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이 1인실은 하루에 27만 원이고 6인실은 하루에 2만 7천 원이라고 했다. 나는 호젓이 혼자 있고 싶었지만, 당연히 6인실로 입실하였다.
병원에 입원했던 것이 10년도 더 된 일이라, 이번에 입원하여 보니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첫째, 침상마다 커튼으로 칸막이가 쳐져있어서 굳이 모르는 옆사람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둘째, 일반병원인데도 요양보호사들이 상주하면서 환자들의 사소한 불편함도 다 보살펴 주었다. 셋째, 손에 링거를 맞고 있어서 자유롭지 못한 환자들을 위해 매일 머리를 감겨주었고, 하루 세 번 식사가 끝난 후에는 식판을 다 치워주었다. 넷째, 침상마다 개별적인 TV가 설치되어 있고 리모컨에 이어폰 장치가 있어서 언제든 자유롭게 옆사람에게 방해되지 않게 TV를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병실 층마다 휴게실이 있어 방문자들이나 환자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책도 볼 수 있었다.
입원실은 늘 6명 정원이 꽉 찼다. 퇴원해서 침상이 비는가 싶으면 바로 그날 다시 새로운 환자가 입원을 했다. 주로 수술환자가 많았고 나처럼 경증의 대상포진 환자는 마치 나이롱환자처럼 보일 정도였다. 수술하기 위해 입원한 환자들은 수술하기 전에는 몹시 심란해했으며, 수술이 끝난 직후에 들어오는 환자는 진통제를 맞았음에도 살을 짼 아픔의 고통으로 힘들어했다. 간호사들은 고통에 찬 환자를 진정시키고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애를 썼다.
나는 열흘 정도 입원해 있었는데 처음 며칠 동안은 휴게실에서 집에서 가져간 책에 파묻혀 있었다. 실은 입원하면서, 가져온 책을 다 읽고 가리라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병실에서 밥만 먹으면 나머지 시간은 잠자리에 들 때까지 휴게실에서 책을 읽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고 나니 어느 순간 책을 읽는 것이 무척이나 따분하고 건조하게 느껴졌다. 창문 밖의 햇살은 나를 더욱 따분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갈증이 느껴졌다. 그때 마침 같은 병실에 있는 어르신 환자 한 분이 휴게실로 들어오셨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웃으며 인사하였다.
그 환자분의 연세는 77세였다. 나와는 10살 차이가 나므로 큰언니라 부른다. 큰언니의 병명은 유방암인데 얼마 전 수술을 마치고 지금은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또 한 분의 같은 병실의 환자분이 휴게실로 들어와
대화에 합류하였다. 그분의 나이는 74세로 큰언니보다 나이가 적으니 그냥 언니로 부른다. 언니는 갑상선암인데 얼마 전 수술을 하고 지금은 퇴원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모여 앉은 우리는 시나브로 함께 수다를 떨며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부부라는 것에 대해, 자녀와 잘 지내는 법, 혼자 잘 살아가는 법, 돈을 관리하는 법. 어떻게 잘 죽을지, 등등 오히려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웠던 속내까지 진솔하게 주고받았다.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언니들과 얘기하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좋은 사람들과 수다를 떤다는 게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가를 실감하면서.
(어쨌든 가져간 책은 퇴원할 때까지 모두 완독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