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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봄 Dec 21. 2021

15개월 아기 병원에 입원하다

다시는 아프지 말자

시작은 고열이었다.

 

금요일 새벽, 아기 돌보기 담당이었던 남편이 흥이가 새벽에 열이 낫었다고 얘기해줬다. 아침에 잰 체온은 36도. 9시에 흥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다행히 금요일마다 재택근무를 허락받았기 때문이다.

 

3시 반에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어린이집 원장님이 나에게 전화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놀라서 전화를 받았더니, 흥이가 낮잠 자고 일어나서 기운이 없어 보여 체온을 재봤더니, 체온이 38.6도까지 올라갔다는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해열제를 먹이고 하원 시키기로 하고, 급하게 엄마에게 연락해서 소아과에 갈 채비를 했다.

 

열이 펄펄 나는 아기를 데리고 소아과에 가니, 폐렴이 될 수도 있다면서 해열제와 기침약, 항생제 등을 처방해 주었다. 주말 내내, 아기는 열이 38도를 넘나들어, 새벽에는 40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문제는 병원 약과 우유를 먹으면 아기가 계속 토를 해서, 약을 먹이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겨우겨우 해열제만 먹여 열을 가라앉히며 주말을 보냈다.

 

다가온 월요일. 회사에 연차를 내고, 친정엄마가 차를 운전해줘서 아기와 소아과에 갔더니, 폐렴 초기 증상이 보인다며, 열이 3일이나 지속되니 오늘 어린이병원에 입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기가 약을 잘 먹었으면 열이 떨어졌을 텐데, 약을 계속 토하니, 어쩔 수 없이 수액으로 약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상상도 못 했던 입원결정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친정엄마가 나에게 ‘정신 똑바로 붙들고 있으라’고 해서 정신을 차리고 남편에게 전화하고, 집으로 돌아가 급하게 짐을 쌌다. 부랴부랴 짐을 싸들고 소아과에서 연결해준 어린이병원으로 향했다. 아기는 점점 쳐져서 축 늘어져갔다.

 

다행히 병원 점심시간 전에 도착을 해서, 여러 가지 검사를 점심시간 전에 받을 수 있었다. X-ray, 코로나 검사, 기관지 검사, 혈액검사, 수액줄 기까지, 아기에게 너무나 가혹한 두 시간이었다. 아기는 죽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치며 울어대는데, 내가 아기를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전에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져서 응급실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X-ray를 찍을 때 내가 몸부림치며 우는 흥이를 제대로 못 잡아서 열 번 넘게 다시 찍어야 했었다. 이번에는 다행히 나보다 심장이 강하고, 힘이 센 친정엄마가 아기를 잡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엄마가 같은 방에 있으면 아기가 엄마에게 가려고 더 움직여서 검사가 어렵다고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방 밖에서 아기의 비명을 들으며 숨죽이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1인실에만 가정에서 쓰는 가드가 있는 침대가 있어서, 1인실로 병실을 잡았다. 뒹굴거리면서 자는 것을 좋아하는 15개월밖에 안된 흥이에게 가드가 없는 일반 병원침상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흥이는 팔에 달린 수액줄이 귀찮은지 자꾸 뽑으려고 해서, 간호사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어른 양말을 씌워놓으라고 했다. 양말을 씌워놓자 눈에 보이지 않으니 신경이 덜 쓰이는지 수액줄을 뽑으려는 빈도수가 줄어들었다.

 

병원에서 수액줄로 넣는 약을 맞고 몇 시간씩 잠을 자고 일어나 저녁식사시간이 되었다. 흥이를 위해 흰 죽을 주문하고 보호자 식사를 같이 시켰는데, 흥미는 죽 대신에 엄마 반찬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래, 아프니 뭐라도 먹어라’ 하는 마음으로 평소에는 먹을 기회가 없던 샐러드 소스며 간장에 버무린 나물까지 탐색하도록 했다.

 

엄마는 집에 가시고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서 나머지 짐을 한 보따리 싸왔다. 남편도 병실에 들어오기 위해 PCR 검사를 받아야 했다. 아빠를 보자 아픈와중에도 좋아서 방긋방긋 웃는 아기가 안쓰러웠다.

 

병원에서 자는 첫날밤. 아기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혹시 수액줄이 잘못된 것인가 어디가 문제가 있나 너무 놀래서 아기를 안고 간호사실로 뛰어갔다. 아기 수액줄에 피가 고여있었다. 조치를 취하고 다시 잠을 재웠지만, 한 시간마다 아기는 깨서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병원이라는 환경이 낯설고 힘들어서 그런 것 같다는 게 간호사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아침이 밝고, 남편은 출근을 하기 위해 병원을 떠났다. 나와 아기, 단둘이 오롯이 함께하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흥이는 병실이 답답한지 자꾸 밖으로 나가자고 손으로 방문을 가리켰다. 흥이를 안고 병실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지만, 흥이는 병실에만 있는 것보다는 나은지 자꾸만 밖에 나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동요를 틀어주면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도 했다. 아프지만 그래도 춤을 출 힘이 남아 있는지 다행히 기분이 아주 나쁜것 같지는 았았다.

