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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잉! 오이가 달렸다.

굵고 실하면서 까칠한 녀석

by 준구

일주일에 꼴랑 한번 찾아가는 밭에 팔뚝만큼 실한 오이가 대롱대롱 달렸다. 어찌 된 일인지 대견스럽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한 작물을 대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심어 보라기에 씨 뿌리고 지지대를 박아 줄기를 실로 묶어 주었더니 스스로 타고 올라서 척척 열매를 맺었다. 밭에 자주 나가지 못하는 까닭에 멀칭으로 땅을 덮어 잡초가 자라는 걸 겨우 막아냈더니 이런 실한 소득을 얻게 된 것이다.


더 신기한 것은 아무 멀칭도 없이 씨를 뿌렸던 열무가 한 달 사이에 쑥 자라나 이제 수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쌈채소를 심고 따먹는 재미가 응당 당연한 일이라면 더 긴 시간을 두고 열매를 맺어가는 오이나 가지 방울토마토를 바라보는 마음은 또 다르다. 노란 꽃이 핀 자리에서 오이가 자라난다. 실하게 자라나게 하려면 주위로 뻗어 난 가지들을 잘라 주어야 한다. 그래야 양분이 분산되는 것을 막고 열매를 살찌우게 한다. 길고 굵은 실한 녀석을 4개나 수확했다. 오이는 줄기랑 표면이 까슬까슬해서 쨍쨍한 싱싱함이 전해진다.


오이 옆으론 가지가 자라고 있다. 겨우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로 달려있는데 다음 주엔 역시나 튼실한 놈으로 자라 있기를 기대하며 가지를 쳐주었다. 처음엔 어디가 본 줄기고 어디가 부수적인 것인지 구별이 안 갔는데 이제 대충 짐작이 간다. 상추는 종류별로 잎을 따 줬으니 한 주간의 식탁은 푸르르게 풍성할 예정이다.

하지만 알찬 수확이 있기까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밭을 밟아선 이런 소출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신경 쓰지 못한 사이에 누군가가 애써서 물을 주었고, 야생동물의 습격으로부터 공간을 지켜낸 멍멍이들의 수고가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밤에 외곽 철망을 뚫고 멧돼지 몇 마리가 침입해 들어왔다. 인근 고구마밭을 파헤쳐서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 도망갔다. 아직 열매가 덜 자라서 멧돼지들은 재미를 못봤겠지만 묶여 있던 봄이 와 청남이는 목이 터져라 짖어 댔을 것이다. 어쩌면 두 마리의 쩌렁한 경고 때문에 멧돼지와 노루가 금세 달아났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수확의 기쁨을 누림과 동시에 교인들과 함께 주변 울타리를 다시 정비했다. 벌어진 틈 사이를 철망으로 덧데어서 보강했으니 들짐승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을 게다. 내친김에 블루베리 나무 주위에 그물망을 둘러쳤다. 보랏빛이 더욱 진해지면서 알이 굵어지는 걸 새들이 눈치채기 전에 감싸주어야 우리가 맛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일주일에 한 번 와서 예배 후에 잠시 마주하는 텃밭일지언정 집중적인 땀과 수고를 요하는 땅이다. 다음 주에도 오이만큼 쑥 자라난 가지를 접할 수 있을까? 방울토마토는 푸른빛을 벗고 빨갛게 익었을까? 흐뭇한 상상을 해보면서 도심의 삶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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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토마토와 가지

열매를 수확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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