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발 그리고 도착
타인을 돕는다는 것은 선한 일이지만 그 대상이 먼 타국의 사람들이라면 더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월드비전이 후원하는 아이들을 촬영하기 위해 지난 겨울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탄자니아는 몇 차례 다녀왔지만 가는 길은 늘 멀고 험하다.
이코노미석의 빡빡한 공간에서 밤 비행에 시달리며 10시간 넘게 날아 중동에 도착했지만, 대기를 거쳐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또 다시 몇 시간을 하늘에서 보내고 나서야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공항에 도착했다.
안도와 피로가 교차하는 순간 동북부에 위치한 카라투까지는 차로 꼬박 하룻길이란 것을 인지한다. 바로 목적지를 향하지 못하고 주변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새벽에 이동하기로 한다. 호텔에 도착해서 샤워기의 따듯한 물에 몸을 맡기는 순간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 허물어졌다. 심연의 바닥으로 추락할 것만 같은 몸뚱이를 포근한 침대의 매트가 감싸 주었다.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칠흑같은 아프리카의 밤이 깊은 꿈결로 인도해 주었다.
하늘과 길이 만나는 곳
# 다시 출발
다음 날 새벽, 가도 가도 지평선인 초록의 대지와 뭉게구름이 가득한 하늘이 도심에 찌든 나를 황홀함으로 이끈다. 촬영 본능이 발동하여 광활한 자연을 향해 연방 셔터를 눌러보다가 이내 포기하고 만다. 카메라를 통해서 담아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나의 두 눈과 호흡으로 그냥 느끼고 기억할 뿐이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촬영할 대상 가정이 대략 추려져 있지만 그중에서 방송에 적합한 가정을 정해야 했다. 각 가정을 방문해서 환경을 살피고 인터뷰를 나누었는데, 하나같이 안타깝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한 가정만을 정해서 영상에 담아내야 하니 탈락시켜야 하는 가정이 눈에 밟혀서 마음이 무거웠다.
‘누구의 가난과 불우함을 선택해서 구제한다는 말인가’
그래도 마음의 냉철함을 유지하고자 했다. 한 가정이 그 대표성을 띄고 TV에 나오는 것이고, 나머지 가정에도 그 도움의 온정이 흘러가도록 영상물을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렇게 어려운 선택을 마치고 스텝들과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프리카의 난민캠프와 피그미의 토굴에 이르는 기가 막힌 가난을 많이 보아왔던 터라 웬만한 빈곤이 가슴 아프게 와 닿지 않는다. 그럼에도 해발 2000미터의 높이에 얼기설기 나무를 엮어 흙으로 벽을 발라놓은 나지막한 집들을 보면 말문이 턱 막혀 버린다. 지금이 원시시대도 아닌데 마른풀에 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만들고 매운 눈을 닦아 가며 입으로 불씨를 불며 살려내는 모습엔 가슴이 메인다. 그렇게 피어난 매캐한 연기가 집에 그득 차서 송송 뚫린 벽틈이 외부와의 공기를 순환시켜 줄 뿐이다. 그 벽 틈이 신선한 공기를 주입해 주지만 밤이면 바로 차가운 공기로 가족들을 추위에 떨게 만드는 구멍이 된다.
# 어구스티노와의 만남
5남매 중 맏이인 15세 어구스티노가 동생 둘을 데리고 물을 길러 가는 곳은 10여 리 넘게 떨어져 있다. 폐타이어를 재활용해서 만든 허름한 샌들일망정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황량한 광야와 같이 마른 길을 걸어 정글 숲을 지나니 너른 사막과 같은 모랫길을 만났다.
언젠가 경비행기를 타고 케냐의 상공을 낮게 날며 보았던 말라 버린 강줄기의 흔적이었다.
물이 마르자 인위적으로 강바닥을 파서 만들어 놓은 웅덩이가 보였다.
맑은 옹달샘을 기대했던 나의 희망은 이내 허물어졌다. 보기에도 누렇고 탁한 오염된 웅덩이였다. 이것을 식수로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이 솟구치는 순간 어구스티노와 동생들은 서슴없이 물을 휘져서 통에 담기 시작했다.