 

병원에서 받은 약 때문인지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는데, 긁지는 않으니 보습을 잘해주라고 했다. 다행히 퇴원을 하고는 두드러기가 없어졌다.

 

병원에서 하루 3번, 호흡기 치료기를 해야 했다. 우리가 이비인후과에 가면 하게 되는 하얀 연기 같은 것이 나오는 것인데, 아기 코와 입에 대고 연기를 마시게 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 흥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울면서 너무나 싫어해서, 흥이가 낮잠을 잘 때를 이용해서 몰래 해주었다. 하지만 기계 소리가 너무 커서 결국 3일 차부터는 낮잠 자다가 호흡기 치료기 소리가 들리면 낮잠에서 깨고 말았다.

 

병원에 입원해서 해주는 것이 집에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 걸까. 수액줄로 넣어주는 약, 호흡기 치료기, 그리고 의사 선생님을 아침마다 만나고, 저녁때 다시 병실로 방문해서 상태를 지켜봐 준다는 사실에 안심할 수 있는 마음. 하지만 먹기 싫어하는 아기에게 억지로 약을 먹여야 하는 것은 집에서와 마찬가지이긴 했다.

 

혈액검사와 소변검사 결과, 다행히 파라 바이러스는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에게 이름을 재차 물어봤는데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이름이 긴 바이러스였다.

 

둘째 날 밤은 울면서 깨지 않고 잘 잤다. 다만, 다른 아기들이 전날 흥이 와 비슷하게 울면서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려와, 흥이가 다른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뒤척이고는 했다.

 

해열제를 먹지 않아도 열이 안나야 퇴원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흥이는 둘째 날이 지나자 열은 떨어졌다. 하지만 폐렴 증세가 남아 있다고 해서, 퇴원이 목요일로 잠정적으로 연기되었다. 셋째 날이 되자, 흥이는 낮에도 계속 잠을 잤다. 너무 잠을 많이 자서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회복을 하려고 잠을 많이 자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회복을 하고 있다니 너무 다행이었다.

 

삼일째 밤, 남편과 보호자 교대를 했다. 남편은 목요일에 연차를 쓰고, 수요일에 퇴근 후 다시 PCR 검사를 받고 병실로 들어왔다. 나는 빨래 거리를 잔뜩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아기와 남편으로 북적이던 집에 혼자만 덩그러니 있는 기분이 참 묘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부터 아기 병간호로 제대로 못 잔 지 며칠이나 되었기에, 기절하듯이 잠에 들었다.

 

목요일 아침, 남편은 아기가 퇴원 허락을 받았다고 알려줬다. 나는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가 아기를 만났다. 3박 4일의 길었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에 갈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었다. 다시는 입원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우리 셋은 집으로 돌아왔다.

 

금요일, 아직 회복 중인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지 않아, 금요일까지 연차를 썼다. 복직 한 달 만에 일주일을 통으로 연차를 쓰다니, 회사에게 고맙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하면서 회사를 다녀야 하는 걸까 다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린이집에 연락해보니, 흥이 말고는 아픈 아기들은 없다고 했다. 어디서 그런 바이러스에 걸리게 된 건지 모르지만, 내가 회사를 안 가고, 아기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다면, 입원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아니면 주말에 아기가 열이 펄펄 끓는데 응급실이라도 갔어야 했을까.... 생각이 많아졌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고수했던, TV 안 보여 주기, 간 없는 반찬만 먹이기를 포기했었다. 수액줄을 달고 다녀야 하는 아기 때문에 아기가 움직일 때마다 같이 수액줄 스탠드를 옮겨줘야 했기에 계속 따라다녀야 했다. 그래서 화장실에 잠시 다녀올 때, 지루해할 때는 TV를 틀어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여행 다큐멘터리를 찾아 보여주곤 했다. 그런데 재미가 없었는지 흥이가 별로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병원에서 간이 된 엄마 반찬을 맛본 흥이는, 아예 간 없는 반찬만 먹이기는 포기하고,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어른 반찬을 먹야야 하는 상황에는 물에 헹궈서 주기 시작했다. 오늘 어린이집에 간식으로 토마토 스파게티가 나온다는데, 예전 같았으면 소스를 빼 달라고 했겠지만, 오늘은 소스를 아주아주 조금만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아프고 나면 재주가 한 개씩 더 늘어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흥이는 이번에 아프고 나서 말이 좀 더 늘었다. 병원에서 간호사가 처치를 할 때마다 ‘아파’, ‘하지 마’ 같은 말을 하더니 이제 집에서도 ‘안아줘’ 같은 말을 하고 좋아하는 딸기 사진을 가리키며 ‘딸~’이라고 부른다. 자동차를 보고 ‘빠방’이라고 말하고 아빠와 차를 타고 다녀왔다고 말하고 싶은지 ‘아빠 빠방’이라고 두 단어를 연결하기도 한다.

 

이번 겨울, 새로운 재주를 얻지 않아도 좋으니 흥이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아픈 아기가 이 세상에 없기를 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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