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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ry Feb 01. 2021

자발적 미혼모

-'품어주심'을 읽고 - 

'엑셀을 세게 밟아 저 난간을 뚫고 태화강에 빠지면 이 복잡한 상황은 정리가 될까?'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남겨졌다.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상주 완장을 차고 사촌들과 과자 사들고 웃는, 아직 아빠의 죽음이 와 닿지 않는 초등학생 아들과 딸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내 걱정에 엄마 집을 비워 두고 우리 집에 들어와 살면서 딸의 심리상태를 걱정스러운 미소로 바라보는 엄마의 애잔함을 생각하니 차선이 자꾸 흐려진다.  


오늘도 자살에 실패했다. 


아이들 걱정, 엄마 걱정, 아끼던 아들 보낸 시아버님 걱정으로 남편처럼 나는 이 세상을 쉽게 훌쩍 떠날 수 없어서 힘들다. 그러고 보면 남편도 결코 발걸음이 쉽게 떨어진 것은 아닐 터. 남편은 새벽에 몸의 이상을 느끼고 일어나 화장실에 가려다가 급격한 심장통증으로 쿵하고 쓰러졌다. 119를 부르고 혼자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울부짖던 그 날은 다시 상기할수록 무섭고 가슴이 아린다.  80킬로의 거구가 쓰러지는 둔탁하고 무서운 '쿵' 소리, 의식 없이 쓰러진 남편의 모습은 바위에 새긴 각인처럼 깊고 선명하다. 




그 기억이 올라올라치면 웹툰 무서운 장면처럼 본 듯 안 본든 쓱 밀어 올려 애써 외면한다.  그러나 이 무서운 기억을 기어이 꺼내게 하는 몇 가지 일들이 있다.  최대한 피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죽음에 관한 책을 읽을 때나,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남편의 장례식과 갑자기 오버랩될 때,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 장면 속에 바이탈 싸인이 멈추는 장면에서는 전두엽이 막기도 전에 눈물이 나와 주체할 수 없어서 당황스럽고 그런 날은 우울의 꼬리가 길어진다. 


오늘 읽은 책은 죽음에 관한 책도 아닌데 빙산 저 아래 들어간 남편의 기억이 올라와 오전 내내 일도 못하고 울고 있다. 청소년 미혼모 돌봄 이야기를 쓴 이효천 대표의 '품어주심'(세상 가장 뭉클한 사랑 품어주심, 아르카)이다. 6년 전 지인으로부터 이효천 대표 이야기를 들었다. 젊은 신학생이 미혼모를 돕는다는 소식에 후원을 시작했고, 그 이야기가 2021년 올해 책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생명의 소식을 전한 순간 사랑을 속삭이던 사람의 배신, 삶이 힘든 부모의 포기 그리고 법을 이유로 선을 그은 학교로부터 버림받은 청소년이 기댄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바깥공기도 한번 마시지 않은 태중의 아이인 것이다. 엄마 힘내 나와 같이 이 세상을 살자라고 외치듯 힘찬 초음파 심장소리에 혼자된 엄마는 희망을 다짐해 본다. 심장소리로 말해준 아기의 사랑은 포기와 죽음의 삶에서 돌아 나올 이유가 된 것이다. 


다리 난간만 보면 복잡한 심경을 내려놓을 수 있는 차원의 문이 열린 것처럼 빨려 들어가고 싶었다. 정신과 치료도 걱정하는 엄마의 눈빛도 사춘기도 안 지난 자녀들도 그 문을 완벽하게 닫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남편만큼 나를 사랑해 줄 것 같은 사람을 만나 위로를 받았고, 새 생명이 생겼다. 아기의 심장 박동을 듣는 순간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칼슘제를 먹고 태교를 하며 열 달 품어 나온 소중한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고 기저귀 갈면서 그 문은 닫혔다. 새 생명과 맞바꾸면서 완전히 잊었다.  아이 아빠는 자녀를 키울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 큰 아이들에게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 거라는 작은 기대는 애초에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아이는 혼인 외 자녀로 출생신고를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양육비 소송을 걸겠다는 하니 그제서야 입금을 시작했다.  




