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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Oct 16. 2023

우리는 모두 초보이다

아니라고 하면 그건 거짓말





어른이라면 흔히 운전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뻔한 말들에 휩쓸려 운전을 잘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서 왜 자동적으로 그런 결론이 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른이 되면 허용되는 것이 운전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결론일까? 사실상, 운전면허는 만 18세부터 취득이 가능하다. 어릴 적부터 '18세 미만 구독불가', '18세 미만 이용불가'라는 문구를 보며 자랐으므로 18세는 내게 성인이 시작되는 나이였다. (물론 민법상 성인은 만 19 세부 터이므로 사실상 술, 담배는 만 19세부터 허용되지만) 어쨌든 , 담배보다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시기가 1년 앞서 있다는 것이다. 선거권 허용과 함께. 즉, 어른의 문턱에서부터 허용되는 게 운전면허 취득과 선거권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른이 되자마자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좀 더 나이를 먹으면 직장을 얻고 차를 구입하여 운전을 능숙하게 하는 그런 모습이 어른의 모습이라고 상상하게 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다소 진부한 일일 수는 있어도.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운전을 잘하지 못하는 나는 어른스럽지 못해."라는 말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너무 쉽게 완성된 저 말이 어딘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했던 말들은 그 부당한 문장에 대한 반박문이  수도 있겠다.



이제 보니 저 딱딱한 빵 같은 융통성 없는 말이, 아론 벡(A. T. Beck)이 말했던 '자동적 사고'와 관련되는 것 같다.


 자동적 사고란, 어떤 자극이 있으면 그것에 대해 즉각적, 자발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사고는 주변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신념을 반영하는 것으로 왜곡되어 있거나 극단적일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인지적으로 오류가 있는 이 자동적 사고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적 사고를 만들어 내는 인지적 오류의 종류들로는 흑백논리(이분법적 사고), 과잉일반화, 의미확대와 의미축소, 개인화, 잘못된 명명, 감정적 추리, 선택적 추상화 등이다.

이런 인지적 오류는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생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무언가를 잘하지 못해도 된다고 딱히 배운 적은 없었다. 어떤 일을 시작하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배웠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간 해낸다고 배웠다.

2002년 월드컵 '꿈은 이루어진다'는 문구는 2022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유행어까지 연결된. 그러므로 꿈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으며, 중요한 건 노력과 신념이라는 세상의 명제가 2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왔다.


무언가를 잘하지 못해도 된다고 배우고 싶었다.

운전과 관련해서, 내가 들었던 사람들의 한숨, 안타까운 시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런 순간들에 직면했을 때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초보자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다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나 스스로는 달랐을까? 나 역시 나 스스로에 대해 관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남들도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주지 않았을 때,  자신도 스스로에게 그런 다정한 말 따윈 해주지 않았다. 나 스스로가 못하는 일을 남한테 바라면 안 되는 건데. 나 역시 자동적으로 나를 탓하는 것에만 능숙한 사람이었다.




아론벡의 인지치료 해결법으로는 '소크라테스식 대화'가 제시된다. 대화랑 문답을 통해 상대편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으로 일명 '산파법'이라고도 불린다.

인지치료가 글쓰기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면, 글쓰기라는 산파가 나에게 무엇을 안겨줄 것인가? 아까 언급했던 그 '반박문'?


에세이든, 반박문이든 어쨌든 여기까지 썼다.

다만 이 이야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이건 성공 스토리는 아니라는 것. 

여전히 어떤 분야에서 초보인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건 열린 결말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꽉 닫힌 결말도 아니다. 이 이야기의 끝은 문이 아닌 길이다. 그냥 이어져 있는 것.


내가 무언가에 능숙해지더라도 나는 어떤 분야에서든지 다시 초보자가 될 것이다. 살면서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만날 것이고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무지함에서 시작하는 일이므로. 즉, 나에게는 초보의 가능성이 무한하게 열려 있을 터이다. 내가 몇 살을 더 먹든, 아무리 나이가 먹든 간에 나는 다시 초보자가 될 수 있다. 아니 죽기 직전까지도.


그렇기에 나도 초보,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모두 어디에서 인가는 초보일 뿐이다.

아니라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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