주변 물가의 모래 위에는 소와 염소의 배설물로 뒤범벅이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갈증을 채워야 하니 이곳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다. 동물들은 멀리서 온 김에 온몸의 찌꺼기를 배설해서 최대한 많은 물을 섭취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다.
아프리카에서도 산속이나 땅속 깊이 파낸 웅덩이에서 물을 어렵게 구하는 것은 보았지만, 이번 풍경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한 시간을 걸어서 얻는 물이, 강바닥을 파서 모아 두었다는 물이, 한눈에 봐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누런 똥물이라니, 그냥 말문이 막혔다. 자신들의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 방울이라도 흘릴까 조심하며, 휘청거리며 머리에 이고 걷는 아이들. 그들도 이 물을 바로 먹을 수 없어서 거르고 끓여서 사용하고 되도록 설거지와 빨랫물로 활용한다지만 말문이 막히는 아픔이 몰려 왔다.
오늘 촬영을 마치면 우리 일행은 숙소로 돌아가 깨끗한 온수로 샤워를 할 것이며 안전한 생수로 실컷 목을 축일 것이다. 시간이 된다면 호텔 내의 야외 풀장에서 수영을 즐길 수도 있다. 그런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다.
# 어구스티노의 또 다른 목마름
어구스티노는 초등학교 7년을 마치고 지금은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있다. 중학교 진학을 위한 시험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두 동생의 초등학교 등굣길에 어구스티노도 함께 집을 나섰다. 동생들을 교실에 보내고 한 동안 시선을 고정해서 수업 중인 동생들과 선생님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교실은 그야말로 콩나물시루다. 교과서 구입이 버거운 아이들은 책을 가진 아이들을 중심으로 서넛이서 함께 책을 본다.
탄자니아국기 모양의 교복을 마련한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의 모습이 뒤섞여 있다. 집에서는 거렁뱅이 복장이라도 교복을 입으면 그래도 봐줄 만한 아이들인데 예전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새로 바뀐 교복을 여전히 사 입지 못한 아이들이 섞여 있다.
이 학교는 도심의 학교가 아니어서 가난하다. 학부모들이 급식비를 낼 여유가 없어서 학교에서는 점심을 제공하지 못한다. 저학년은 오전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니 별 문제가 안 된다 하더라도 고학년은 점심을 먹으로러 집으로 돌아간다. 집이 가까우면 모를까 몇 키로를 걸어온 아이들이 집에 가면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곤 한다. 집에 점심 먹거리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침도 끼니를 거르고 간 아이들이 겨우 집에 와서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힘이 없는 것이다.
물도 기르러 다니고, 장작도 구해 와야 하고 해야 할 일도 많으니 중학 시험에 통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 가정을 해체하는 가난
어구스티노는 이날 저녁 이웃에게 옥수수가루를 얻기 위해 빈 바가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 말로만 들었던 구걸이라는 단어와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발걸음을 나도 처음 목격하게 되었다. 일상이 된 구걸에서도 나눌 음식이 없어 이웃에게 거절당하는 순간을 맞았다. 취재진도 따라가니 당연히 먹을 것을 나눌 것이라는 기대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나는 충격을 받았고 이웃들도 정말 가난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몇 집의 문을 두드리고서야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 저렇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탄자니아는 나라가 커서 국민들에게 일정한 땅을 분배해 준다고 했다. 어구스티노네도 제법 넓은 땅에 농사를 짓는다. 그런데 문제는 농업 생산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옥수수를 심지만 강수량이 워낙 적어서 소출이 나지 않는다. 하늘만 보고 농사를 지어야 하니 굶어죽기 십상이다. 아버지인들 자녀들을 버리고 외지로 떠나고 싶겠냐만 변변한 일이 없으니 고향을 떠서 도시로 나가게 되고, 보란듯이 성공해서 다시 돌아온다는 건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낮다. 아버지가 떠났고 가난에 시달리던 어머니도 집을 나갔다.
점점 나이 들고 쇠약해지는 할머니와 아이들의 고모가 그렇게 한 집에 모여 살아가는 중이다.
해발 2000미터에서는 하늘이 그렇게 가까울 수가 없다. 구름이 머리 위와 수평으로 펼쳐진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빛과 뭉게구름이 형언할 수 없게 아름답고 푸르다. 진흙 빛 땅은 어찌나 강렬한지 카메라에 담으면 색상이 살아서 움직인다.
