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 해변의 카페

-쫄보가 혼자 여행하는 법

by 알로하엘린


고작 조금 긴 드라이브를 하고 밥 한 끼 혼자 먹은 것이 이토록 뿌듯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배도 부르고 자신감도 충전된 채 해변을 향해 달렸다. 네비는 큰 도로로 가라고 안내해 줬지만 나는 일부러 솔밭 사이로 백사장과 푸른 바다가 어렴풋이 보이는 바다와 가까운 구도로를 달렸다.



여기까지 와서 스타벅스?



시그니처 커피로 유명한 카페부터 루프탑이 유명한 카페, 지중해풍 카페와 빵이 맛있다는 카페 등 강릉에는 각양각색의 카페들이 있었지만 나는, 이곳에 와서도 결국 스타벅스로 향했다. 내적 친밀감을 주는 익숙한 분위기는 나 같은 쫄보도 혼자 편안하게 있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강릉에서 맨 처음 가본 스타벅스는 안목 해변점이었다. 대학원 마지막 졸업 과제가 죽도록 하기 싫어서 미루고 미루다 당장 내일까지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무작정 차를 달려 강릉에 왔었다. 우리 집에서 강릉까지는 안 막혀도 왕복 5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그 시간에 과제를 서둘러 시작해도 시원찮을 판에 나는... 대책 없이 책들과 노트북을 싸 들고 나왔고, 바다를 마주하고 나서야 평소엔 없는 집중력으로 무사히 과제를 끝낼 수 있었다.

혼자서 바다에 오는 것이 익숙지 않았던 그때의 경험은 내게 성취감을 주었다.



안목 해변도 예쁘지만 오늘은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강문해변점으로 간다.



스타벅스 강문해변점은 총 3개 층으로 되어 있는데 역시나 3층의 전망이 제일 좋다. 창가 자리는 만석이라 나는 뒤쪽 높은 소파 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카페는 삼면이 통창이라 조금 뒤에서도 바다는 잘 보였고 노트북을 하기에는 뒤쪽 자리가 테이블 높이도 적당하고 콘센트도 있어 오히려 좋았다.

뜨아와 클래식 스콘.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하얗게 반짝이는 백사장.





귀차니스트인 나는 하루를 쉽게 허비하고 허비한 시간들을 그닥 아까워하지도 않는 편이다.

일상에서 두세서너 시간은 그저 잠시 자거나 누워있거나 앉아있거나 무언가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보면 지나있는 시간이기에, 내게 두세서너 시간 동안의 변화라는 것은 나무늘보의 껌벅임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기에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던 내가 지금 200킬로 이상 떨어진 강릉 바닷가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에는(놀랄 일은 아니지만서도) 개인적으로 체감되는 생소함이 있다.


바다를 보며 커피와 스콘을 먹다가 갑자기 무언가 쓰고 싶어 노트북을 켜보지만... 사람들이 의식되어 집중이 안된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 갖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타인들을 어쩔 수 없이 의식하게 된다는 건 참으로 피곤하다.


높은 소파에 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달달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기대고 난리 브루스가 났고 한 무리의 친구들은 서로 발언권을 갖겠다고 아웅다웅 신나게 조잘대며 깔깔거린다. 나처럼 혼자 온 몇몇의 사람들은 각자 노트북이며 두꺼운 책들을 꺼내놓고 마치 도서관의 정적 속에 있는 것처럼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직원들이 한 번씩 오가며 정돈하고 통창 너머로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를 밀어내고 있는데... 젠장. 나만 나에게 몰두하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철저히 무관심한 다른 이들을 의식하며 커피를 마시고 스콘을 먹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남의 눈치를 보는 걸까?




자, 과거는 과장되고 지워지고 변질되며 왜곡된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내 기억은 내게 경험되고 인식된 채로 기억되는 것이지 그것이 진실은 아니다.

내가 어릴 때부터의 기억이다. 엄마는 자신의 방식으로 열심히 자식들을 키웠지만 나는 엄마랑 성향이 너무 다른 것이었는지 항상 엄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딸이었다. 나는 늘 엄마의 눈치를 보았고 그럼에도 혼나고 긴장하며 지냈다. '항상' 그랬을 리는 없을 텐데 내 기억은 거의 '항상'그랬다고 떠올린다.

내가 잘했건 못했건 엄마는 내가 잘못했음을 확인시켜 줬고 내가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이 엄마에게는 불필요한 것이고 어리석은 것들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엄마에게 나를 학대하려는 마음은 단 1도 없었다. 그것은 사랑이었고 어쩌면 큰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인 줄 알았던 기대 혹은 집착일 가능성도 있지만 무엇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 사랑의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었음은 확실하지만 그 방식이 잘못되었거나 최소한 나에게는 맞지 않았던 것이리라.


언젠가 엄마의 생일날 엄마에게 내 깊은 마음들을 담아 편지를 썼었다. 엄마가 안아줄 거라고 기대하며 가슴이 설렌 채 집에서 엄마를 기다렸고 집에 돌아온 엄마는 자신의 생일날 어떻게 그런 편지를 쓸 수 있느냐며 분노했다. 나는 처음으로 용기 내어 엄마에 대한 내 상처와 바람, 사랑을 담았었는데... 결코 엄마에게 상처를 주려는 마음은 없었다. 내 속마음을 털어놓고 우리 딸 그랬어? 엄마가 네 맘을 몰랐네. 엄마도 사랑해... 부둥켜안고 한바탕 울고 가슴 따뜻해질 것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생일을 망쳐버렸고 엄마를 비난하고 상처 준 딸이 되었고 그것은 내 예상 밖의 결과라 너무 놀랐다. 나는 가해자가 된 기분으로 죄책감을 느낌과 동시에 내 진심이 거부당했다는 상처를 입었다. 충격이 컸지만 눈앞의 엄마는 너무 화가 나있었기에 나는 그냥 엄마의 감정들을 받아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주룩주룩 눈물만 흘렸다.



그래서 네가 잘했어? 잘못했어?
잘못했어요...




나는 부족하고 한심하다... 내가 잘못했고 내가 나쁘다는 것을 매번 확인하며... 결국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무의식은 그렇게 내면화를 해온 것 같다.

타고난 성향일 수도 있고 어린 시절 양육방식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불행하게도 나는 긴장도가 높고 남의 눈치를 보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것을 불행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런 성격이 내 삶에 큰 제약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 딸 그때 마음 아팠겠네. 너의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해.




언젠가 엄마한테 예전의 그 일을 이야기해 본 적이 있다. 그때도 나는 용기를 내서 말을 꺼냈었다. 왜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말들을 나는 한 번씩 용기까지 내서 꺼내려는 걸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아마 내 안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못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서라도 엄마가 미안했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없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래놓고 엄마 아빠 사랑해 >.<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3화3. 혼밥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