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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레네 Jul 22. 2024

내 유일한 세대원, 예준이에게.

우리 둘만 남았네

예준아 안녕!

아직 우리 예준이는 이 편지를 읽지 못하지만, 곧 글자를 배우고 이 편지를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우리 예준이에게 아빠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을까? 기억에 남아있긴 한 걸까? 그렇게도 예준이를 끔찍이 생각했던 아빠라는 존재가 예준이의 머릿속에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다 휘발되어 버렸다고 생각하면, 엄마는 가슴 한쪽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아. 그러다가도 한번씩 예준이의 입에서 아빠와의 추억이 툭툭 튀어나올 때면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아빠에 대한 그리움, 예준이에 대한 안쓰러움이 뒤섞여 목이 메어올 때도 있단다. 그렇게 가슴이 쿵 무너졌다가, 목울대에서 슬픔이 토해질락 말락 하다가를 반복하며 엄마는 하루하루를 잘 버텨내고 있어.


어제는 예준이가 소꿉놀이를 하다가 가족들을 준다며 컵 여러 개에 과일 모형을 하나씩 담아 과일 주스를 만들더라.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는 거야.


"이거는 엄마꺼, 이거는 함미꺼, 이거는 하부지꺼, 이거는 이모꺼, 이거는 아빠꺼.
아빠는 하나님 나라 갔다가 집에 와서 먹는대."


예준이의 한 마디가 엄마를 또 울컥하게 만들었지 뭐야. 우리 예준이에게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일까.


엄마, 아빠 하나님 나라에서 뭐하고 있게?
아빠 고양이 퍼즐 하고 있대.

엄마, 아빠는 하나님 쥬아해서(좋아해서) 하나님 나라 간 거야? 예준이도 하나님 많이 쥬아하면 하나님 나라 갈 수 있어?
예준이 하나님 나라 가서
얼른 아빠 만나고 싶다."


어른인 엄마는 하나님 나라가 있다고 믿으면서도, 그곳에 가면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매일 밤을 침대에서 눈물로 보내는데, 우리 예준이에게 하나님 나라는 정말 가깝고 선명한 곳인가 봐. 예준이와 함께 있으면 엄마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어른의 시간들이,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하나가 된 기분이 되는 것만 같아. 아빠와 함께 셋이 그저 행복하기만 했던 과거도, 아빠의 빈자리가 서늘하게 때론 쿡쿡 쑤시게 아픈 현재도, 모든 것이 안개에 덮여 불안하기만 한 미래도... 그 모든 경계가 희미해지고 그저 눈앞에 놓인 지금이 모든 시간을 지배하게 돼. 예준이 발가락에서 나는 꼬릿한 냄새, 깔깔거리며 웃는 맑은 웃음소리, 말캉하고 보드라운 살결, 이 모든 게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자책하고 불안해하던 엄마에게 온전히 지금에 집중하게 하는 힘을 주더라.


아빠가 떠난 후, 엄마는 아빠의 빈자리 때문에 가장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 물론 그 빈자리가 느껴질 때마다 가시에 찔리듯 쿡쿡 아파올 때가 많지만, 그보다 더 엄마를 힘들게 하는 복병이 있더라. 그건 바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책이었어. 밤 10시쯤, 예준이를 재우고 엄마도 자려고 침대에 눕는 순간부터 자책이 한번 시작되면, 그 개수와 속도가 얼마나 무섭게 따라붙는지, 어떤 날은 새벽 4시까지 수백 개, 수천 개의 자책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라니까. 너무 괴로웠고, 힘들었어. 누가 엄마에게 이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려줬으면 했어. 엄마가 조금 더 일찍 검진을 시켰더라면 어땠을까, 처음부터 큰 병원으로 갔으면 어땠을까, 산소포화도가 90 이하로 떨어졌을 때 다급하게 의사를 일찍 불렀다면 어땠을까, 그날이 일요일이 아니어서 근무하는 의사가 더 많았다면 어땠을까... 엄마의 머릿속을 열어서 뇌를 꺼낼 수만 있다면, 뚜껑을 열고 뇌를 꺼내어 자책을 만들어 내는 모든 신경 회로들을 하나하나 가위로 잘라내고 싶을 정도였어. 엄마가 한참 고시 공부를 할 때, 무언가를 기억하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이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무언가를 잊으려 하는 것,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그와 비교도 안 될 만큼 고통스럽고 처절한 고문 같은 일이더라.


