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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혼밥의 추억

-쫄보가 혼자 여행하는 법

by 알로하엘린

혼밥의 추억

혼자서. 꼬막 비빔밥을 먹어보겠다고 바다 구경도 미루고 도착했건만...

내 안의 쫄보 근성이 올라오며 갑자기 혼자라는 자각과 함께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간다. 결국 나는 '혼자서'는 밥 한 끼 먹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알고 있었지만... 화가 난다.


앞의 글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쿨함을 동경하는 그런 병이 있는지라 소심하고 겁 많은 내 성격을 싫어한다.

내 나이를 반으로 접은 것보다 어린 사람들도 혼자서 세계 곳곳을 탐험하고 다니는데, 지금 나는 그렇게 먹고 싶었다는 밥집 앞에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며 심장박동이 무슨 번지점프라도 뛸 사람처럼 두근대고 있다. 이게 맞아? 이게 맞냐고.. 아오...




분노는 나의 힘. 그러나 난 건망증 환자이기도 하니 이 분노가 사라지기 전에 얼른 식당으로 입장한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매장 안은 예상보다 한적했다. 나는 눈에 띄지 않는 구석 자리로 가지 않고 (굳이) 홀 가운데의 동그란 테이블 자리에 앉아 거침없이 꼬막무침 비빔밥을 주문했다.

꼬르륵. 호두과자를 참은 스스로를 뿌듯해하며 한숨 돌리려는데 벌써 테이블에 도넛 모양으로 반찬들이 착착 세팅된다. 마요네즈 범벅인 콘 샐러드를 빼고는 다 먹음직스러웠다.


이 자리에 앉기까지 나는 잠시였지만 감정의 격랑과 맞서야 했다. 만만치 않았던 심리적 부담을 견뎌낸 것에 비로소 안도하며 밥 친구가 되어 줄 유튜브를 보기 위해 보조배터리와 이어폰을 꺼내는데 바로 꼬막 비빔밥이 등장했다. 주문과 동시에 조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주문과 동시에 음식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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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둥근 접시는 정확히 이등분되어 반은 꼬막무침만 있고 나머지 반은 꼬막과 밥이 비벼져 있는데, 비벼진 부분을 먼저 먹다가 모자라면 밥을 추가해서 꼬막무침을 흩트려 비벼 먹으면 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건들지 않은 꼬막무침 쪽은 포장해 가면 된다.


조미되지 않은 김 위에 꼬막이 실하게 얹힌 밥을 한 숟갈 올려 입에 넣으니... 세상 근심 걱정은 다 사라지고 나는 꼬막 비빔밥과 물아일체가 되어 내가 꼬막 비빔밥인지 꼬막 비빔밥이 나인지 모를 무아지경에 빠져버렸다(과장법 오짐 주의).


탱글탱글한 꼬막 살과 개운한 고추와 고소하게 비벼진 밥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혼자 다 먹기엔 무리여서 밥과 함께 비벼진 쪽을 다 먹고 꼬막무침만 있는 반은 포장을 했다. 바다 구경을 하고 집에 갈 때까지 쉬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아 주길!


그저 밥 한 끼였지만 내게는 용기를 내어 원하는 것을 얻은 경험이었다.



넌 날 때부터 날 고생시켰어!




나는 12시간 동안 엄마를 아프게 하고 태어난 딸이다. 내가 그러려고 그랬던 건 아니지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를 고생시킨 불효녀가 되고 말았다.


어릴 때 나는 엄격한 엄마와 허용적인 아빠 밑에서 연년생 여동생과 자랐는데, 수줍고 겁 많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나는 책 읽는 것과 글 쓰는 것과 인형놀이와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첫 번째 자식이어서 그랬던 건지 어릴 적 아빠는 나를 유독 이뻐했다는데 그때는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니 나는 아빠의 사랑을 알고 있었던 것도 같다. 아빠한테는 어떤 요구도 할 수 있었고 온갖 투정도 부릴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빠랑 있으면 편안했고 안심할 수 있었다.


반면에 엄마는 내게 무섭고 긴장되고 변덕스러운 존재였다. 엄마와 있으면 긴장됐고 언제나 나는 부족하고 잘못하고 영 한심한 사람같이 느껴졌다. 기질적으로 맞지 않았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 의도와 다르게 엄마는 항상 내가 못마땅한 것 같았다. 이것은 정확한 기억이 전혀 아님을 안다. 분명 엄마는 나를 사랑했을 것이고 나에게 사랑을 표현한 순간들도 많을 것이다.


다 나 잘 되라고 그런 거라고 하는데... 엄마가 그 작은 몸으로 일과 가정을 꾸리며 부서져라 열심히 살아온 것도 알겠는데... 나는 여전히 어릴 적 엄마가 나를 보던 그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아빠의 무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우리 집의 일인자는 엄마였기 때문일까? 나는 엄마의 영향을 크게 받아 부정적인 자아상을 내면화했고, 그것은 아직도 나를 과거의 어딘가에 묶어두고 있다.

그래서일까? 현실의 나는 한 번씩 혼자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어디론가는 대게 바다이다.

혼자, 어디론가, 바다. 이 키워드들이 나에게는 아직 풀지 못한 문제의 답인지도 모르겠다.


남은 꼬막무침이 담긴 검은 봉지를 들고 이제 나는 바다를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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