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세계로

안방에 감금되었으나 자유합니다

by 준구

코로나 확진 하루 평균 3~5십만을 오가는 수치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목이 조금 따끔거리고 콧물이 나오는 게 영락없는 환절기 감기인 듯한데 세월이 하 수상한지라 자가검진을 안 해볼 도리가 없었다. 딸의 성화에 못 이겨 스스로 코를 후비며 진단해본 결과 염려는 바로 현실로 드러났다. 선명하게 나타난 빨간색 두 줄.

더욱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아서 동네 병원을 찾아가 신속항원 검사를 받았다.

10여 분도 지나지 않아서 결과가 나왔고 양성 판정에 따라 5일 치의 약도 처방받았다.

병원에는 검사비로 5천 원을 지불했고 약국의 약값은 무료였다.

코로나 예방 접종을 3차까지 맞았기 때문인지 몸은 크게 아프지 않고 목이 좀 불편한 정도였는데, 약을 먹고 자고 나니 바로 개운해졌다.

안방에 격리하면서 이후 5일간의 스케줄을 취소하고 어제 함께 했었던 사람들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서로가 조심하고 스스로를 돌보아야 하는 시절을 맞이한 최소한의 예의 과정.

아들은 학교로 떠나보내 놨으니 안심인데, 며칠간은 수시로 문 앞에 끼니를 준비해 주어야 하는 아내와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둘 다 학교에 가고 직장도 나가야 하니 내가 빨리 완쾌되는 수밖에……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린 지 한 달이 넘었다.

이렇게 긴 인터벌을 둔 적은 없었지만, 그 한 달이라는 시간에 대한민국 역시 거대한 파고를 넘겼다. 빨강과 파랑의 첨예화된 힘겨루기 한판이 끝나고 쓰나미인 듯 폭풍우인 듯한 변곡점은 승리와 좌절, 도취와 상처, 허무 등의 파장을 남기고 사라졌다. 나 역시 이러한 파동에 무관치 않았고 성찰하며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역사는 진보만 하지 않는다”. 멈춰 서기도 하고 퇴행하기도 하지만, 결국 역사발전의 법칙은 유수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 관철될 것이라 믿는다.


코로나로 인해 6개월 만에 집에 돌아온 아들과 2주 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어느 때 보다도 깊이 있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어려운 말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았고

직선적이고 논리적인 표현을 애정에 담아 이야기했다. 대안학교에서 고2 과정에 들어가는 아들은

엄마 아빠의 말을 경청해서 들었다. 우리의 논리와 자신의 논리의 대립점을 보았고 다름을 읽었으며 수용하는 자세도 취했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쉬운 일이다. 그래서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건강한 것이지만 기왕이면 그런 가치를 제도화해서 살고 있는 사회를 보고 배우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마이클 무어의 “다음 침공지는 어디인가”를 함께 보았고, 도심에서 공동체 사회를 이루며 사는 사람들의 다큐멘터리도 보여주었다. 김누리 교수의 강의도 함께 시청했고 교육과 의료가 상품이 아닌 공공제로서 작동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알려주었다.


사람 하나하나가 귀해서 비교하지 않고 등수를 매길 필요도 없는 사회.

국가가 대학을 관장해서 고르게 수준을 높이고 학문의 깊이가 있는 사회.


지난 두 주 간은 마포구의 청년들을 만나서 영상제작 교육을 진행했다.

몇 명과 나눴던 서로의 진솔한 이야기에 마음이 아렸고 따스하게 더 덧붙여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속내를 보이며 담담히 말하는 용기 앞에서 우리는 동시에 분노와 저항, 공감과 치유라는 뭉클함을 느꼈다.

마지막 강의 시간엔 내가 점심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그게 내일이었는데, 이런 뜻하지 않은 코로나라니……


빨리 완쾌되어 다시 청년들을 만나야 한다.

올 가을엔 아들과 함께 유럽을 거닐 꿈을 꿔본다.

영국의 브루더호프를 시작으로 프랑스의 떼제와 독일의 디아코니아 스위스의 라브리를 거쳐

북유럽으로 흘러들어 간 루터란의 개혁주의적 정신을 추적해보고 싶다.


안방에 갇힌 나의 육신과는 다르게 나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다.

뜻하지 않는 휴식의 시간에 상상의 나래는 더욱 높이 날아오르는 중이다.



사진 : 수락산 둘레길의 소원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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