나는 자발적 미혼모다. 청소년 엄마들에게 어린 아기의 심장소리가 살 희망을 주었듯 나에게 막내의 심장소리는 그렇게 이 땅에 완전히 발을 디디게 해 주었다. 막내는 가족 사항에 대해 모른다. 아빠는 돈을 벌기 위해 다른 곳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이 땅에 없는 것이 아니니 막내는 정기적으로 아빠를 만난다. 첫째 둘째는 누리지 못한 아빠의 사랑과 관심을 청소년기에도 성인기에도 많이 많이 받고 자라기를 간절히 바란다. 


열 살 생일을 열흘 앞둔 막내는 요즘 들어 부쩍 '가족'에 대해 묻는다. 친구들이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열쇠고리에 달고 다니는 것을 보더니  우리 가족은 왜 가족사진이 없어?, 아빠는 왜 다른 곳에 살아? 아빠랑 같이 살면 안 돼?, 엄마 아빠는 데이트해? 뽀뽀를 왜 안 해?, 우리 가족은 왜 다른 가족과 달라? 00 엄마 아빠는 이혼했데 그래서 엄마랑 산데... 


가족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막내에게 우리 가족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해 주어야 할 때라고 느껴졌다. 언젠가는 아이에게 이 상황을 설명할 때 아빠를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충격이 덜하도록 잘 이야기해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다. 잘 준비하지도 못했으니 아빠에 대한 원망의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아빠는 형아 훈련소 갈 때도, 누나가 수능 칠 때도 관심이 없고, 할머니 생신 때도 전혀 관심이 없어. 그리고 너 잘 키우라고 나라에서 아빠들이 꼭 줘야 하는 돈도 안 줬어. 그러니 아빠는 우리 가족이 아니야.  내일 판사님께 이혼한다고 해야겠어." 그랬더니 막내는 아니나 다를까 아빠에게 전화해서 아빠를 야단친다. 뭔가 다른 우리 가족을 이렇게 만든 책임은 아빠에게 있었구나 라고 생각한 듯 "아빠는 우리 형아 누나한테 관심 좀 쓰고 용돈도 주고 그래. 그리고 나 키우는데 왜 돈도 안 줬어!" 그동안 쌓인 궁금증과 불안의 덩어리를 토해내 듯 그렇게 한참을 소리 지르고 전화를 끊는다. 그러더니 "이제 다 풀렸다"라고 말한다. 아이는 뭔가 다른 우리 가족에 대해 혼자 고민한 것이다.  다음 날 막내에게 말했다. "오늘 이혼했어 판사님한테 이혼한다고 했거든 이제 정리했으니까 오늘은 눈도 구경하고 맛있는 거 먹자. 뭐 먹고 싶어?" 이혼이 전혀 심각하지 않은 듯 말하는 엄마 말을 듣던 막내는 '맛있는 것'이라는 말에 "난 짬뽕 먹을래!" 하며 금세 신이 났다. 강원도에 가서 눈도 구경하고 짬뽕을 곱배기로 시켜먹었다. 그렇게 짬뽕시키듯 마음이 쉽게 정리가 되면 좋겠다.



눈싸움도 하고 짬뽕도 먹고 할 때는 마냥 웃던 녀석이 다음 날이 되니 "엄마 그럼 나 이제 아빠 없는 거야?"라고 한다. 아빠 없는 아이들 키우는 것이 두려웠던 나인데 막내가 하는 말이 나를 움찔 하게 했다. "아니 이혼했다고 해서 아빠가 없는 게 아니잖아 가족이 아니니 떨어져서 사는 것라는 뜻이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아빠도 계속 볼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 후로 누군가가 '이혼'이라는 말을 하는 것 같으면 막내는 힐끔 쳐다본다. 정리안 된 이상한 가족이었다가 나름 정리는 되었지만 아이 마음속에 허전함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나는 자발적 미혼모를 선택했지만 아이는 아빠를 잃은 것처럼 느끼는 것 같다. 아이의 허전함은 더 심해지고 있다. 요즘은 '우울하다'는 말을 하기도하고 가끔은 '죽고싶다'는 말을 하기도하는게 단순히 관심을 좀 더 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였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생긴다.


아이 아빠는 밉지 않다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않는다. 한때 나를 이 땅에 발 붙이고 살게 해 준 고마운 사람으로 이제는 막내의 아빠로, 아무쪼록 막내가 따로따로 주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고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땅의 미혼모들이 '가족 사항'을 아이에게 설명해야 하는 날이 올 때 아이 마음에 상처가 적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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