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생각하면(구조화)

- 지식을 체계화하기

by 리라

이제부터 반원의 공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부터는 적극적으로 “Read by hand” 해야 한다. 이 공식은 수업 시간에 판서하는 방식인데, 그래서 한때 “반원 선생님”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고백하면 내가 만든 건 아니다.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던 시절, 큰 영향을 미쳤던 한 스승님의 판서를 따라 한 것이다.

고등학교 학창 시절 담임 선생님께서 윤리 과목을 담당하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여태까지 배웠던 서양철학사 쪽지 시험을 본다고 하셨다. 두 가지 마음이 교차했다. 준비는 안 했는데 잘 봐야 한다는. 한 마디로 도둑놈 심보다. 지금과 달리 학급 인원이 꽤 많았다. 지금은 교실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대략 20명가량 앉아 있다. 예전에 비해 1/3로 줄었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많으면 이른바 생존 경쟁, 살아남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더욱 커지게 된다. 정말 예전엔 학생 이름을 외우지 못한 담임 선생님도 있었다. 암튼 그동안 배웠던 사상가의 이름과 그들의 철학을 최대한 떠올리며 나의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했다. 암기 한 번 안 한 내가 그런대로 잘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정-반-(합)의 논리인 세로 계보로 작성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본격적으로 활용한 것이 반원의 공식이다.

한때 유행했던 말 중에 ‘엄친아’가 있다. 나와 주로 학업 성적 면에서 비교되는 엄마 친구 아들이다. 부모님들은 왜 자녀의 성적을 가까운 지인의 자녀와 비교할까? 설마 자녀한테 상처를 주고 싶은 건 아닐 것이다. 그저, 그 방식이 자녀의 성적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지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예를 들어 요즘 읽고 있는 소설 중 한 부분을 소개한다.


그리고 저녁 내내 샘은 올스 부인과 올스 양이 헷갈렸다. 그들은 똑같았다. 둘 다 키가 크고 말랐으며, 수줍고 유쾌하고 과묵하고, 양식도 시대도 모를 칙칙한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들의 소박하고 수수한 외모에 견주니 화려하게 움직이는 오른팔에 진주 팔찌를 하고 하얀 새틴 드레스를 입은 프랜은 극장의 스타였다. 게다가 그녀는 살짝 공격적이고 요구가 많기도 했다. (하략)
- 싱클레어 루이스, 「도즈워스」 중


주동 인물의 성격은 반동 인물이 등장하면서 분명해진다. 소설 속 인물의 유형처럼 비교 대상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지 않아도 상관없다. 성격의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얼마든지 아래와 같이 반원 공식이 가능하다. 의미 부연하면, 반원으로 묶이는 두 대상은 기본적으로 공통점이 있는 대상이나, 차이점이 있을 때 아래와 같이 묶을 수 있다. 즉, 반원은 비교 대상을 통해 제재인 A를 확인할 수 있는 구조화 방법이다.


문제는 A와 B를 구분하는 건 잘하는데, 공통점 및 차이점까지 설정할 수 있느냐에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사고력’이 발휘된다. 그림책, 「아모스와 보리스」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렇게 쓸 수도 있겠다. 먼저 쉬운 차이점부터. 아모스는 생쥐여서 육지에 사는데, 보리스에 비해 아주 작은 동물이고, 보리스는 고래여서 바다에 사는데, 아모스에 비해 엄청 커다란 동물이다. 고로 공통점은 둘 다 포유류 동물이다. 두 동물이 다른 곳에 살지만, 포유류로 같다는 것은 책에서 실제 반복 서술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만을 발견하려고 반복적으로 읽을까? 그렇다면 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그림책은 생쥐와 고래, 두 동물의 우정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끝! 정말 끝내도 될까? 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아이 독후감으로. 환기하면, “나도 아모스가 보던 바다를 바라보고 싶다.” 이 부분이다. 내가 충격받았던 부분이고, 이 글 때문에 지난 삶을 성찰하게 되었다. 주제를 아까와 같이 발견한 학생이 쓸 수 있는 문장일까? 내가 요구하는 공통점은 사실적 독해 그 이상에 있다. 그러니까 글 깊숙이 본질을 향해 입수해 보자. 애당초 A가 무엇인가? 이 책에서는 ‘아모스’이다. 어떤 글의 종류든 결국 발견해야 하는 가장 기본은 A에 대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A는 B와 다른 것이다. 그 다름을 발견하는 것이 읽기의 본질이다. 아모스는 보리스를 당연히 ‘바다’ 한복판에서 처음 만난다. 그럼 아모스는 바다에 왜 나갔는가? 이전에 내가 썼던 글의 마지막 인용을 떠올려 보자.

그녀는 문득 어린 시절에 읽었던 이야기책을 떠올렸다. 정확하게는 아모스였고, 더 세밀하게는 아모스가 바라보던 바다였다. 아모스는 생쥐면서 거대한 바다를 사랑해서 스스로 배를 만들었다. 그리고 항해를 시작한다.

아모스라는 생쥐는 단순히 포유류가 아니라, 희한하게도 생쥐면서 바다를 사랑하는 주인공이다. 보리스 역시 뭍에 나오면 죽게 되는 존재이므로, 바다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할 때, 둘 간의 공통점이 그들의 외형적 특징에서 내면적 특징으로 쑥 들어가게 된다. 마치 서핑에서 다이빙으로 바뀌게 되는 것처럼. 이것이 쌓이면 읽기에 저절로 재미가 붙는다. 땅속 보물을 하나씩 끌어올리는데 이것보다 더 한 쾌락이 있는가?


