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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May 17. 2023

섹션 핸드타이드 수업

Lesson 17


“오늘은 제인패커의 시그니처 디자인 중 하나인, 섹션 핸드타이드 수업을 할 거예요.”

“제인패커요? 이름이 막 헷갈리네.. 왜 조셉패커라고 생각을 했을까..”

“하하. 언니가 조셉플라워랑 짬뽕을 한 것 같아요.”

“그러게요. 스승님이 하루에 몇 십 분씩 인스타그램 보라고 숙제를 내줬잖아요? 팔로잉하는 분이에요. 단정하면서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좋았어요.”


“언니가 아이들한테 ‘핸드폰 하지 말아라, 집중해 보자.’ 얘기를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SNS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처음 만났을 때는 계정도 없었잖아요?”

“맞아요. 공부하고 몰입하는데 핸드폰이 방해되는 경우를 많이 보니까요. 그런데, 집중에 방해돼서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개인적 성향 때문이기도 해요. 문자메시지 하나를 쓰는 것도 조심스러운데.. SNS에서의 소통이 저한테는 빠르고 가볍게 느껴지거든요.”


“이해가 돼요. 그래도 언니한테는 좀 필요할 것 같았어요. 꽃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분야잖아요? 많은 작품을 접하고, 어떤 방법으로 구현했을지 고민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언니가 유독 어려워하는 점이 있을 때, 제가 참고할 만한 영상을 공유하잖아요? 잘 활용하면 도움이 될 거예요.”


“예. 스승님 말대로 팔로잉하면서 보니까, 꽃으로 하는 작업들이 정말 다양하더라고요. 작업규모가 엄청 큰 공간장식이나 설치미술은 생각도 못 해본 것들이고,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사용하는 소재들은 독특해서 눈에 띄었어요. 바구니나 다발만 하더라도 컨셉이라고 해야 하나, 시그니처라고 해야 하나? 일관된 스타일을 보여주는 분들의 계정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튤립을 뒤집어서 우아하게 연출하는 게 돋보였던 분도 있고, 내가 그토록 어려워하는 돔모양을 척척 만들어내던 남자분은 색감 연출이 남다르더라고요. 백자모양의 화기에 강렬한 색감의 꽃을 단일한 톤으로 어레인지한 게 인상적인 계정, 조화로 생화 못지않게 부케를 만들어서 계속 보게 되는 계정.. 내가 스승님 보면서도 놀라지만, 잘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설명만 들어도 어떤 분들인지 알겠어요. 저도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제 이름을 대면 사람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디자인과 이미지가 있다는 거.. 멋진 일이죠. 많은 플로리스트들이 꿈꿀 거예요. 제인패커는 2011년에 돌아가셨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영향을 주고 있잖아요.”

“돌아가셨다고요? 스승님이 백화점에 입점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제인패커의 철학을 계승한 꽃집이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거예요.”

“구경 한번 가봐야겠네.”


“언니가 조셉플라워의 꽃들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거 보니, 제인패커 스타일 좋아할 것 같아요. 제인패커는 영국사람이고, 플라워스쿨을 런던에 처음으로 개설했어요. 조셉플라워 대표님은 영국국가공인플로리스트인데, 제인패커 플라워스쿨에서 일도 하셨대요. 제인패커의 또 다른 시그니처 디자인인 햇박스 꽃꽂이 수업도 진행하거든요? 언니가 조금 더 익숙해지고, 시간에 맞는 강좌가 있으면 들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꽃이 지닌 본연의 아름다움을 살려내는 모던한 디자인, 절제미, 꽃의 문화적 요소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신.. 언니가 좋아할 만한 요소들이 많아요.”

“배울수록 어려운데, 그만큼 재미가 있어요. 이렇게 기대되는 것들도 생기고.”


