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청년이 되었고 장년들은 한때의 젊음과 다시 마주했다
동일한 공간을 찍은 이십여 년 전과 현재의 모습엔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그때는 산기슭 아래 잡초만 무성하던 돌짝 밭이 지금은 평평하게 일궈지고 그 토대 위에 건물이 들어섰다. 그들은 이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경기 북부 서울 외곽지역을 바지런히 돌아다녔고 지금의 포천 가산면 산자락에 자리 잡았다.
첫 삽을 뜨는 기공식 행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서울에서 오전 예배를 마친 교인들이 여러 차편에 나눠서 현장에 도착했고 건축에 힘을 모은 사람들 역시 자리를 빛냈다. 이런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나는 회사 장비를 빌려와 촬영하며 기록했다. 그날도 역시 방송 제작용으로 사용하는 6미리 캠코더를 쥐고 그 순간을 포착했다. 영상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은 목소리와 표정 동작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때 그 공간에 함께 있어서 호흡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이제 다시 영상을 보니 그때는 생존해 계셨던 분들이 더는 계시지 않는 분이 눈에 띄었다.
연세가 높으셔서 주어진 생을 다 마치고 돌아가신 분이 계시고, 수를 다하기 전에 질병과 사고로 하늘에 가신 분들도 계셨다. 중장년의 어른들은 20년 전에 싱싱하고 젊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회한에 잠기고, 10대의 소년들은 장성해서 가정을 이룬 시간의 마술을 경험한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뗀 아이가 이제 청년의 때를 맞았으니 어릴 때 자신의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그때는 함께 신앙생활을 했지만 현재는 이런저런 이유로 타 지역으로 옮겨 가고, 다른 교회를 출석하거나 신앙과 멀어진 사람들도 보인다. 아무튼 우리는 그때 그 공간에 함께 있었으므로 필름에 담긴 셈이다. 이십여 년 전이라 핸드폰이 급속히 보급되어 동영상을 남기는 것이 쉽고 흔하던 때는 아니라서 잘 찍은 기록물이 가치롭다. 이젠 하늘에 계신 분들의 생생한 음성과 모습이 담겨 있으니 후손과 가족에게는 얼마나 값진 기념인지.
그런 이십여 년 전의 수고 위에 현재 교회가 세워졌다. 3층 규모의 공간을 완벽하게 갖춘 것은 아닌 미완성의 구조물이지만 우리는 이곳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도심을 벗어나 전원에서 영적인 안식을 누리며 성도 간의 깊은 교제와 신앙의 깊은 성찰을 모색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 공간.
예배를 전 후로 텃밭에 나와 작물을 가꾸고 소고의 열매를 따면서 자연의 풍성한 결실을 맛본다.
애써 수고한 것보다 더 알찬 결실을 수확할 때마다 땅과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현재의 모습은 누구나 소지하고 있는 핸드폰의 동영상으로 촬영했는데 화질은 20여 년 전 방송용으로 사용했던 6미리 카메라의 화소를 월등히 앞선다. 그때는 4:3의 비율이었고 현재는 16:9로 바뀌었고
핸드폰조차 4K의 고퀄리티를 구현할 수 있으니, 기술의 발전은 그야말로 비약적인 것이라 말할 수밖에 없겠다.
같은 공간을 찍었던 현재와 이십여 년 전의 영상을 보면서 마음이 겸허해졌다.
나는 유한한 존재이며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때 그 공간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 모두 건강히 잘들 살아가고 계신지 문득 궁금해진다. 본향으로 돌아가신 분들은 또 그곳에서 평안하신 지,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전해주실 말씀이라도 있다면 무언지 궁금해진다. 기술혁명과 AI 시대에도 기록하고 남기며 성찰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묵상해 본다.
https://youtu.be/yw7b3YZQcg0?si=_1RKXEuKJokq76Ve 전원으로 옮겨간 섬기는교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