진창이고 구불부불한 길을 지나 황토로 닦여진 길을 따라가면 아스팔트로 닦여진 넓은 길을 만난다. 나는 여전히 닦여지지 않은 황톳길을 좋아하지만, 만약 이 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는 날이 있다면 그것은 중국의 기술과 노동자들이 구축한 것일 게다. 그 길을 따라 엄청난 중국의 물자가 뿌려지고, 아직 생산기반을 갖지 못한 아프리카는 앞으로도 여전히 생산해 내는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대륙은 유럽에 의해 마음대로 나라와 국경선이 그어졌다. 같은 나라와 민족들이 동강나기도 했고, 적대적인 민족이 한 나라로 편입되어 살아가게도 되었다. 한국과 일본을 중국과 한국을 같은 나라로 묶어서 살게 했으니 아프리카 독립 이후에 나라와 종족 간의 싸움이 끊이지 않는 요인이다.
길과 철도도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놓여졌다. 유럽 사람들이 해안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에 들어와서 주요한 지하자원과 광물과 사람 노예를 실어 나르기 편리한 방식으로 길과 철로를 놓았다.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식이 아닌 무작위적이고 약탈에 편리한 방편으로 개발되었다.
어구스티노의 집
# 커피 맛이 쓴 이유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장터로 어구스티노의 가족들을 초대했다.
한국에서 간 사람들이 이 가정에 필요한 것을 사주고 싶은 마음에 가족들을 부른 것이다.
너른 장터에는 곡식에서부터 옷과 주방용품에 이르는 다양한 물건으로 즐비했다. 한국에서 버려지는 모든 물건과 옷가지들이 이곳에 놓여지기만 한다면 모두가 날개 돋친 듯 팔릴 것이다. 아프리카 내륙까지 공산품이 운반되어서 온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물류비가 들어가는 과정이기에 제품의 값은 비싸다. 구제조차도 퀄리티가 낮지만 이들에게는 값싼 것이 아니다. 대체로 중국에서 만들어진 의류와 용품으로 가득하다.
아프리카에서 생산해내는 것보다 중국의 제품이 싸게 들어온다면 아프리카 내부의 생산이 발전할 리 만무하다.
아프리카 현지 스텝들과 커피농장에 들렸다. 한눈에 보이는 지평선까지의 모든 땅이 커피나무다. 작은 묘목에서 다 자라난 커피나무에서는 커피 열매가 어여쁘게 달려 있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까지 물 호스가 연결되어서 자동으로 물을 뿌려주고 제어하는 장치가 달려 있었다. 커피농장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수작업에는 여성들이 투입되었고 30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곳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유럽인들의 기호에 맞춰서 티를 생산하다가 점차 커피로 바뀌었다. 현지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맛은 감히 기성 커피전문점의 맛과 비교할 수 없다. 스타벅스는 문화를 마시는 공간이지 커피 맛이 좋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이 농장의 넓은 풍경을 바라보며 갓 볶아 내린 커피의 그윽한 향을 즐겼다. 그런데 현지의 아프리카 스텝들은 커피를 즐기지 않고 티를 마셨다. 나는 커피 맛이 좋지 않냐는 우문을 날렸고, 그들은 이 커피는 외국에 수출하는 것이지 우리가 마시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순간 머리칼이 쭈뼛 서는 부끄러운 감정이 일었다.
우리도 과거로 조금만 돌아가면 질 좋은 해산물과 어류는 선별해서 바로 외국으로 수출했던 때가 있었다. 최고 상품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해외 부자나라 누군가의 것이었던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지불한 5불이 그들에게는 일주일을 살아갈 식료품 값보다 더 나간다는 사실을 깜빡했던 것이다.
그날 시장에서 그 집에 필요한 한 달치 분량의 식량과 아이들의 옷과 주방용품 등을 사 주었다. 어렵더라도 꼭 학업을 이어가서 배움의 힘으로 가난을 몰아내기를 기원했다.
