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부터 학교는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1년 3학기의 두 번째 텀을 마치면서 전국적으로 2주간의 시험 시즌에 접어들었다.
하루 두 과목씩을 치러내는 시험은 9시에 시작해서 11시에 마치고 잠시 쉬었다가 12시에서 2시까지로 이어진다. 평소의 아침이라면 8시까지 등교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오리걸음을 시키거나 벽을 바라보게 하는 교육적 체벌로 즐거운 볼거리를 만들지만 오늘은 그런 들뜬 아침과는 사뭇 다르다.
시험지와 답을 써낼 A4용지를 들고 해당 반으로 이동했다.
첫 시간은 수학시험이라 전자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학교자체의 시험은 1시간 안에 문제를 푸는 것이지만 전국단위의 시험은 2시간 분량의 문제가 제출된다. 공부를 잘하거나 못 하거나를 떠나 진 빠지는 집중력이 요구되는 순간이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 몇몇 학생은 내게 필기구를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지난번에도 이런 아이들이 있었는데 돌려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이에 응해서 파란색 볼펜을 건네주었다. 마킹은 대체로 파란색이나 검은색 볼펜으로 표시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답을 써 내려가는 A4용지가 더 필요하니 추가로 달라는 표시를 한다. 앞뒤로 문제풀이를 써내려 가다 보면 용지를 3~4장씩 채워가기 일쑤다. 이곳의 문제는 수학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이 주관식이라 찍어서 맞힐 수도 있는 객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시간 동안 답 한 장을 채우지 못하는 아이도 있고 4~5장씩 빽빽하게 문제를 풀어가는 모범생들이 존재한다. 사이사이에 학년을 섞어 앉혀서 부정행위를 막지만 주관식 서술을 커닝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30여 명이 시험을 치르는데 A4용지 120여 장이 금방 동이 나서 다시 교무실로 가서 용지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재미난 것은 전자계산기도 귀하다 보니 이를 가진 친구가 다 사용했다 싶으면 앞이나 뒤에서 이를 빌려서 사용하고 다시 가져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도 빌리고 각도기도 서로 빌려 쓰면서 시험을 치른다. 그런 행위를 통해서 부정을 공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마저도 갖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배려로 통용된다.
두 시간 동안 적막이 흐르는 교실에는 사각거리는 펜글씨 소리와 경쾌한 두뇌 회전 또는 좌절과 고뇌의 파장이 혼재되어있다.
300여 명이 조금 넘는 우리 학교의 학생 비율은 대체로 여자가 3 남자가 7의 비율인 것 같다. 물론 컴퓨터, 어카운팅, 미디어과 별로 조금 다른 성비를 보이지만 통상 그렇게 보인다.
아이들의 머리는 남녀를 떠나서 짧은 곱슬머리 스타일이다.
아침저녁의 등하교 시간에는 교문 앞에서 가방검사를 받는다.
담배나 술 흉기 등을 소지하면 안 되기 때문이고 노트북이나 카메라 같은 학교 장비가 도난되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검색의 일상화는 우리 학교만의 시스템은 아니다. 모든 공공기관과 큰 건물을 출입하려면 거치는 통과의례와 같다.
아무튼 두 시간을 꼬박 집중해서 문제를 푸느라 애쓰는 아이들을 보니 짠하고도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주간의 시험을 마치면 이 친구들에게 소중한 펜 하나와 노트 하나 씩이라도 선물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에 잠긴다. 오늘 시험에는 두어 명의 결시생이 있었다.
학비를 내지 못하면 시험 볼 자격을 주지 않겠다던 교장선생님의 지난주 당부가 생각났다.
부모님에게 알리거나, 정당한 이유를 말하거나, 지급 계획을 세워서 면담을 요청하라고 했는데,
이도 저도 안 되는 아이들이 결석을 택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학생 중에는 ( )% 안팎의 비율로 AIDS 보균자라는 학교 관계자의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교사의 경우 채용 절차에서 신체검사를 통과해야 해서 보균자가 없지만 교직원과 학생은 대체적으로 위의 비율이라는 얘기다.
약을 꾸준히 먹고 음식을 잘 섭취하면 하등의 이상을 보이지 않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다. 학생들이야 부모로부터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경우(모자감염)이니 더욱 안타까움이 크지 않을 수 없다.
긴 시간의 시험 동안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려니 내 마음에 여러 가지 상념과 소원, 바람과 염원이 스쳐 지나가는 중이다.
내가 이곳에 서 있다는 것에 대한 의미와 각오를 되새기게 된다.
뱀의 지혜로움과 비둘기의 순결함으로 지식과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순간, 두 시간 동안 시험을 치르고 있는 것은 저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P.S: 위키백과 2016년 통계는 르완다 성인인구의 3.10%를 AIDS 감염자로 집계하였고
코로나 이후 더욱 확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비공개 추정치는 두자리 숫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