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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현진 Aug 04. 2022

너와 나의 포켓몬스터

좋아했고, 좋아하는, 그래서 함께 하는

현진이의 일기




엄마의 일기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를 지나 '피카츄 라이츄'가 아이들의 모든 대화와 놀이를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포켓몬스터 만화를 하는 시간은 무조건 텔레비전 앞에 바짝 붙어 있어야 했고, 제일 좋아하는 포켓몬스터를 각자의 캐릭터로 삼아 친구들과 놀이를 했고, 꼬깃꼬깃한 돈을 모아 열심히 스티커를 모았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포켓몬스터 사랑은, 나이를 먹어가며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나에게서 완전히 잊혔다.


그리고 잊고 있던 포켓몬스터 군단이 몇십 년 만에 드디어 우리 집에도 들이닥쳤다. 다행히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띠부띠부씰에는 관심 없는 아들 덕분에 줄 서가며 빵을 구하는 고생스러움은 없만, 우리 집에는 하나둘 포켓몬스터 카드가 생겼고 인형이 생겼고 캐릭터 도감 책들이 생겼다. 넷플릭스로 포켓몬스터 만화를 꼬박꼬박 챙겨보고, 친구들과 만나면 포켓몬스터로 역할극을 하며 놀이를 한다. 내 어린 시절 어린이의 대통령이었던 포켓몬스터가, 잊지도 않고 몇십 년 만에 또 나타나 아이들의 제왕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더 화려하고 더 강한 모습으로.


신기했다. 현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피카츄 라이츄"로 시작하는 바로 그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몇십 년을 잊은 채 지내온 그 노래가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것이다. 아주 정확한 가사와 함께. 심지어 노래 중간 '피카피카!'라며 나도 모르게 추임새까지 넣어줬다. 이럴 수가!




현진이가 어느 날 시작한 포켓몬스터 노래는, 꼬깃꼬깃 접어 추억의 방에 구겨 넣고 잠가버린 내 어린 한 시절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깜깜했던 과거의 어 기억들이 노래와 함께 스위치 켜지듯 선명해졌다. 진아, 엄마도 포켓몬스터를 좋아했어. 어린 시절의 엄마도 지금의 네가 그렇듯 포켓몬스터와 함께 놀았어. 좋아했던 캐릭터, 매일 부르던 노래, 매일 보던 만화 속 장면들. 엄마의 마음속에도 포켓몬스터가 구석구석 자리하고 있었어.

 

그렇게 남편과 나는 현진이가 건넨 열쇠 덕분에 추억의 문을 열고 또다시 포켓몬스터를 좋아하게 되었다. 열광적이던 어린 시절의 마음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많은 일상 속에 포켓몬스터는 늘 존재하고 있다. 우리 집엔 온갖 포켓몬스터들이 같이 살고 있는 중이다. 포켓몬스터 자체만으로 두근두근 좋아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지만, 어린 내가 좋아했던 것을 나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같은 마음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다. 좋아했고, 좋아하는 것이 같다는 사실이 좋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고 있는 지금이 좋다.


과거의 기억을 끌어와 현진이와 함께 하는 내 모습을 보며, 문득문득 드는 작은 바람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지금의 피카츄 대유행이 지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다가 미래의 어느 날 다시 짠 하고 나타난다면, 그래서 현진이의 아들이나 딸이 피카츄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면, 래서 현진이 기억 속 포켓몬스터를 즐겼던 그 시절의 스위치가 켜진다면, 그곳에 나도 함께 있으면 좋겠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캐릭터를 그리고 만들고 게임을 하고 영화도 보던 우리의 모습이, 포켓몬스터라는 커다란 기억의 나무에 작은 열매들처럼 예쁘게 구석구석 자리하고 있으면 좋겠다.


포켓몬스터를 좋아했던 기억이 아닌, 포켓몬스터를 '함께' 좋아했던 기억으로. 와 나의 포켓몬스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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