“섹션 핸드타이드는 말 그대로 꽃을 그룹으로 묶어서 다발을 만드는 방법이에요. 언뜻 생각하면 부자연스러울 것 같잖아요? 꽃의 종류, 색상, 크기 등을 고려해서 균형감 있게 배치하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어요. 우리는 로라장미, 거베라, 소국, 핀쿠션, 카라, 퐁퐁, 반다, 리시안셔스를 사용할 거예요. 그전에, 섹션을 구분해 줄 엽란을 먼저 준비할게요.”

“준비요? 그냥 접어서 쓰는 게 아니구나..”

“엽란을 잘 고정해 주지 않으면, 나중에 잎이 풀려서 지저분해질 수 있어요. 언니가 이런 일에는 익숙하지 않으니까, 가끔 당연한 것들을 생각 못 할 때가 있더라고요.”


“그렇죠? 어렸을 때도 미술시간을 엄청 귀찮아하고 싫어했는데, 이러고 있는 내가 낯설어요. 손이나 몸으로 하는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무지 어설프죠? 보고 있으면 답답하죠?”

“그래요. 하하. 그런데, 재미있어하고 학습의지가 있으니까 제가 잔소리를 많이 하게 돼요. 작업을 할 때 효율적인 동선이나 방법에 대한 이야기까지요.‘뭐 이런 잔소리까지 하나..’싶을 수도 있는데, 일을 할 때는 정말 중요해요. 물론, 꽃을 잘 다루는 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고요. 언니가 스텝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작업 현장이 있으면 얘기해 볼게요.”

“저는 좋아요. 이참에 일머리도 좀 배워봅시다. 그게, 배워서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선, 엽란을 접어서 테이핑 할게요. 가는 철사로 감을 수도 있는데, 우리는 플로랄테이프를 사용할 거예요. 엽란 접었다가, 테이프 잘랐다가, 엽란 다시 접고, 테이프 붙이고.. 이렇게 하는 것보다 먼저 테이프를 한쪽에 잘라두면 효율적이겠죠? 스파이럴 2번 연습하고, 조그만 화병에 꽂을 거니까.. 넉넉하게 20개 만들어 주세요.”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네요.”

“그렇죠? 이런 작업을 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지도 가늠해 보세요.”

“예.”


“엽란을 접을 때는, 아래쪽을 자연스럽게 구기듯이 잡아서 위쪽이 부풀려지도록 해줘요. 그래야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거든요.”

“다 만들었어요.”

“좋아요. 생소해서 감이 잘 안 오죠? 제가 먼저 시범을 보일게요.”

“예.”


“한 섹션의 크기는 전체 다발을 생각해서 정하고, 그룹핑할 꽃들의 부피감을 고려해서 수량을 조절하세요. 핀쿠션은 1개, 장미는 3개, 카라는 5개.. 이런 식으로요. 그룹핑한 꽃들을 가두듯이 엽란을 배치하는데, 이때도 스파이럴 방향은 일정하게 지켜주세요. 그리고 각 섹션의 모양이 조화를 이루면서 전체적으로는 돔형태가 만들어지도록 반복하는 거예요. 섹션을 만들어주는 게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지만, 너무 인위적으로 경계를 구분짓지는 않도록 주의하셔야 해요. 본인이 생각한 디자인에 따라 가장 바깥쪽을 엽란으로 빙 두를 수도 있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이제 언니가 직접 해보세요.”


“스승님이 말한 것들을 모두 고려해서 움직이는 건 아닌데, 지난 수업들에 비해 혼란스러움이 덜해요. 뭔가 해야 할 게 정해져 있는 느낌이랄까?”

“오늘 정말 잘했어요. 당분간은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접하면서 언니의 강점과 약점, 유독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들을 탐색해 봐요. 언니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주세요. 레슨 받았던 것 중에 다시 해보고 싶은 것도요.”

 

레슨을 받는 건, 꽃을 잘 다루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배워가는 과정 같다.

꽃이 지닌 본연의 아름다움을 살려내려면, 앞으로도 수많은 아쉬움을 경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 안다. 그래서 한 번의 수업, 한 번의 작업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는데..

스승님의 칭찬 한 마디에 춤이라도 출 것만 같은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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