농사에만 의지해서 살 수 없는 상황이기에 어린 암염소 두 마리도 선물했다. 암염소는 금방 자라서 새끼도 낳을 것이고 젓도 생산해 낼 것이다. 그러면 이것을 통해서 음식도 바꿔 먹을 수 있고 미래를 기약할 수도 있다. 일용할 양식이 오늘을 버티게 한다면 교육은 미래를 꿈꾸게 하는 힘임을 믿는다.
우리 일행은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도 들려서 학용품과 축구공을 선물하며 선생님과 학생들을 격려했다. 어렵더라도 학업을 잘 이어갈 것을 당부했다. 학업을 멈추면 삶이 더 비참해진다. 공부를 이어가면 그래도 더 나은 미래를 나 나은 희망을 꿈꿀 수 있다. 이것은 개인만의 상황이 아니다.
키가 큰 선인장나무
#다시 만난 그 아이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2년 전에 촬영했던 아이의 집을 방문했다. 다리가 불편해서 학교에 못 나가고 남동생을 돌보던 여자아이 마리아의 집.
주머니에 있던 우리 돈 1만 원 가량의 현지 화폐로 음식물을 샀다. 감자와 양배추 양파와 바나나를 두 손 가득 움켜쥔다. 우리나라에서 10만원 정도의 물건을 산 것 같은 돈 가치의 마술에 놀란다.
기억을 더듬어 산꼭대기 집을 찾아간 현지 스텝 콜럼바니의 기억력이 놀랍다. 이젠 네비 없이는 길을 나서기가 힘든 나와 대비되었다.
동생들은 부쩍 자라 있었다. 다리를 절던 아이는 폐렴에 걸려 다른 공간으로 격리되어 있었지만 나를 알아보고 반가운 눈빛만을 교환해야 했다.
다 허물어져 가고 구멍이 송송 뚫려진 오두막은 제법 흙으로 벽을 둘러쳐 모습이 번듯해 있었다. 부엌도 공간을 따로 둬서 밥 지을 때의 그을음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한국에서 도움을 준 덕분에 염소도 눈에 띄고 옥수수도 자라고 있었다. 무엇보다 집 나갔던 부모가 돌아와 다시금 자녀들을 건사하고 있었다. 감사했고 고마웠다. 이 가정을 회복시킨 모든 이의 마음 씀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가장들이 집을 나서 타지로 나간다. 벌어먹을 것이 없어서 떠난 도심에서 염소 한 마리를 사서 다시 귀향할 꿈을 꾸지만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오지도 못하는 처지가 된다. 그래도 이 집은 염소 한 쌍으로 인해 집나간 부모를 다시 불러들였다. 살아갈 소망이 생긴 곳에는 다시금 행복이 피어나는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와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편집을 마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계절이 뒤바뀌는 것과 시차로 인한 피로감도 있었지만, 아프리카의 가난과 아픔을 어떻게 하면 시청자에게 더 잘 전할까 하는 고민이 깊어졌다. 편집을 위해 다시 보는 영상 속에서도 흐르는 눈물을 감추며 냉정을 잃지 안으려 애썼다.
마음을 다잡고 엉덩이를 붙여서 한 땀 한 땀 그림을 이어 갔고, 마침내 내 손을 떠나
음악작업에 작품의 감동을 맡긴다.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원두를 갈아 뜨겁게 물을 내렸다.
향을 맡고 한 모금 음미하며 주방으로 향한다.
개수대에 쌓인 그릇을 보며 물을 내린다.
시원스럽게 물을 뿜어내는 수도꼭지를 한동안 희한한 듯 내려다본다.
세제를 묻혀 그릇을 닦지만 물을 세차게 틀어놓지 못한다. 내가 닦아놓은 그릇들이 미끈거리고 찜찜하다는 아내의 핀잔에도 나는 물을 물쓰듯하지 못하며 설거지를 한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온다는 사실은 기적 같은 축복이다.
내 몸을 해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애써 구하고 마셔야 하는 누군가의 일상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이렇게 정결한 물이 그들의 대지를 적실 수만 있다면’
흥얼거리는 콧노래와 즐거운 상상을 곁들이며 말끔하게 그릇을 닦아 낸다.
https://www.youtube.com/watch?v=-t_9Jc8lj6A 7000미라클 탄자니아편 1
https://www.youtube.com/watch?v=1n_7NwjCPII 7000미라클 탄자니아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