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chaela Oct 25. 2022

정열의 꽃 피었네. 화병에 그리고 내 가슴에

Lesson 7


- 이번에는 화병꽂이를 해 보려고요.

   재미있는 소재들이 많아요. 일단, 이름 먼저 보낼게요.

   일요일에 만나요.


“이번 주에 작업하면서 빨간 장미를 쓰는데, 레슨 시간에 다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꽃’ 이라고 하면 아름답거나 여리여리한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쉽잖아요? 그런데 어떤 꽃은 도도한 느낌이 나고, 어떤 꽃은 섹시하고.. 생각보다 다양해요. 같은 꽃이라도, 재료를 어떻게 조합하는 지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고요. 이 프리덤장미가 그래요. 연분홍색 스위트피나 흰색 재료들과 함께 쓰면 로맨틱한 분위기를 낼 수 있는데, 오늘 우리는 강렬하고 정열적인 느낌을 살릴 거예요.”


“그래서 화병도 검은색으로 준비해 뒀네요.”

“맞아요. 작업의 콘셉트와 꽃의 종류에 적합한 화기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죠. 화기의 크기, 모양, 소재, 색깔 등을 고려해야 돼요. 주문을 하실 때, 비싼 화병에 저렴한 꽃들 위주로 구성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어요. 언니, 검은색 화병은 없죠? 저렴하면서도 무난한 걸로 준비했으니까 집에 두고 오늘 배운 걸 응용해서 연습해 보세요.”


“고마워요. 꽃병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집에 선물 받은 화병이 있어요. 내가 꽃에 관심 있는 걸 알고 지인이 생일 선물로 줬거든요. 화병은 너무 마음에 드는데, 감당을 못해요. 어떤 꽃을 꽂으면 화병에 어울리게 연출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봐도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럼 저한테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세요. 가로, 세로 길이도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 화병에 어울리는 수업을 준비할게요.”

“좋아요.”


“다른 재료들도 안내할게요. 달리아를 진한 색으로 준비했고요, 색깔이 비슷한 이 친구의 이름은 제임스스토리예요. 서양난의 한 종류인데, 화병에 이것만 꽂아도 멋있어요. 알스트로메리아는 꽃잎에 있는 점들이 싫으면 그 부분은 떼고 사용하세요. 처음 원데이레슨 때, 작은 헬리옵시스를 썼었는데 기억이 날 지 모르겠네요. 다른 꽃처럼 생각되겠지만, 이 노란색 꽃도 헬리옵시스예요. 불꽃같은 모양의 꽃은 글로리오사, 뾰쪽하면서 가시가 있는 건 디스텔이에요.”

“색깔도 그렇지만 재료들의 모양도 뭔가 뻗어나가는 느낌이랄까? 정열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네요.”


“네. 소재로 니겔라씨드, 자리공(장녹수), 설유화잎, 스틸글라스, 그라스를 준비했어요. 스틸글라스는 손이 베지 않도록 장갑을 끼고 사용할 텐데, 눈이 찔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그라스는 묶여 있는 걸 풀면 이렇게 돼요. 저는 이걸 풀 때마다 ‘쑥대머리’ 노래가 생각나요. 긴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것 같아서. 이렇게 덩어리로 잡아서 넣으면 되는데, 화병에 넣기가 쉽지는 않을 거예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번에는 이런 소재도 있구나.. 하면서 재미있게 접해보시고, 안 넣었을 때와 비교해서 분위기 차이를 확인해 보세요.”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 찬 자리에 생각나는 것은 임뿐이라.”

“가사를 그렇게까지 기억할 줄이야..”

“춘향가 가르칠 때, 참고했었어요. 요새 TV에 많이 나오더라고요.”


“처음 화병에 꽃을 넣으면 이리저리 움직이고 돌아가잖아요? 그래서 방수 처리된 철사를 구겨 넣어요. 철사 사이의 그물처럼 생긴 공간에 꽃줄기를 넣으면, 어느 정도 고정이 돼요.”

“집에서 화병꽂이 할 때, 애를 먹었는데.. 이런 방법이 있었네요.”

“이제 꽃을 꽂아보세요.”


장미 한 송이를 집어서 줄기 자르는 모습을 보더니 스승님이 말했다.

“화병의 길이를 확인해 보세요. 플로랄폼에 꽂을 때는 폼에 들어가는 줄기를 1~2cm로 생각하면 되지만, 화병에 꽂을 때는 화병 높이만큼 생각해야 돼요. 다른 꽃들도 지금처럼 짧게 자르면 얼굴이 화병 입구에 쪼로록 몰리겠죠? 그러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요. 오늘 준비된 재료들의 특징을 살리면, 러프하고 멋스러운 화병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예. 나름 길게 자른다고 했는데, 막상 화병에 넣고 보니 생각보다 많이 짧네요. 꽃꽂이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 ‘한 번 짧게 자른 꽃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다들 강조하더라고요. 뭘 그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하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네요.”

“화병꽂이는 꽃의 높낮이를 조절하면서 입체감을 살릴 수 있으니까 지금 자른 걸 짧게 두고 구성해 보세요. 언니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오늘은 그냥 보기 좋게 꽂겠다는 마음을 갖고 직관적으로, 자유롭게 꽂아보면 어떨까요?”


내가 만드는 화병을 보면서 스승님이 말했다.

“헬리옵시스, 알스트로메리아, 니겔라씨드, 제임스스토리의 연결이 자연스러워요. 제임스스토리를 잘못 쓰면 매력은 못 살리면서 산만해 보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모아서 전체 분위기를 잡아주니까 멋있어요. 빨간 장미에서 시작된 구상이었는데, 글로리오사를 돋보이게 썼네요.”


“그게 느껴져요? 저는 오늘 이 친구가 색깔도 그렇고 눈에 띄어요.”

“마음이 가는 걸 숨기기 어렵죠. 간혹 ‘플로리스트가 이 꽃을 특히 예뻐하는 구나..’ 느껴지는 작품을 만날 때도 있어요. 자리공은 라인을 살려 쓰면 좋은 소재니까 이렇게 길게 넣을 수 있어요. 그라스는 나중에 화병이 가득 차면 빽빽해서 넣기가 힘드니까 지금 넣어볼까요?”

“그라스가 들어가니까 화병에서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것 같아요. 장미 주변에 그라스 가닥들이 만들어낸 라인도 멋있어요.”


“준비된 소재라고 해서 어울리지 않는데 굳이 사용할 필요는 없어요. 여기서 멈춰도 되고, 언니가 더 러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으면 스틸글라스를 넣어줘도 돼요.”

“만들면서 점점 열정이 불타오르는데요? 이왕 이리된 거 스틸글라스도 넣읍시다.”


꽃을 소재로 표현하고 싶은 의도를 담아내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화병에 정열적인 이미지를 담아내고 싶었는데, 오히려 그 과정에서 열정과 에너지가 생겼다. 내가 뭐 대단한 예술가도 아닌데, 내가 만들어낸 것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느낌이 좋았다.

 

집에 와서 스승님께 문자를 보냈다.

 - 집에 두고 보니까 오늘 만든 화병이 스튜디오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커요.

   우리집이 작아서 감당하기가 벅찬 것 같아요. 넓고, 층고가 높은 회장님 댁에 어울리겠어요.

   그래도 집안에 가득한 정열적 에너지가 좋네요. 한 주 힘차게 보낼 수 있겠어요.

   고맙습니다.

이전 07화 가늠하지 못했던 가능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