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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기만성온달이 May 15. 2020

딸과 함께한 출근

코로나로 인한 딸의 소소한 일상

외할머니댁에 맡겨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아이의 표정에도 지친 기색이 번졌다.

학교가 문을 닫아 집과 지인의 돌봄에 전전한지도 3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중학생인 오빠는 스스로 자기 앞가림을 한다고 해도 초등 3학년인 딸은 아직 세심한 돌봄이 필요하다. 

요 며칠 동안은 어쩔 수 없이 딸아이를 데리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어른들의 일터에 딸아이를 동반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주변의 이해가 필요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넉넉한 이해의 눈빛으로 아이를 맞아 주었다. 이럴 땐 몇 명 안 되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더 편안하다.     


차를 몰아 사무실로 향하는 동안 딸은 나의 옆자리에 앉아 쉴 새 없이 입을 열었다. 아빠인 내가 심심할까 봐 그러는 건지 나름 들뜨고 신이 나서 그런 건지 계속 궁금한 것들을 풀어놓는다. 

“아빠 저기 간판에 고시원이라고 쓰여있는데 고시원이 뭐예요?”

“응 그건 처음엔, 집중해서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이용했던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저렴한 가격으로 

살려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작은 방이야. 생각보다 매우 좁은 집이지."

"아!  그런데 아빠  앨리스는 뭐애요?"

"응? 앨리스?"

"아! 알렉스였나? 아..... 안락사요?"

어디선가 들었던 내용을 떠 올린 것 같았다.

"응! 안락사는 사람이나 동물이 질병 등으로 인해서 고통이 너무 심하고, 다시 소생할 가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 편안하게 죽음을 맞도록 해주는 거야"

"아! 그렇구나. 그렇다고 그렇게 죽도록 놔둬도 되는 거예요? "

"음..... 거기서부터는 안락사를 둘러싼 서로 다른 입장이 존재하지....... "    

“그런데 아빠! 엄마 가족은 0명이고 아빠 가족은 0명인데, 마음먹으면 원하는 숫자만큼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거예요?”

“어....... 엄마랑 아빠가 서로 협의해서 적당한 수의 자녀를 계획하는 거지, 꼭 그대로 되지 않기도 

하지만 말이야......"


남녀가 사랑하면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을 알았고, 여자나 남자가 2차 성징을 통해 몸이 변해간다는 사실도 이해한 것 같았다. 차에서의 대화가 아니라면 더욱 쉽게 딸아이의 이해를 돕고 싶다는 생각과 더불어 아이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흐뭇함으로 밀려왔다.  

   

엄마 아빠가 없는 사이에 오빠는 동생에게 라면 끓이는 법과 계란 프라이하는 법을 가르친 모양이다. 아침이면 자기가 프라이를 해주겠다며 가스레인지 앞으로 다가갔다. 작년까지는 슬라임으로 놀더니 이제는 제법 음식 만드는 것에 관심을 두고, 화전을 함께 만들고 혼자 국자에 설탕을 녹여 뽑끼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가스레인지의 불은 뜨거우니 특별히 주의할 것을 당부하며 엄마 아빠가 지켜보는 데서만 사용하게 했지만, 이내 불과 칼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날도 멀지 않은 것만 같다.   

  

달고나 뽑기 , 텃밭 가꾸기, 화전 만들어 먹기


사무실에서 일찍 퇴근하는 길에 딸과 함께 수유시장에 들러 장을 봤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사고, 딸아이의 요구에 따라 살아있는 전복을 10마리 샀다. 상인이 골라 담아도 된다는 말에 아이는 크고 튼실한 놈을 하나씩 낚시하듯 집어냈다. 녹두전과 구운 김, 따끈한 어묵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딸은 자기가 요리를 한다며 나에겐 전복을 손질만해서 주방에 놔 달라고 부탁한다. 유튜브에서 뭘 봤는지 6마리는 찜을 한다고 하고 4마리는 버터구이를 한다고 했다. 

코웃음이 나왔지만, 나는 아이의 요구대로 전복을 정성껏 손질하고 숟가락으로 잘 도려내서 내장을 따로 발라내었다. 딸이 보여주는 유튜브를 따라 하니 손질은 크게 어려운 것이 없었다. 살과 내장을 잘 도려내서 딸의 조리를 도왔고, 딸이 스스로 하게끔 놔뒀다. 불을 다루는 것과 칼을 쓰는 일만 내가 했다.     


딸은 엄마의 퇴근에 맞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까지 호출해서 함께 식탁에 앉게 했다. 장 봐온 음식과 요리가 상위에 놓이니 제법 근사한 상차림이 펼쳐졌다. 시장이 반찬이었고, 고사리 손 딸내미의 마음이 얹힌 전복은 찐 것은 찐 것대로 버터구이는 구운대로 입에서 사르르 녹았다. 

코로나 시대에 3대가 함께 밥상을 대하는 일상이 새로운 느낌의 거룩함으로 다가왔다.     


학교를 가지 못하니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야외에서도 맘껏 뛰놀지 못하는 갑갑함 속에도 아이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나 처음 경험하는 이 두려움을 속히 극복할 수 있기를......... 

음식을 나누고 맛보며 대화하는 중에도 어둠은 짙게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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