 사람도 사랑을 주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도망치고 싶었어. 거긴 여기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근데 딱 여기에 오게 될즈음 나한테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생겼었어. 꿈이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그래도 소중한, 나다운, 나여서 할 수 있는 일.
 나는 사람을 대하는 일에 능숙한 편이야. 눈치가 빠르고 소심하거든. 상대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으로, 착한 사람으로,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지 누가 가르쳐 주기도 전에 내 몸과 마음은 이미 다 알고 있었어. 괜찮지 않은데 괜찮아 보이는 척, 힘든데 힘들지 않은 척하는 것 전부 다 알고 있었어. 그리고 어떻게 하면 타인이 내게 관심을 주는 지, 가령 동정심이라는 마음을 이용할 수 있는 조금 비겁한 아이였고 그런 어른이 되었지. 그래서 난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 버림받지 않는 방법을. 그러니까 지금 난 이 곳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이야길 하려고 하는 거야. 아니 이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모르겠어. 이 곳에 있는 게 너무 힘들어.
타당한 이유도, 근거도, 뭣도 없어.
어른들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
여기서 못하는 데 어떻게 다른 데 가서 할 수 있겠냐고. 그냥 너는 어딜 가든 못할 거라고.
그 말을 참 많이 들었었어. 도망치고 싶다 생각한 순간부터 끊임없이 매일 수없이 많은 어른들에게서 들었어. 아빠가 유학을 반대하려고 온 어른들을 내 앞에 데려 왔었거든. 그래서 지금도 난 많이 무서워. 결국 내가 그런 애일까봐, 어디서도 못할 그런 애일까봐. 그래서 더 더 견디려고 하고 버티려고 했어. 근데 

왜?

왜 그래야 할까? 지는 걸까? 내가 이렇게 여기서 멈춰버리면 실패한 거고 지는 거고 아빠가 말하는 그런 애가 되는걸까? 근데 그러면 또 어때서? 나는 무얼 위해서 여기에 있는거야? 누굴 위해서? 무엇이 되기 위해서? 다시 먹고 토를 하고 울고 잠을 못자는 그런 지옥같은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게 당연한 아이가 되어야 하는 거야? 난 아니야. 난 그런 애가 아니야. 그런 생활을 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가 아니야. 나는 무언갈 이루기 위해서, 누군갈 자랑스럽게 하기 위해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야. 무책임하지 않을 거야. 소중히 할거야.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포기라는 행위가 필요하다면 난 포기할거야. 그러니까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나를 욕하고 무시하고 비난 해도 나는 그러지 않을 거야. 나는 나를 이해할 거고 나를 지킬 거야. 나에게 중요한 건 나니까. 

피자 한판을 다 먹고 토하지 않았어
토하지 않고 
그냥 글을 써.
시간을 보내.
괜찮지 않지만 괜찮을 거야.

난 토하기 위해 먹은 게 아니니까
외로워서 
슬퍼서
쓸쓸해서
괴로워서 먹은 거니까

토를 하면
결국 다시 또 외로워지고 슬퍼지고 쓸쓸해지고 괴로워지겠지.
처음보다 훨씬 더 심하게.

그러니까 토하지 않을거야.

*
동정받기 싫은데
동정받는 법을 알아.
한 때 동정이 유일한 애정이었거든.

오늘은 많이 우는 밤이 될 것 같아.
혹시 울고 있다면
나를 생각해줘.
내가 어디선가 너처럼 울고 있다는 걸 떠올려줘.












작가의 이전글 12월 14일의 단편 - 가끔은 행복, 지금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