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가 혼자 여행하는 법
새벽의 푸르고 텅 빈 새벽을 달려보고 싶었지만, 나는 지금 출근하는 차들로 정체된 뿌연 도로 위를 엉금엉금 지나는 중이다.
혼자 여행. 주로 답답하거나 힐링이 필요할 때나 변화를 앞두고서 바다로 간다.
쫄보라 혼자 비행기 타고 떠날 용기는 아직 없지만 강릉 정도는 (긴장은 되지만) 혼자서도 즐길 수 있다. 솔밭을 지나 넓게 펼쳐지는 경포 해변의 풍경은 아름답고 바로 옆에는 거센 파도가 칠 때 유독 멋졌던 안목 해변도 있다.
정체가 길어지며 막히는 도로 위에서 나는 지루함에 선바이저를 내려 거울 미닫이를 열고 내 얼굴을 본다.
"하아.."
한숨과 함께 거울을 닫아버린다.
미용실 거울과 함께 이 거울은 무조건 나를 푸석하고 못생기게 보여준다.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나를 보며 주고 있을 뿐이지만, 동시에 그 리얼리티가 너무 뛰어나다 보니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내 못남을 과장해 버리곤 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자존감 낮은데 거울을 보고 나면 내 자존감이 한층 더 꺾여버린다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한 번씩 열어보는 거울. 매번 실망하면서도 나는 매번 기대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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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도로 위를 느릿느릿 나아가고 있자니 갑자기 예전에 소심한 성격을 바꿔보겠다고 나간 연극 동호회에서 상인 2라는 작은 역할을 맡았던 게 생각났다. 그때 나에 대해 짤막한 시를 썼었다(시 비슷한 것).
상인 2.
나는 단 세 줄짜리 대사를
긴장한 나머지
자꾸만 까먹는 바보.
나는 고작 한 두 가지 동작을
경직된 나머지
무지하게 어색해버리는
그런 바보.
바보.
나는 재능도 없고
그것을 상쇄시킬 투지도 없으며
그럼에도 거기에 서 있는
나는 그냥도 아닌
이상한 바보.
하지만
나는 이래서 내가 좋다.
나는 내가 그냥 바보라면
조금 싫겠지만,
나는 내가 그냥 바보가 아닌
이상한 바보라서 좋다.
이런 이상한 즐거움을
모두와 나누고 싶다.
싸이월드에 적었던 나의 시를 보고 내 동생은 이렇게 댓글을 달았더랬다.
feat. 내 동생
이상한 즐거움 혼자 나눠~ㅋㅋ
2008.06.09 16:00
그러고 보니 지난날 나는 이상한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했다.
내가 이상한 바보인 것이 좋다고 혼자 으스댔지만 실전에서는 덜덜 떨면서 간신히 세 줄짜리 대사를 어색한 채 겨우 읊었을 뿐이다. 소심한 성격을 극복해 보고자 도전했던 연극이었지만 부담감에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지곤 했고 그럼에도 알량한 책임감에 도망도 못 가고 어영부영 일 년을 보내고서야 간신히 끝났던 기억. 내 성격은 전혀 개조되지 않았고 연기의 카타르시스 대신 그저 끝났다는 안도감에 광란의 뒤풀이를 즐긴 게 전부였다. 얼큰하게 취해서는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수료패와 극복하지 못한 소심함을 주섬주섬 다시 싸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후련했지만 패배한 것 같은 그 찝찝한 느낌은 그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러 상황들 속에 나를 찾아온다.
원하는 것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 원하는 것에 전심을 다할 수 있는 것. 원하는 것을 끝내 얻는 것. 그것을 원하지만 내게는 아직도 쉽지 않다.
남양주를 지난 어느 즈음부터는 정체가 풀리고 조금씩 속도가 붙었다.
창밖으로는 아직 앙상한 나무들이 스산했고 나는 블루투스로 유튜브를 들으며 보조석의 백팩 앞주머니에서 캐러멜을 꺼내 먹었다. 모리가나 소금 캐러멜. 단짠의 조화가 미쳐서 어쩔 수 없이 먹고 또 먹고 계속 계속 먹게 된다. 컵홀더에 쌓여가는 조그만 포장지들. 유튜브를 들으면서 잡생각들을 하고 한 손으론 캐러멜을 까먹으면서도 편안하게 운전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새삼 대견했다.
이십 대 초반에 면허를 따고 십 년 이상 장롱면허로 살다가 결혼준비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운전을 배웠었다. 신혼집은 인서울도 역세권도 아닌 곳이어서 출퇴근을 하려면 대중교통으로는 편도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을 잡고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겁이 많았던 나는 주말마다 운전연습을 하는 게 싫어서 어떻게든 미루려고 했지만 남편(구 남친)은 그런 나를 구슬려가며 운전연습을 시켰다.
처음으로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던 날, 긴장된 어깨가 목까지 한껏 올라붙은 채 앞만 보고 달리던 그때.
"같이 잘 보고 있지?"
"..."
주변을 같이 살펴주기로 한 남편(구 남친)은 말이 없었다.
나는 앞만 보고 달리고 있으므로 옆에 앉아있는 남편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핸들을 움켜쥔 채 다시 물었다.
"옆에 차들 같이 잘 보고 있는 거지?"
"..."
여전히 대답은 없었고 앞만 보던 나는 불안해졌다. 엄습해 오는 불안은 내게 고개를 돌려 옆을 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는데, 놀랍게도 그놈은 곤히 자고 있었다.
/
겁이 많고 느린 만큼 과정은 지난했지만 운전을 하게 된 이후 내 삶은 훨씬 편하고 자유로워졌다. 언제라도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신세계였다. 처음으로 혼자서 차를 달려 외곽의 한 카페에 간 날 엄청난 해방감과 뿌듯함을 느꼈었다. 사치스럽기로 유명한 찻잔에 담긴 고급 커피와 치즈케이크로 자축을 하고 의기양양 돌아오는 길에 도로경계석에 부딪혀서 어깨엔 피멍이 들고 타이어휠이 다 망가져버렸다. 그럼에도 혼자서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립(自立). 그것은 내 평생의 화두이다.
달달한 캐러멜을 연달아 먹고 있자니 쌉쌀한 아메리카노가 생각났지만 갈 길이 멀기에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나는 드디어 휴게소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