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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Oct 13. 2023

왜 초보 시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나요.

더 듣고 싶은 초보 시절 이야기

 




사람들은 왜 초보시절에 대해서는 잘 얘기하지 않을까?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운전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것은 초보운전자로서 운전에 대해 더 알아가기 위한 발버둥의 일환이었다.



그러다가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반복되는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초보시절에 대한 얘기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초보 시절의 일이 오래전 이야기여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초보시절에서 벗어나 현재는 운전에 능숙한 사람들의 대화 패턴은 비슷했다. 그들은 주로 초보운전자인 나에게 격려와 조언 정보 등을 아낌없이 건네주곤 했다.



그러다가 대화가 끝날 즈음, 내가 “그런데 초보시절에 실수하신 적은 없었나요?”라는 질문을 건네면 그제야 그 말이 나오곤 했다. 마치 침대 밑에서 오래 묵은 먼지가 나오듯. “... 생각해 보니까 이런 일도 있었지”라고 기억을 더듬어 나오는 그 이야기들은 이내 먼지 덩어리가 되어 공처럼 데구루루 굴러 나오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그것들을 '나이스 캐치' 라며 잡아채곤 했고.



때로는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그들의 이야기들이 너무 엉망진창으로 실수 투성이어서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놀랍기도 했다. 그렇지만 놀란 내 반응에 오해라도 한 건지, 들은 재빨리 이야기를 마무리지으려 했다. 손을 내저어 공중에 날리는 먼지들을 휙휙 떨쳐내듯. 그리고 어딘가 약간은 겸연쩍어하며 이런 말을 덧붙이곤 했다. “물론 지금은 안 그러지”라고. 변명하는 듯.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의 초보시절 얘기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왜요? 너무 재밌는데.



사실 나는 초보 운전자들의 이야기들을 더 많이 듣고 싶다.



운전 선배들에게 격려, 조언, 운전에 대한 팁 이런 것들을 전해 듣는 것도 물론 유익한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솔직하게 말해서 누군가의 초보 시절 얘기를 듣는 게 더 좋다.



메시지가 없는 곳에서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그런 이야기들은 엉망일수록 재밌기까지 하고, 블랙 코미디를  날카로운 쾌감을 전해주기하며, 그 아이러니한 유머 속에서 뭔가 안도감마저 들게 만들어 준다.




이를 때면, 내 친구의 초보시절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거의 20년 지기 친구인 A양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다.

이 친구의 장점에 대해서라면 구구절절 풀어놓을 수 있지만, 최선을 다해서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 친구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아가고, 마음에 진심과 소신이 있으며,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가 운전마저도 잘한다는 사실에 나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친구의 운전 스토리는 '운전을 시작했다'(시작) 그리고 '운전에 능숙해졌다'(결론)만 있는 이야기였다. 사실 그것밖에 들은 바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운전을 배우기 시작한 뒤 갑자기 생겨난 의혹에 뒤늦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던 것이다. "아니 그런데 처음부터 그렇게 운전을 잘했어? 초보 때 완전히 실수한 적은 없어?"라고.



친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가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때 운전이 서툴렀던 친구가 그만 출근길에 학교 교문을 차로 들이받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쿵 소리에, 학교 사람들이 놀라서 뛰쳐나왔다나.



아니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나는 왜 이제야 들었지? 그 재밌는 얘기를 들은 순간 나는 친구를 더욱더 좋아하게 되었다.



사실 친구가 근무했던 그 학교는 나의 모교였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모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의 교문을 들이받아 준 친구에 행동에 대해 어쩐지 통쾌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 친구가 초보 시절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기억해 내고 들려줬으면 좋겠다. 또 없나? 아니 근데, 어쩌다가, 어떻게, 얼마나 교문을 들이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친구가 생략해 버린 그  부분들이 몹시 궁금하니 다음에 친구를 만나면 더 캐봐야겠다. 물론 내가 교통사고 조사관은 아니지만.




시댁에서 제사 음식을 차리다가, 시어머니의 초보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된 것도 재밌는 일이었다. 제사 음식을 준비한다고 형님과 시어머니 그리고 내가 부엌에 들어가 있었을 때, 남편도 부엌에 도울 일이 없나 들어왔다가 시작된 이야기였다.



역시 대화의 시작은 내가 운전을 배우고 있다는 말이었고, 운전 실력이 엉망진창이라는 흐름으로 이어져갔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선배 운전자들의 (시어머니와 형님) 따스한 조언과 격려가 잊지 않고 전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모두가 잊었던 기억을 남편이 갑자기 떠올린 것이다.

"아, 맞다! 엄마가 예전에 논두렁에 차를  빠뜨린 적도 있었지?"라고. 그랬다. 시어머니에게도 초보 운전자 시절이 있으셨단  말인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 말에 시어머니는 멋쩍어하셨고, 형님은 맞다면서 예전의 기억을 함께 되살리려 하시다가... 그러다가 어쩐지 이 이야기도 황급하게 마무리되었다. 뭔가 제대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났었다는 암시들만 남겨놓고. 아니 저는 뒷얘기가 더 궁금한데요...



그런데, 왜 다들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들만 까마득히 잊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초보 시절의 이야기를 일종의 실패 경험이라 생각해서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걸까?

그래서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서 그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일까?



사실 내가 더 자세히 듣고 싶었던 건 오히려 초보운전자로서의 시간들이었으며, 좀 더 나아가 운전을 아예 포기해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내 주위의 사람들을 계속해서 인터뷰(?) 해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아직은 내가 원하는 이야기들이 부족하다. 나는 여전히 운전에 미숙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목마르다.



사실 초보 시절이 없다시피 그 시절을 후다닥 통과해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 내게 크게 도움 되지 않을 것 같다. 일단은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그러나 나처럼 서툰 사람들이 자신의 미숙함에 대해서 털어놓는다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것은 때로는 비난조차 감수해야 하는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조차 내가 운전 초보자임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일이 몹시 부담되기 때문이다.




프로 운전자가 되기 전에, 초보 운전자들의 이야기들을 좀 더 수집하고 싶다.



내 초보 운전 이야기에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유머와 따뜻함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말하지 않으려던, 미처 기억하지 못했던, 묻기 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그 이야기들.

그 서툰 서사 속에서 나는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그 이야기 속 생생함이 다시 내게 되돌아오는 느낌이다. 마치 살아있는 무엇처럼.



당분간은 좀 더 초보 운전자 이야기 수집자로 살아가 볼 생각이다.

아마도 즐거운 사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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