내 수업이 진지하지만, 재미있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다. 결국 텍스트를 요리조리 맛보게 하면서 학생들의 입맛, 읽기 수준을 올려야 한다. 언제까지 싸구려 암기 요리를 입 안에 쑤셔 넣겠는가? 즉, 자습서나 해설서를 무조건 암기하면, 사고력을 신장할 수가 없다. 아모스는 생쥐인데도 바다를 좋아한다. 좋아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생쥐인데도 바다의 가장 큰 동물인 보리스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이 멋지지 않은가? 반대로,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아주 작은 육지의 생물, 아모스에게 호의를 베푸는 보리스는? 이들은 ‘바다를 좋아함’을 넘어서 어떤 공통적 성격이 있는가? 이것을 발견하기 위해 이들의 행동 방식을 낱낱이 찾으며, 세로로 구조화해 보자. 아까 서양철학사의 계보를 말한 것처럼 ‘시간 순서’에 따른 인물의 행위를 써 보고, 특징을 메모하는 것이다. 나는 수업 시간을 통해 학생들에게 질문하며 바닷물에 강제 뛰어들게 했지만(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학생도 있었다. 어쨌든 물을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스스로 읽을 때는 여러분 스스로가 저의 흉내를 내 보는 것이다. 끝없는 자기 질문을 통해 책의 맥락을 샅샅이 뒤져 보자. 그리고 세로 적기 해보자. 예를 들어 ‘아모스’의 입장으로 항해 일지를 썼다고 상상하고 아래와 같이 작성할 수도 있겠다.


<아모스 일지>
항해 준비 :
항해 시작 :
폭풍우 :
보리스와의 만남 :
…….


내용의 구조화는 결국 체계적이고도 논리적인 사고에서 만들어진다. 논리적 사고력을 갖춘 사람은 본질적으로 질문의 가치에 대해 알고 있다. 문답의 방식을 통해서 사고력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으면 공포에 떠는 학생을 위해 연습시킨 답변도 있다. “잘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실제 서울대 면접에 가서 이렇게 답변하고 퇴장한 졸업생도 있었다. 그 학생이 와서 감사 인사를 했다. 선생님 아니었으면 도롱뇽 흉내만 내고 나왔다고. 대답 못 하는 학생들의 비언어적 표현을 도롱뇽에 빗대어 얘기했다. 혓바닥 날름거리는 모습 말이다. 모르는 것을 인지하는 것도 사고작용이다. 물론 회피형 답변은 곤란하다. 요사이 수업 시간에 질문하면, 얼굴도 들지 않고(저를 보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모르겠어요.” 답변하는 학생들이 있다. 아니, 단순한 질문인데, 모를 리가 있나. 해서 그 학생 자리에 가 보면 당당하게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 하긴, 수학이 안 되니 국어를 못 한다. 그 마음 너무 잘 안다. 내가 이렇게 진단하면 혹시 “전 국어 (점수는) 잘 나오는데요.”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이제부터 좀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왜 이 책의 제목이 ‘톺다 국어’일까? 그리고 ‘국어의 심장’을 가질 것을 권유할까? ‘제목’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언급한 바 있다.

지금의 읽기 시험에서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건 오로지 ‘사실적 이해력’과 조금의 ‘논리력’이다. 수능의 국어 시험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지선다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국어의 경우 객관식 문형끼리의 충돌 사고(이중 정답 등)를 방지하기 위해 제시문에 확실한 근거를 심어 놓고, 선지와 관련짓는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설정해도, 문학 영역은 함축적 언어로 이루어져 있기에 다의적 해석이 혹 가능할 수 있다. 그것을 방지하는 것이 바로 한정된 감상법을 제안하는 <보기> 이다. 그러니 문학 영역에서는 비문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비를 피하기 위한 수박 겉핥기 문제가 주로 출제된다. 학생들이 비문학이 더 어렵다고 하는 건 사실 어불성설이다. 어떻게 직접적이고도 설명적 언어로 이루어진 제시문이 더 어려운가. 읽기 단계 중 가장 높은, 감상의 단계를 요구하는 현대 시가 가장 어려워야 한다. 이런 형국이다 보니, 학생들이 어느 날부터 깊이 있게,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문제 푸는 기술만 익히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국어의 핵심을 놓친 공부를 하게 되며 함정에 빠지게 된다. 물론 인체 기관 중 심장만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심장에서는 ‘정서’를 느낀다. ‘심장’이 뛰지 않으면, 인간의 생명은 끝난 것이다. 국어 교사로서 감히 주장하건대, 고등학교 국어 교육의 목적이 제시문 빨리 읽고, 이해적 차원의 정답을 ‘빨리 골라내는 인간’을 기르는 데 있는가? 나를 보지도 않고, “몰라요.” 하는 학생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바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입시 문제를 객관식으로 제시하여, 획일화된 정답을 빨리 고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입에 성공하기 위하여 이런 방식대로 교육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절절하게 이 책을 쓰는 이유이다. 아모스는 바다에 나가면 안 되는가? 아모스가 톺아보며(바다를 꿈꾸고 탐험하며), 보리스도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어 과목은 다른 과목에 비해 ‘지식을 체계화’하면, ‘나’와 ‘세계’의 범주가 어제와 달라진다. 지식이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서와 관련된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2부에서 본격적으로 할 것이기 때문에, 역시 ‘심장’에 대한 언급으로 논의를 마무리하겠다. 초등학생 때 딸이 스스로 지은 자신의 영어 이름이 무엇이었을까? 바로 ‘아모스’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는, 사랑하여 본질을 보인 이름이다. ‘톺다’로 인해 아모스를 알게 되면서, 그의 심장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