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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현진 Sep 28. 2022

먹이고 키우고 살찌우는 일의 기쁨

엄마는 네 食의 고향이란다

현진이의 일기




엄마의 일기


내가 현진이의 유일한 밥이던 때가 있었다. 작고 오물거리는 입으로 내 몸에 찰싹 달라붙어 모유를 받아먹던 시절이 있었다. 내 마음대로 매운 음식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지 못한 채 나를 열심히 빨도록 가슴팍을 기꺼이 아이에게 수시로 갖다 바쳤다. 내가 섭취하는 영양분을 수시로 먹어치우는 먹성 좋은 아들을 둔 덕에 나는 성인이 되고서 가장 낮은 몸무게를 기록했다. 나는 아이의 유일한 이었다. 나뿐이었다. 살이 너무 빠져버린 것이 버거웠지만 기뻤다. 그렇게 무려 15개월 동안이나 나를 바쳐 아가의 살을 찌웠다.


모유를 벗어난 아가는 엄마가 제공하는 세상의 여러 맛을 경험하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에게 앙증맞은 입을 꼭 붙여 대야만 배를 채울 수 있었던 작은 아가는 키가 크고 살이 찌며 어느새 엄마와의 뽀뽀를 가끔은 달가워하지 않는 일곱 살이 되었다.




나는 요리는 좋아하지만 베이킹에는 영 소질이 없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현진이가 빵쿠키를 만들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밀가루를 다루는 건 나의 능력 밖이니 적절한 선생님을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마침 얼마 전 오픈한 동네 카페에서 베이킹 클래스 예약을 받는다기에 현진이가 좋아하겠다 싶어 쿠키 만드는 수업을 예약해두었다.


 현진이는 아침부터 쿠키 만들기 수업에 가려면 몇 시간 남았냐며 종종거렸고, 카페에 도착해서 나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선생님 손을 잡고 신이 나서 쏙 들어가 버렸다. 두 시간 뒤에 현진이가 들고 나온 결과물은 꽤나 훌륭했다. 물론 선생님이 도와주셨겠지만 모양도 깔끔했고 현진이가 과자 위에 꾸며놓은 데코레이션름 귀여웠다. 하나 먹어보라며 냉큼 나의 입에 넣어준 쿠키 아주 맛이 있어서 놀랐다.


나는 아이를 먹이고 아이는 내가 주는 먹을 것을 열심히 받아먹으며 크는 일에 열중하던 시절은 어느새 지나, 이제 내가 아이가 만든 음식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열심히 만든 음식을 아이가 잘 받아먹을 때의 초롱초롱하던 내 눈빛을, 이제 나의 아이에게서 보는 날이 와버렸다. 기쁘면서도 서운했다.


단유를 한 며칠간, 나는 많이 우울했었다. 모유수유를 하느라 1년이 넘도록 자유시간 한 번 못 누려보고 술 한 잔 마셔보지 못했는데, 그래서 단유를 하면 마냥 시원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더 이상 아이의 밥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마음 아플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덜 필요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현진이가 처음으로 나 없이 만든 음식을 받아먹은 오늘, 그날의 마음이 자꾸만 떠오른다.


사는 것이 바빠 하루에 단 한 끼도 내가 해주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날이 오겠지. 더 자라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나면 나의 밥은 아주 가끔 그리울 때만 찾아오는 고향 같은 것이 되겠지. 자식을 키우는 것은 원래 그렇다지만, 그래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엄마가 점점 덜 필요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을 실감해야만 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는 그렇게 현진이가 만든 맛있는 쿠키를 받아먹으며 아이를 기특해하는 동시에 우리의 멀어지는 세월을 아쉬워했다.




현진이는 나에게 깨진 몇 개의 쿠키를 남겨주고는 유치원에 가져가겠다며 예쁜 통에 쿠키들을 가득 담아 책가방에 넣어두었다. 현진이가 좋아하는 여자 친구에게 많이 주고,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과도 나눠먹겠단다. 내 손에 쥐어준 것은 실패한 쿠키 몇 조각이었다.


엄마가 스스로를 바쳐 열심히 자식을 먹여 키워놓으면, 자식은 커다래진 두 발로 집을 나가 단단한 두 손으로 먹거리를 만들어 새로운 가족에게 바치는 것이 모든 가족의 순리라는 것을 안다. 비록 내 두 손에 남은 것은 부서진 쿠키 조각들 뿐이지만, 현진이는 내가 먹인 수많은 음식들 덕에 본인이 만든 쿠키를 들고 집 밖을 나설 만큼 아주 잘 자랐다. 심히 먹이고 키우고 살 찌운 덕분에 아들은 나를 벗어나 본인의 사회 속에서도 아주 잘 지낼 만큼 훌륭히 자라주고 있으니, 세월이 섭섭한 나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자 친구에게 줄 특히 예쁜 쿠키를 신중하게 골라내는 모습에 씁쓸한 웃음이 터지긴 했지만.




나는 현진이가 나보다 더 커다래지고 단단해져서 이제는 다시 작아지는 일만 남는 때가 되더라도 열심히 먹일 것이다. 나를 찾을 때마다 정성껏 따뜻한 음식을 해먹일 것이다. 나와 떨어지면 죽는 줄만 알았던 갓난쟁이 아를 먹이듯, 나의 몸과 시간을 바쳐 내 아가의 배를 불릴 것이다. 나에게 주는 쿠키 몇 조각, 그걸 건네는 잘 자란 너의 손, 맛있냐고 물어보는 예쁜 눈빛 그 속에 든 마음만으로도 배가 부른 이 엄마는 오래오래 너를 잘 먹일 것이다. 랑으로.


발 할아버지가 되어도 언제든 생각이 날 땐 밥을 먹으러 나에게 오렴. 엄마는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늘, 네 食의 고향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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