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3일
사랑의 주님, 간절히 비오니 주님께서 끝까지 저희와 함께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결코 버리지 않게 해 주소서.
지금까지 이렇게 자라 인생을 계획하도록 이끌어 주신 분은 주님이셨고, 신앙의 씨앗을 심어 주시어 기쁨의 길을 걷게 해 주신 분도 주님이십니다.
얼마 전 아이가 배에서 소리가 나서 집중이 잘 안 된다고 하여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에 검색해 보며 처음으로 아이가 먹을 유산균 약을 구입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중학교 때부터 아이는 배에 가스가 찬다는 이야기를 가끔 했었다. 그때마다 '왜 그렇지? 배가 아픈 건 아니야?' 이런 몇 마디 질문을 하고는 또 며칠 지나면 잊고 그렇게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이다.
요즘은 부쩍 내가 아이를 위해 해 준 게 참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은 퇴근하며 저녁밥을 해 주려고 서둘러 집에 왔는데 아이가 이미 컵라면을 두 개나 먹고 있었다. 순간 '조금만 기다리지, 밥을 먹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조금 일찍 도착해서 아이 저녁을 챙겨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아침을 먹지 않는 아이여서 아침을 잘 차려 놓지 않는다. 아니다. 내가 아침을 잘 챙겨주지 못해서 아침을 거르는 게 습관이 되었고 이제는 아침을 먹지 않는 게 일상이 된 것이다. 요즈음은 아이가 학교에서 일찍 집에 오길래 점심이라도 먹으라고 반찬을 몇 가지 만들어 식탁에 차려 두고 출근을 하는데, 할 줄 아는 게 없어 매번 똑같은 계란말이와 감자볶음, 두부부침이다. 아이가 똑같은 반찬에 질릴 것도 같다. 게다가 점심이 되면 다 식은 음식이 되어 있을 거라 맛도 없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의 정성 어린 음식으로 매끼 든든하게 영양보충하며 힘을 내는데 우리 아이는 그러하질 못하니 늘 아이에게 미안하다.
그렇게 나는 다른 엄마들처럼 풍족한 사랑과 관심을 아이에게 주지 못했다. 아이의 행동, 표정을 관심 가지고 보지 못했고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눈치도 없어서 아이의 작은 반응을 인지하고 신속하고 현명하게 대응하지도 못했다. 언제나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내일이 제일 우선이었던 것 같다. 아이 아침을 못 차리고 출근할 수는 있지만 회사에 지각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지내온 시간이 20년이라 이제는 아이가 엄마에게 기대하는 것도 없고 내가 뭘 해주기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나도 아이의 마음을 읽고 필요한 지원을 해 주고 싶은데 아이의 마음도 모르겠고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관계'의 깊이는 언제나 시간과 노력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아이는 요즘 말이 더 없어졌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방에서 혼자 밥을 먹기 시작했다. 또다시 자신의 방에 출입금지를 명령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이의 심리가 더 궁금하고 걱정이 된다. 어떻게 지내는 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공부는 잘 되는지, 설마 좌절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는 스터디카페에서 자정이 훨씬 지나, 가끔은 새벽에 귀가를 한다. 그리고 나는 불을 켠 채 졸다가 새벽에 잠이 깨서 출근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낮에는 병든 닭처럼 흐물흐물해져 있다. 어쩌면 아이보다 내가 더 불안한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어떻게 생각해야 이 시기를 지혜롭게 보내면서 상처 주지 않고 상처받지 않으며,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으며 지낼 수 있을까.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일까, 포기하지 않고 꼭 지켜야 하는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일까. 무엇을 청해야 하고 무엇에 집중하며 살아가야 할까.
오늘 기도 중에 그 답을 찾게 해 달라고, 그래서 아이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엄마가 되게 해 달라고 주님께 청하였다.
주님의 사랑은 언제나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셨으니
당신 앞에 머물러 있다는 그것이 저희에게는 은총이고 위로가 됩니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어둠 속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지금의 시간은 하느님을 만나는 소중한 시간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