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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May 25. 2023

12월 1일엔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낼 거야!!

Lesson 18


- 이번 주에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 거 어때요?

- 아직 11월 중순인데.. 벌써요?

- 벌써라뇨? 꽃시장에는 이미 크리스마스 아이템들이 가득해요.

  꽃집의 달력은 먼저 넘어간답니다. 미리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안내를 해야 주문받고, 재료 확보하고, 제작하죠. 게다가 크리스마스트리는 12월 내내 두고 보잖아요? 디데이 계산하듯 25일에 맞추면 안 돼요.

- 그러네요.


- 같이 장보면서 오너먼트를 고르면 좋을 텐데.. 주중에는 시간 내기 어렵죠?

- 예. 주중에는 본업에 충실해야죠.

- 그럼, 사진을 보낼 테니 어떤 스타일이 좋은 지 고르세요.

- 스타일이 정말 다양하네요. 하늘색톤의 트리가 마음에 들어요. 하얀색 종과 블링블링한 유리오너먼트가 너무 예뻐요. 그런데 나는 처음이니까 초록, 빨강, 별 오너먼트 달아서 전형적인 스타일로 만들어 볼래요.

- 알았어요. 제가 재료 준비할게요. 일요일에 만나요.


“트리 만들자고 했을 때, 처음에는 ‘트리 만드는 걸 뭐 배울 게 있나?’ 언뜻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호접란 심던 기억을 떠올렸죠. ‘막상 해보면 또 새롭겠지? 얼마나 재미있을까!!’ 기대가 되더라고요. 역시, 시작부터 그래요. 나뭇가지가 이렇게 위로 접혀있을 줄은 몰랐네요.”

“우리는 조그마한 플라스틱 트리를 구매했잖아요? 외국에는 나무를 농장에서 직접 구매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식구들이 커다란 나무를 차에 싣고 집으로 가는 장면이 영화에도 종종 나와요.”

“나중에 자연 크리스마스트리도 만들어보고 싶네요.”


“우선, 나뭇가지를 모양 잡아가며 펼치세요. 가지들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요.”

“다 했어요.”

“좋아요. 그럼, 전구를 감을게요. 건전지로 작동하는 전구가 휴대성은 편리한데, 콘센트에 꽂는 전구가 더 밝아요.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세요.”

“밝은 게 좋아요.”

“예. 전구는 전체 길이를 고려해서 위에서부터 감아주세요. 아래쪽에 코드가 오도록. 나중에 스위치 켰을 때, 전구가 한쪽에 몰려 있을 수도 있으니까.. 불을 켜고 작업할게요.”

“와, 이것도 쉽지가 않네요. 불빛을 계속 보니까 눈이 아프고, 어지러워요.”


“이건 200구짜리인걸요? 이 사진 보실래요? 엄청 반짝이죠? 2m가 넘는 트리예요.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데, 트리 만들 때는 누전이 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작업하는 게 중요해요. 400구짜리 전구 9개를 썼거든요? 1200구씩, 콘센트 3개에 나눠서 고용량 멀티탭에 꽂았어요. 고용량 멀티탭은 용량이 넘어가면 자동으로 차단되거든요.”

“나는 만들다가 토할 것 같아요.”


“트리를 만드는 것도 꽃바구니 작업하는 것과 원리는 같아요. 먼저, 나무의 형태를 잡고 큰 오너먼트를 달아 주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고려하며 빈 곳을 메우는 거죠. 이번에는 디테일에 집착하는 언니의 특징이 강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어요.”

“고리가 있는 오너먼트는 철사를 넣어서 묶으면 돼요. 솔방울은 틈새에 철사를 넣어 보이지 않게 엮어도 되고, 글루건을 이용해서 붙여도 돼요.”


“스승님, 다 만들었어요. 왜 트리가 꽃집의 크리스마스시즌 판매 아이템인지 알겠어요.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디테일이나 완성도 면에서 차이가 나겠네요. 허기에, 그건 꽃도 마찬가지지만요. 그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게 전문가의 영역이겠죠.”

