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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Feb 25. 2023

꽃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슬픔

Lesson 16


2022년 10월 30일 일요일.

레슨을 받았다.

이번 주 수업을 위해 준비된 생화를 다음 주에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

미리 준비된 꽃인데.. 공교롭게도 온통 하얀색이었다.

 

전날 밤.

특별히 관심을 갖고 보는 TV프로그램이 없어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다.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시, 사고를 알리는 커다란 자막이 떴다가 사라졌다. 이어지는 소식이 없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새벽에 미사 드리고 꽃꽂이 레슨을 가야 하니까 너무 늦게 자지는 말아야지..

 

TV를 끄려는데, 쏟아지는 충격적인 뉴스영상에 멈칫했다.

내가 아는 아이들이 있을까 봐 두려웠다.


2명의 사망자가 생겼다는 것을 확인하고 잠을 잤다.

4시간 반 정도를 자고 일어나 사망인원을 확인하고는 너무 놀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미사시간에 드리는 기도뿐이었다.

 

레슨을 받으려 작업실에 들어섰는데, 너무 예쁜 하얀 꽃들을 보곤 눈물이 났다.

“보통 흰색 꽃들로만 다발을 만드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잖아요? 국화랑 여기 있는 금어초는 근조화환에 많이 쓰이기도 하고요.. 오늘은 우아하고, 고상하고, 품위 있게 어레인지 할 수 있는 흰색 꽃들의 매력을 언니한테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미리 준비해 놓은 건데.. 언니한테는 오히려 추모의 이미지가 더 각인될 수도 있겠네요.”

“그러게요.. 안 그래도 장례식에는 왜 흰색 국화만 쓸까? 궁금해서 검색을 해 본 적이 있어요. 구석기시대에도 장례식에서 국화를 사용했다고 하니까 관습적인 이유도 있고, 제충국에 있는 물질이 곤충에 대해 독성이 있어서 산소에 두기 좋다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데요.”


카네이션, 딥실버장미, 리시안셔스, 스타치스, 거베라, 알스트로메리아, 스톡과 소재인 은엽아카시아, 코치아로 다발을 만들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을 만큼의 양을 가늠해서 작업을 했더니 오히려 형태감도 좋아지고 완성도도 높아졌다.

아직은 포장지를 반듯하게 자르는 것도 힘든 나에게, 스승님이 방법을 설명하면서 다발을 포장해 줬다.

 

뉴스에서 지인의 사망소식을 접하는 게 얼마나 절망스러운 경험인지..

한창나이의 생때같은 자식을 앞세운 부모를 대면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경험인지..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동기의 장례를 치르면서 느꼈다.

그리고 배웠다.

한 생명의 무게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누군가의 죽음의 앞에서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를..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을, 끔찍한 뉴스영상을 보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영상들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더는 보지 않았다.

특정 장소를 언급하는 것조차 너무 자극적인 것 같아서 조심했다.

꽃꽂이레슨 받으면 프로필 사진을 교체하곤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죽은 이들에 관한 이런저런 소식들을 가십거리처럼 소비하지 않으려 입을 다물고 글을 썼다.


아무도 죽음에 대해 말할 줄 모른다. 아마도 그것이 죽음에 대해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정의일 것이다. 죽음은 말을 벗어나는데, 죽음이 정확히 발화의 끝에 도장을 찍기 때문이다. 그것은 떠난 자의 발화의 끝일 뿐 아니라, 그의 뒤에 살아남아 충격 속에서 늘 언어를 오용할 수밖에 없는 자들의 발화의 끝이기도 하다. 애도 속에서 말은 의미작용을 멈추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것이 더이상 없음을 전하는 데에만 종종 쓰일 뿐이다.
                                                                                    - 델핀 오르빌뢰르, 『 당신이 살았던 날들 』


애도자인 우리는 서투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언어로도, 꽃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걸 알면..

적어도 상처를 더하는 일은 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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