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 이런 내가 싫지 않다.
*이 글에는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포함돼 있습니다.
얼마 전, 내 인터뷰이 중 한 명이 고인이 됐다.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천사가 되어 선한 일 한 가지를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라고 물었고 그는 이런 답을 내놨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어요.” 예고도 없이 눈물이 주륵 흘러버렸다. 인터뷰가 끝나고도 많이 울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라도 해야 살아지는 사람이구나. 그가 고인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믿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죽었을 때 믿기지가 않는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우리의 대화가 내겐 아직 따끈한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부고를 들으면 늘 그랬듯 앞서 들은 부고들이 떠오른다. 살면서 아끼는 사람을 잃어본 적이 아직은 없다. 대신 내가 기억하는 아주 생생한 부고는 두 번의 참사였다. 한 번은 물 속에서, 한 번은 땅 위에서. 하루는 봄날이었다. 나는 대학가의 싸구려 모텔에 있었다. 옷을 입고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애인이 텔레비전을 켰고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가짜뉴스처럼 화질이 나쁜 화면 속 바다 위에 기운 선박이 보였다. 곧이어 “전원 구조”라는 문구가 뜨길래 애인도 나도 별 관심 없이 넘어갔다. 다른 하루는 할로윈 데이였는데, 인파를 뚫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거리에 온통 구급차가 있는 게 이상하다 싶었지만 그저 인파가 싫어서 미친듯이 앞만 보고 걸어 집에 왔다. 그 날 나는 불현듯 새벽에 깨어 유튜브를 켰다. 현장 인파 속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던 사람들이 생각나서. 화면 속 사람들이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이번에도 화질이 너무 흐렸다. 마치 가짜인 것처럼. 아직도 이 두 번의 참사가 내겐 도저히 믿기지 않는 죽음들로 남아있다.
나는 가끔 혼자 사는 방바닥에 주저 앉아 엉엉 울곤 한다. 처음에는 그냥 울음이 나왔다. 계속 울고 있으니까 내가 불쌍했다. 멈췄다가 울기를 계속 반복하면서 이번에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울고 있을까 생각했다. 나는 충분히 울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충분히 울고 있을까? 그러다보니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다 불쌍했다. 어디에라도 대고 “잠깐 멈춰줘! 마음껏 울 시간을 좀 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어느 날은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세상에는 슬퍼할 일이 너무 많은데, 사람들이 충분히 울고 있지 않은 것 같아. 내가 대신 울어줘야 할 것 같아.” 친구는 이렇게 말해줬다. “그런 게 너의 귀여움이지.” 나는 압도되는 슬픔에서 한결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해묵은 가지들이 내게서 우수수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 뒤로 나는 장난으로라도 친구들에게 “나는 맨날 울어”라고 말하고 다녔다. 죽은 사람들은 떠났지만,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 있는 내가 여기 있다.
지난 연말에는 노란색 달력이 하나 집으로 배송됐다. 어떤 날짜들에는 고인이 된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아마 생일인 것 같았다. 그 옆장에는 유가족이 기억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한 줄로 적혀 있었다. 사람들은 울면서도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기억하는 일 말이다. 그 중 몇은 커피 내리는 법도 배우고, 연극도 한다. 다큐멘터리 <장기자랑>에는 희생자 엄마들이 모여 가족극단 노란리본을 만든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의 공연은 수학여행에 가서 장기자랑을 하는 아이들에 대한 것이다. 공연 속에서 아이들은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해 장기자랑을 펼친다. 엄마들은 연기를 하면서 아이들을 추억한다. 엄마들은 이 공동체 안에서 울어도 같이 울고, 대사를 잊어서 얼떨결에 따라 웃고, 주인공 역할을 놓고 시샘하며 싸우기도 한다. 그러면서 미워하고, 또 그럼에도 서로를 품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다큐멘터리가 끝난 뒤, 집에 와서 밥을 왕창 먹고 혼절하듯 잤다. 하도 울어서 온 몸에 진이 다 빠졌다. 눈물을 흘린다는 건 우리 몸의 70%를 이루는 수분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일이다. 물도, 소금도 보충해줘야 한다. 애도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내 목숨으로 애도하는 거다. 그래서 엄마들은 서로에게 기대기로 한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에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데에도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다큐멘터리에는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살아가는 엄마 이야기도 나온다. 어느 날 아주 생생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아이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를 꼭 안았더니 몸 속으로 쏙 들어왔다. 그 뒤로 아이는 꿈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죽은 사람의 목숨은 그 사람의 삶만큼이나 커서, 살아 있는 사람의 삶에 그만큼 무게를 더해주는 것 아닐까? 내 몫까지 살아달라는 말을 되새겨본다. 그 무게가 어떨지 나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가뭄에 단비라 그런지 비 맞는 게 싫지 않다. 담배 맛이 입에 착 감겨서 애써 억누르던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분향소에도 한 번 가지 않은 내가 이런 글을 쓰다니 아주 겸연쩍다고. 감히 바라건대 이 글을 본 모두에게 이 글이 작은 애도의 장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울고 싶은데 그럴 여유가 없어서 울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으니까. 당신이 지금 울고 있다면, 그건 죽은 사람들의 목숨, 그 사람들이 갖지 못한 삶의 무게 때문임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애도를 발신하며. 한없이 잔인한 4월이 또 지나간다.
글 김예린 @morhtnalic
그림 박로빈 @robynne.illust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