그렇게 자기를 학대하는 고문 같은 밤, 그 고통의 시간들이 한 달 반 정도 지나갈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과연 신보다 위에 있을까?', '나에게 과연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힘이 있을까?', '나에게 과연 온 우주의 질서를 거스르고 뒤바꿀 주권이 있을까?' 그리고는 이런 생각으로 이어졌어. '그때로, 주어진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래도 결국 그게 내 최선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엄마를 찌르던 자책의 화살들은 조금씩 힘을 잃기 시작하는 거 있지! 그 화살들은 어느새 엄마를 위로하는 포근한 이불이 되어있더라. 엄마 때문에 아빠가 일주일 만에 그렇게 됐다는 이 끔찍한 자책이, 어느새 나 덕분에 아빠가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사랑받으며 일주일간 삶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감사로 변하는 순간이었어.


그때부터였을까, 자책의 고리가 하나하나 끊어져 가며 힘을 잃던 시간이...! 엄마의 삶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고, 이제 앞으로 살아내야 할 눈앞의 시간들이 선명해지기 시작했어. 예준이와 나, 우리 앞에 어떤 삶이 펼쳐질까. 아빠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그 시간들이, 예준이와 엄마에게는 허락된 값진 시간들이야. 이 시간들을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가야 할까!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으로 삶이 희미해지고 불안해질 때, 왠지 모르게 분주해질 때, 엄마는 화장터에서 유골함에 부어지던 그 흰 가루를 떠올리곤 해. 인생의 수많은 사건들 중, 그때만큼 큰 울림을 주는 사건이 또 있을까! 아빠가 엄마와 어린 예준이에게 자기 몸을 바쳐서 준, 보석같이 빛나는 순간이라고 엄마는 믿어. 그 흰 가루를 우두커니 보고 있는데, 속에서 울음이 아닌 웃음이 나오는 거 있지. 모든 인간이 정말 이렇게 끝난다고? 겨우 이런 흰 가루가 되려고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낸 것이라고? 정말이지, 그 순간만큼은 잠시 슬픔이 잊히고 도리어 얼마나 우습고 허탈했던지.


인간은 스스로 참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연약하고 무력한 존재임이 분명해. 의료 기술이 그토록 눈부시게 발전했어도, 여전히 암과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수는 줄어들지 않는 것 같아. 자연재해는 또 어떻구.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세상은 또 어떻구. 아빠의 모든 살과 피와 근육이 태워지고, 뼈가 그렇게 조각내지고 부수어지고 갈려 고운 가루가 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엄마와 어린 예준이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엄마가 최근에 읽은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오더라. '시간이 마모시키는 것들은 비본질적인 것들'이라고.


요즘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해 가. 우리 예준이가 자라서 맞이하게 될 세상은 더더욱 빨라지고 분주해지고 복잡해지겠지. 그 속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뭘까, 예준아!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 시간이 마모시키지 못하는 진실된 것들은 뭘까! 아빠의 죽음이 여전히 많이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건을 통해 엄마는 조금씩 삶을 정돈하고 재정비하게 되어 감사해. 화려하고 눈부신 것들로 겉을 칭칭 휘감는 것,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 아등바등하는 것, 남들이 가는 대로 그저 나도 휩쓸려 가는 것... 이 모든 게 결국 텅 빈 내면을 감추려는 나약한 인간의 발버둥은 아닐까!


예준아, 삶이 어떨 땐 참 복잡해 보여도 결국 단순한 것 같아. 우리 인생을 살다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 때, 본질을 다시 붙잡고 싶을 때마다 늘, 그 흰 가루를 기억하자. 우리를 힘들게 하고, 미련이 남게 하고, 아쉽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시기하게 하는 무언가가 생길 때마다, 늘 그 가루를 생각해 보자. 우리의 인생이 결국 그렇게 한 줌의 가루로 끝날 것임을 기억하자. 엄마도 예준이도, 언젠가 그렇게 한 줌의 가루가 되는 날이 있겠지! 길지 않은 우리의 남은 삶을, 우리는 어디에 쏟아야 할까.


우리 삶을 솥에 왕창 붓고 물을 끓이듯 팔팔 끓이고 나면, 무엇이 남게 될까. 결국, 사랑 아닐까? 예준아! 그 누구도 절대 장담할 수 없는 인생, 누군가를 미워하며 보내기엔 너무나도 짧고 아까운 이 인생, 우리 더 사랑하며 살자. 우리처럼 마음 한구석에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이들을 보듬으며, 그들과 연대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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