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넷플릭스 다큐 My Love, 님아)
넷플릭스에서 < My Love,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 >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미국, 스페인, 일본, 한국, 브라질, 인도에서 해로하는 여섯 노부부의 1년을 담은 6부작 시리즈였다. 50여 년 이상을 함께 산 오래된 커플임에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키득키득 웃음과 장난이 끊이지 않았다. 미주알고주알 알콩달콩 서로를 챙겨주는 다정한 모습에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한 과학 보고서에 따르면, 사랑의 콩깍지 기간은 기껏해야 3년이라고 한다. 서로에게 반할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의 유효기간이 그렇다고 한다. 이들이 함께한 세월을 놓고 보면, 유효기간이 지나도 한참 지났을 법 한데, 이토록 변치 않는 사랑의 비결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국가와 인종을 불문하고 한 가지 공통점이 눈에 띄었다. 아름답게 늙어가는 노부부들이 서로 꼭 놓지 않는 한 가지가 보였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손이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순간, 아하! 저게 바로 비결이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사이좋은 커플이 늘 손을 꼭 잡고 걷는 이유는 뭘까? 그 비결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젊은 커플들은 서로 손을 꼭 잡고 걷는다. 하지만, 사귄 지 오래된 커플들이나, 결혼 후 시간이 꽤 흐른 부부들은 어느새 서로의 손을 잡고 걷지 않게 된다. 일부러 잡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괜히 유난 떠는 느낌도 들고 주변도 신경 쓰인다. 나이 들어 무슨 주책인가 싶기도 하고, 공공장소에서의 스킨십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중년에 접어든 커플들은 공공장소에서 마치 남남처럼 걷는다.
하지만, 다큐에서 보이는 사이좋은 커플은 주변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관심을 두는 곳은 내 옆에 있는 상대방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저 지나가는 엑스트라일 뿐이다. 옆에서 아무리 멋진 남자나 아름다운 여인이 지나가도 상관없다. 오히려, 좋은 것을 자랑하고 싶듯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 가득할지도 모르겠다. 여러분! 제가 사랑하는 사람 좀 보세요! 너무 아름답고 멋지지 않나요? 하고 말이다.
손을 잡고 같이 걷는다는 것은 상대방과 속도를 맞춰 걷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번은 조깅을 하다, 산에서 내려오는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반갑게 인사하며, 오늘은 혼자 오셨나 보네요? 했더니, 아니 저기 뒤에 걸어오고 있다며, 저 멀리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니, 저기 뒤에 조그만 점처럼 아저씨가 멀리서 오고 있다.
혼자 걸으면 목표지점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 하지만, 옆에서 천천히 걷는 상대와 박자를 맞춰 걸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나만의 속도로 내 맘대로 하고픈 욕심을 잠시 내려놔야 한다. 상대방의 속도에 귀 기울이고, 필요하다면 내가 하고픈 것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함께 박자를 맞춰 걷기 위해서는 상대가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 왜 내가 원하는 속도로 따라와 줄 수 없는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찬찬히 살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상대를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함께 걸을 수 있도록, 서로의 삶의 속도와 박자를 맞춰가는 것이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오래갈 수 있다’는 유명한 말처럼 말이다.
같이 손잡고 걷다 보면, 자연스레 이야기하며 걷게 된다. 둘이 이야기할 시간이 많아진다. 이때, 시시콜콜 잔소리를 하거나 상대를 꾸짖게 되면, 같이 있는 시간을 피하고 싶어 진다. 싫은 소리를 굳이 시간 내서 듣고 싶은 사람은 없다. 특히 나의 속속들이를 잘 알고 있는 배우자의 잔소리는 ‘팩트 폭행’인 경우가 많아 더 아프다.
반대로 생각하면, 사이좋은 노부부들이 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이유는, 상대방이 듣고 싶은 이야기, 달콤한 속삭임을 들려주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에! 오늘 양말 색이 왜 이래?’라는 말 대신에, ‘오늘 신발이 아주 멋지네. 당신을 위해서 만들었나 봐’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조금이라도 좋은 것, 잘한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내 눈에 보기 좋으면 됐다. 상대방이 듣고 싶은 이야기, 상대방을 미소 짓게 만드는 이야기를 속삭여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격려와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항상 손을 꼭 붙잡고 다니는 커플이, 서로에게 악담을 퍼붓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저 사람 곁에 가면, 격려와 위로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 먼저 다가가 절로 손을 잡고 싶어 질 것이다.
서로 손을 잡고 걷는다는 것은 상대를 지켜주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비틀거릴 때, 옆에 있으면 힘이 되어 지탱해 줄 수 있다. 옆에 위험한 장애물이 있을 때, 경고를 해줄 수 있고, 피해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늘 순탄한 일만 있지 않다. 때로는 비틀거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그때, 누군가 내 옆에 늘 함께 있다는 것은 그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필요하면 불러’가 아니라, 상대 곁에서 언제, 어디서든 기꺼이 손 내밀 준비가 돼있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면, 내가 대신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돼있기도 하다. 그만큼 이 사람은 내가 평생 지켜주고픈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목숨보다도 소중한.
오랜만에 훈훈한 다큐를 보고 나니, 마음 한편에 따뜻한 온기와 은은한 감동이 가득 해지는 것 같다. 인류가 탄생된 후 지금까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여, 사람들은 ‘사랑’을 갈구하며 추구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즉, 인간의 역사는 결국 사랑의 역사나 다름없단 생각이 든다.
태어나면서 받게 되는 부모의 사랑 외에, 운명에 의해 만난 배우자와의 사랑은 그래서 참 특별하다. 서로가 다른 삶을 살아온 만큼, 사랑의 유효기간이 지난 후에도 계속 사랑을 이어가려면, 그만큼 노력과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사랑의 모닥불이 계속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불이 평생 꺼지지 않도록, 오늘부터 상대방의 손을 꼭 잡고 걸으면 어떨까? 가슴 한 편의 따뜻한 사랑의 온기가 손을 타고 상대방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