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거의 트렌드가 된 듯하다.
요가를 하고 나서도, 자신을 안아 주고
쓰담 쓰담하며, 사랑한다고 자신에게
말해 주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관념적이거나, 아니면
형식적인 제스처로 생각될 수도 있다.
혹은 사랑하라는 말이, 예뻐하라거나
아껴주라는 말로 뒤바뀌어 인식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과, 예뻐한다는
것과, 아껴준다는 것에는 조금씩
다른 뉘앙스가 있다.
말하자면, 사랑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그냥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사랑이다. 예뻐한다는
것은 생김새와 하는 짓이 마음에 들 때
라는 조건이 잠재해 있다. 아낀다는
것은 그 사람의 좋은 점이 사라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예뻐하거나 아끼는 마음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어떤 경우에도 변치 않는
불변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부모의 사랑과 같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서 조건을 붙이지
않는다. 부모의 눈에 아이는 존재 자체로
사랑스럽다. 아이가 울면 우는 모습도
사랑스럽고, 아이가 넘어져도 귀엽다고
웃는다. 아이가 자라면서 떼를 써도,
떼쓰는 모습도 사랑스러워
달래주고 얼러준다.
그러므로,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스스로 자신의 부모가 되어, 부모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살다 보면 넘어질 때도 있고, 슬퍼서
울 때도 있고, 괴로워서 화를 낼 때도
있지만, 그럴 때 스스로 자신의 부모가
되어 사랑으로 자신을 감싸안는 것,
자신을 못난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잘 될 때나, 힘들 때나, 실패했을 때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