“그럼요. 오늘도 역시 레슨의 보람이 느껴집니다.”

 

트리를 집에 가져와서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 이것 봐. 정말 잘 만들었지? 우리집은 오늘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이야. 엄마한테는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나한테는 특별하게 느껴져. 내가 뭐 이런 걸 만들어 본 적이 있어야지.. 처음에는 나뭇가지가 위로 접혀있었어. 내가 하나하나 펼쳐서 이렇게 모양을 만든 거야. 나무에 달려있는 것들을 오너먼트라고 하는데, 얘네들도 조화롭게 잘 달았지? 전구 감는 것도 그렇고, 이게 또 은근히 정성이 많이 필요하더라고.”


“잘 만들었어. 집 분위기도 좋다. 너 어렸을 때, 갖고 싶은 장난감을 풍족하게 못 사준 게 지금도 미안해. 그래서 네가 오늘 이걸 만들면서 그런 아쉬움을 달랬나 싶기도 하고.. 근데, 엄마는 좀 억울하네. 우리도 크리스마스트리 만들었었어. 이렇게 멋있지는 않았지만. 반짝이는 띠도 둘러주고, 흰 솜도 눈처럼 얹어줬어. 내가 하나님 안 믿어도, 너는 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라고 동네 교회도 같이 가줬는데.. 기억 안 나?”

“앗, 미안! 어렴풋하게 생각난다.”


나는 어렸을 때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가난한 동네에서 일찍 철이 들어, 고생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던 예쁜 딸내미 시절.

그 시절을 나는 언제부턴가 규정해 버렸다. 엄마의 비일관적 양육태도 때문에 고생했던 시절,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싶어서 공부에 집착하느라 맘껏 놀아본 적이 없던 유년 시절로..

그러면서 지금의 나보다도 더 어렸던 나의 부모가 다했던 최선, 쏟았던 정성, 조건 없이 베풀어준 사랑까지 흘려보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영상을 봤다. 가수 이적씨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비가 오는 날 있잖아요. 아침에 갈 때는 안 오다가 중간에 비가 쏟아져가지고, 하교해야 하는데 막… 그럼 이제 부모님들이 오시죠. 주로 어머님들이 오시는데, 우산 갖고 교문 앞에서 한 명씩 데려가는데.. 저희 어머니는 한 번도 안 오셨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근데, 그때는 그게 섭섭하기보다 ‘오! 우리 엄마 안 와.’ 뭐 이런 영웅심리라 그럴까? 아무튼 좋은 말로 뿌듯하다 그럴까? 그러면 거기 이제 부모님이 안 오신 애들이 남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나가서 거기서 물놀이를 시작하는 거죠. 그때 그런 걸 느꼈죠. ‘아! 한 번 젖으면, 더 이상 젖지 않는구나!’ 또 들어간다고 또 젖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똑같은 상태니까 어느 순간에 ‘아!’ 하면서 해방감 같은 것도 느끼고 그랬어요.”
                                                             - 유 퀴즈 온 더 블럭, 가수 이적씨 인터뷰 내용 중에서


비가 오는 날, 나의 엄마도 우산을 가져다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속상하고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부모님의 탓으로만 돌렸던 부정적인 기억들이 유독 예민했던 나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는 걸, 동생과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달았다. 동생은 딱지치기에 흠뻑 빠졌던 코흘리개 시절을 재미있었다고 기억한다. 혼이 나면서도 가지말라는 오락실을 들락거리던 동생은,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으면 운동장에서 물놀이를 했던 것 같다.


사람이 타고 태어나는 기질이 정해져 있는 건지, 그게 바뀔 수도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나는, 비가 오는 날 우산이 없어도 빗속에서 물놀이를 하며 해방감을 느끼는 삶을 살려한다. 12월 1일이 되면, 내가 만든 트리를 꺼내고.. 아기 예수의 탄생일을 기다리며 사랑의 메시지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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