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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ietto Aug 06. 2020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아프더군요.

찾아볼수록 빠져드는 그 숲.

lucky girl.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행운은 늘 내편이었다.

실제로 기대했던 결과보다 더 좋은 결과가 있었던 적이 많았다.

20대의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넌 고민이 뭐야.' '넌 걱정이 있니?' 이런 부류의 질문들이었다.

lucky girl에게 우울감이란 남자 친구와 다투었을 시간 동안만 허락되는 단어였고, 그 시간 외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점점 우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회사에 병휴직을 신청한 이후부터 알람을 맞추지 않았다. 따뜻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눈을 뜨는 게 일상이 되었다. 퇴원 후 몸을 가눌 정도가 되니 벌써 가을이 찾아오고 있었다. 하늘은 더없이 청량했고 가을 햇살은 기분 좋은 따사로움이었다.


 가을을 맞은 며칠은 괜찮았다. 그런데 친정을 떠나 집에 돌아온 후부터 조금씩 이상증세를 보였다. 안방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들이 너무 얄밉고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뭐가 그렇게 싫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밝은 날이 싫었다. 그래서 그맘때 나는 쨍한 날에는 까닭 없는 눈물을 흘렸다.

 몸이 아팠는데 점점 마음이 아파가고 있었다. 나의 그런 변화는 점점 속도에 박차를 가하며 빠르게 업그레이드되었다. 쨍한 날이면 쨍하다는 이유로, 비가 오는 날은 너무 슬프다는 이유로 집 안에 콕 박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염없이 울어댔다.

  다른 사람들도 이럴까? 나만 이상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같은 병으로 수술을 앞둔 혹은 수술을 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카페에 가입했다. 그 당시엔 남는 게 시간이었기에 온종일 카페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고 나서 알게 된 점은 나와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었다. 아니 나는 너무 양호해서 힘들어요에 들어갈 축도 아니었다. 거기서 그치고 그 카페를 그만 드나들었어야 했는데 힘들어하는 아파하는 많은 환우들을 나와 동일시하며 나도 점점 그들과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움을 얻으려 했다가 독을 얻고야 말았다. 그러고는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 내가 말이야, 낮에 그 카페에서 글을 읽었는데 어떤 사람은 수술 후에 너무 힘들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생각이든데. "


 쓸데없는 생각과 쓸데없는 행동을 한다며 많이 혼났다. 목적을 잃은 행동으로 남편을 많이 걱정시켰다. 차가운 머리는 뜨거운 가슴보다 강하다고 믿는 나는 늘 문제가 생기면 해결 방법부터 찾고 걱정은 나중이었다. 그런데 이번 문제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졌다. 그냥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고쳐야겠다는 의지 조차도 생기지 않았다.


 가끔 드라마에 보면 각기 다른 상황으로 마음속에 부정의 씨앗이 자리 잡은 다양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주인공을 적극적으로 돕는 주변 사람들과 또 다르게는 간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에 따라 이야기의 결말은 천지차이가 난다. 맞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이지만 마음이 아픈 주인공에게는 더 이상 무언가를 해결해나갈 힘이 부족하다. 다행히 너무나 다행히 나에게는 강력한 무기 친언니가 있다. 필요 이상으로 에너지가 넘치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때 문제라고 여기는 일 조차 그까지 것으로 만들어내는 무한 긍정의 파워를 가지고 있는. 내가 그 어둠의 숲을 더 깊이 파고들고 있을 때쯤 백마 탄 왕자님처럼 나타난 언니는 매일 같이 나를 정신없게 만들었다. 말 그대로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와 오늘은 바다 앞 조개 구이 집, 내일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또 그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어디론가 끌고 다녔다. 마법 같이 끝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심해 구렁텅이에서 조금씩 헤어 나오기 시작했다. 웃기 시작했고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돌이켜보니 그때의 내가 더 힘들었던 이유는 마음이 아픈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갑상선암에 걸린 원인도 이렇다 할 명확한 이유는 없었지만 차차 그것을 받아들였으면서 정작 정신이 쇠약해지고 있음은 왜 그런지도 궁금해하지 않고 고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더 곪아 터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아플 수 있다. 그것이 육체이든 정신이든 어떠한 이유로든 아팠다가 나았다가 반복된 삶을 살 것이다. 만약 여느 날과 다르게 감정의 주인 자리를 빼앗긴다면 그리고 그런 날들이 지속된다면 깊숙이 내면을 살펴보고 현상을 직시해야한다. 또 가능한한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고 기꺼이 그 도움을 받아야한다. 살아가면서 받았던 감사함은 천천히 돌려주면 되니깐.


 나도 또 언제 미친년처럼 울어댈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때는 조금 더 빠르게 액션을 취해야겠다. 그리고 괜찮아,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 하고 쓰담쓰담 나를 쓰다듬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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