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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Sep 08. 2023

초보의 삶  

그중에서 제일 초보인 것

 

 




어느 날 나는 퇴근길 버스 안에서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서 외치고 말았다.

“집에선 서툰 엄마고, 직장에선 신입인데, 운전도 초보라니!”라고. (물론 속으로)



내면의 목소리라 버스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릴 일은 없었으나, 그 목소리는 스스로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컸다.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나는 저 말을 몇 번이고 악을 쓰듯 외치고 있었다. 들리지도 않는 소리에 어쩐지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는데, 사실 가슴이 먹먹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외침은 어른으로 살지 못하는 어른이 외치는 패배 선언 같은 게 아니었을까 추측되었다. “그래, 나 못한다! 못해!” 뭐 이런... 솔직히 나는 패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동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움찔거리는 나를 세상 사람들이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에서 비난 혹은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혹은 나의 어설픔에 어리둥절 해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나는 잘하지 못했다.

  


언제나 차분하고 침착한 사람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런 태도로 모든 일에 능숙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즉,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말이다.

 


이십 대만 해도 아직 날 것 그대로의 젊음을 통제하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이 그래도 어느 정도 납득 되었다. 아직 젊으니까. 성인이 되자마자 무엇이든 잘할 수는 없는 거라고 나를 다독이며 인생의 길을 찾아보려고 했다.

 


이십 대 후반에 결혼을 하여 삼십 대 초반에는 아이를 낳아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에 적응하느라 몹시 바쁜 시간들이었다. 새 가정을 꾸렸으니 이제 정말 어른의 삶이 시작된 거라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곧 삶이 가지런히 자리 잡고, 많은 것에 능숙해질 거라고 나는 계속해서 나를 도닥도닥 위로했다.

  


그리고 삼십 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나는 화가 났다. 그랬다. 어쩐지 화가 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트레스가 좀 과다한 상태였던 건 인정한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에 일하던 직장과 전혀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여 신입으로서 새 출발을 했다. 마침 그 시기에 남편도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직을 했다. 나의 재취업과 남편의 이직으로 인해 살던 지역마저 떠나게 되었기에 이사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이삿짐들은 몇 달째 여기저기 처박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워킹맘으로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받았던 느낌은 괴리감이었다. 그것은 삶에 대한 괴리감이었다. 이렇게 많은 책임감을 이고 지며 바쁘게 살고 있는데도, 어쩐지 아직도 내가 내 삶의 초보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대체 언제까지?



직장에서 신입으로 새 출발 하는 일은 그래도 내가 용기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에 나름 씩씩하게 잘해 내려고 최선을 다했다.

어쨌든 첫 직장이 아니니까 어찌어찌 축적해 온 사회성으로 철없음과 부족함을 덮으며 헤쳐나갈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아이를 키우다가 다시 사회로 나온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으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러나 입사 때부터 신입 중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았으므로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책상 위 포스트잇처럼 마음에 남아 떨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남들보다 의식적으로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일단은 배울 것들이 참 많았다는 것도 힘들었다. 몇 달 동안 매일매일 새로워서 잘 모르는 업무가 내 앞에 닥쳤고 나는 하루 종일 여기저기 물어보러 돌아다니곤 했다. 업무에 적응되었다는 말이 절대 쉽사리 나오지 않는 나날들이었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디지만 아주 조금씩 일이 편해지는 게 느껴졌다.

알람이 없는 주말에도 평일 출근할 때 일어나는 시간에 눈이 떠질 정도로 직장에 익숙해지던 그때, 갑자기 과연 이 직업이 정녕 나의 길인가? 하는 물음이 생겨났다. 왜 이럴까? 왜 정착하지 못하는 것일까? 새로운 직업을 찾아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다면 대체 나는 언제까지 신입으로 살아야 하나.



엄마로서의 삶은 매해가 새로웠다. 그게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아이가 크면서 점점 엄마로서의 삶이 익숙해질 줄 알았지, 아이가 성장함으로써 엄마의 과업도 매번 달라진다는 것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또한 가장 가까운 타인인 자녀와의 관계를 다루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아무리 내 자식이라지만 내가 어디까지 자녀의 삶에 개입하는 게 진정한 사랑인지 가늠하기란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결국 육아도 공부가 필요했다. 잘 모르니까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언젠가 병원에서 아이의 몸무게가 헷갈려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그것도 몰라요?"라고. 네, 모릅니다. 모르는 일 투성이에요. 진짜다. 엄마가 알아야 하는 것은 너무도 많고 나는 여전히 많은 것들을 몰라서 때로는 안다고 생각하는 일조차도 헷갈린다.

그런 혼란 속에서 나는 그저 우왕좌왕하면서 아이의 손을 잡고 나아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엄마로서의 삶은 애초에 포기하기조차도 힘든 영역이 아닌가. 포기할 수도 없다면, 잘 해낼 수는 없을까?

 


이런 시기에 운전대를 잡았다. '초보 운전'이라는 표시를 차 뒤에 세 군데나 붙여놓고.

어쩌면 운전이라는 것이 직업에서의 적응이나, 엄마로서의 삶보다는 더 쉬운 일이 아니냐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그럴 수도 있을 테지만 어쨌든 그게 나는 아니었다. 제일 쉬울 것 같은 것이 쉽사리 쉬워지지가 않아서 더욱 힘이 들었다. 포기할 수도 있는 영역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포기가 실패로 여겨지는 것 같아 힘들었다.

 


여러 영역에서 초보의 삶을 살아가는 나는, 지금 운전에서 제일 초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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