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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므 레터 May 06. 2023

당신의 엄마는 어떤 사람입니까?(1)

울엄만 내가 바퀴벌레여도 키운대.

메시지 앱을 켜 요즘 유행인 <변신> 테스트를 엄마에게 해보았다. “엄마 내가 만약에 바퀴벌레로 변하면 어떡할거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냥 상상을 한 번 해보는 거지~.” “예니가 바퀴벌레가 되면 잘 길러야지.” “막 사람만큼 큰데도?” “그럼 큰 방에 넣어놓고 길러야지.” “밥은 뭐 줘?” “엄마 먹는 거 줘야지.” 재미는 없지만 감동이 깊은 답변이었다. 우리 엄마답다.


우리 엄마는 1992년생 에코 베이비부머 세대를 기르는 가장 전형적인 엄마였다. 조기 영어 교육을 위한 인터넷 카페를 드나들며 영어 챕터북을 읽고 듣게 했고 온갖 영화의 불법 복제 CD를 사다 줬다. 늘 교복을 반듯하게 다려줬으며 학교까지 운전해 데려다주고 데리러 왔다. 고등학생 때는 늦잠 자서 짜증을 내며 등교 채비를 하는 나를 따라다니며 한 숟갈씩, 한사코 밥을 한 고봉 먹여주었다. 고3 담임 선생님보다 입시 정보에 빠삭했고 내가 새벽까지 공부할 때 같이 기다려주었다. 동시에 엄마는 엄하고 보수적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생일날, 반 친구들을 온통 불러 모아 생일잔치를 하는 통에 정작 내가 원하는 과자를 못 먹은 나는 입이 댓 발 나와 칭얼댔다. 엄마는 아무도 몰래 나를 안방으로 데려가서 옷걸이로 내 종아리를 때렸다. 사춘기 시절 친구가 손바느질로 줄여준 교복을 세탁기에서 발견하고는 내팽개치며 당장 원상 복구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10시 통금을 만든 뒤 8시 반부터 전화를 해 지금 어디냐며 들들 볶았다. 남자친구와 외박을 하면 사흘간 냉전을 해야 했다. 우리 엄마는 쿨하지도 않고, 날라리도 아니고, 그냥 엄마가 되었기에 엄마에 충실한 모범생 엄마다.



엄마는 사대문 안에 사는 중산층이었다.



엄마 집을 나와 혼자 살게 된 뒤로, 나는 마음이 허전할 때 한영수의 사진집 <연분홍 치마가 꽃바람에>를 펼치곤 한다. 1956년부터 1963년까지 사진가가 찍은 여성들의 모습을 하염없이 들여다본다. 엄마가 태어났을 무렵이다. 나는 사진 속 양장을 차려입은 여성들을 보면서 쇼핑을 좋아하던 외할머니를 따라 거리를 총총 누볐을 어린 엄마를 생각하고, 대학 졸업 사진 속에서 본 진한 립스틱을 바른 엄마의 표정을 기억한다. 치마가 꽃바람에 날리는 동안 강을 바라보고, 신문을 읽고, 택시를 타고, 삼삼 오오 가로수 아래를 지나가며 웃는 여자들을 보면서 나는 저 때로 돌아갈 수 없다면 콱 죽어버리고 싶다 생각하기도 했다. 엄마의 젊은 시절은 내 젊은 시절보다 아름다웠을 거야. 그랬어야만 해.


옛 사진 속에서 엄마는 오버올과 나시를 자주 입었다. 머리는 결혼하고 나서 거의 늘 단발이었다. 나를 낳았을 때 엄마는 28살이었다. 엄마는 토마토와 도토리묵처럼 간이 심심한 음식을 좋아한다. 우리 엄마는 이대를 나왔다. 어려서는 쇼핑을 무척 좋아했던 외할머니를 따라 광장시장이며 동대문 시장을 자주 다녔다. 할아버지는 은행에서 오래 일하셨고 엄마는 사대문 안에 사는 중산층 가정이었다. 아빠와는 회사에서 만났지만 내게 직접 말해준 적은 없고, 아빠를 무척 좋아했다지만 이 역시 나에게 직접 말해준 적 없다. 엄마는 우리가 시골로 이사 오는 걸 반대했고 시어머니랑 사이가 정말 나빴다. 엄마는 배우는 일을 게을리한 적 없다. 다섯 식구 삼시 세 끼를 꼬박꼬박 직접 해 먹이면서도 틈을 내 한자를 공부해 2급을 따냈고, 가끔은 영어책을 뒤적여 필사했고, 야간 학원을 다니며 자격증을 따 지금은 간호조무사로 일한다. 엄마는 위궤양 때문에 오랫동안 약을 먹었고, 몇 해 전에는 허리를 크게 다쳐 입원도 했었다. 나는 그때 일을 핑계로 병문안을 가지 못했고 엄마는 그 이후로 쑥뜸 신봉자가 되었다.


어느 날 엄마는 갑자기 하모니카에 꽂혀 며칠 동안 밤마다 하모니카를 불렀다.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엄마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을까 봐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게.



글 김예린 @morhtnalic

그림 박로빈 @robynne.illust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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