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위쪽 한인들의 역사-홍범도
책의 시작은 연해주에 살고 있던 한인들에게 전해진 붉은 명령서 한 장에서 출발한다.
3일 후에 러시아 내륙으로 강제 이주를 시행하겠다는 일방적 통보였다. 1937년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주하던 18만의 디아스포라 한인들은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소련 스탈린의 결정을 따라야만 했다.
1910년을 전후로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피해 중국의 만주와 소련의 연해주로 피해 살아가며 겨우 터전을 일군 사람들에겐 벼락같은 청천벽력이었다.
열강들의 힘이 미치지 못한 공백과 같은 사각지대이며 과거에는 고구려의 영향력이 다았고 당시엔 거들떠보지 않았던 땅을 겨우 일구며 소수민족으로서 버텨낸 공간을 일시에 박탈한 것이다.
강제 이주의 명목은 소련의 “적성 이민족”으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책을 읽으며 순간 의아해졌다. 소련에게도 유익을 끼친 홍범도와 같은 항일 독립운동가가 엄연히 존재하건만 우리 민족을 어떻게 보고 이런 죄목을 달았다는 말인가?
일본과 적대적이던 소련은 일본이 우리를 식민화시켜서 조선 백성 역시 일본과 동일시했다.
적국의 복속 국이니 같은 일본이거나 일본에 동조하는 집단으로 간주한 것이다. 만주와 연해주에서 항일운동에 앞장선 조선의 기백을 너무도 단순화시키고 편의적으로 해석했다.
애석하게도, 힘겹게 일군 논과 밭을 아무런 보상도 못 받았고, 애지중지 기르던 황소와 가축들을 남겨둔 체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몸을 실었다. 많은 사람을 일시에 옮기는 군사작전에 해당되었으니 안락한 좌석 칸은 고사하고 허름하기 짝이 없는 짐칸에 사람들을 때려 실었다.
한 겨울의 시베리아 찬 바람에 난방이 안 되는 짐칸에 태워졌으니 살을 에는 칼바람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강제 이주의 목적지도 알리지 않고, 밤낮없이 일주일을 넘기며 달리는 열차는 간이역에서조차 쉬지 않아 굶주림과 배설의 어려움으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노인과 아이들이 처참히 죽어 나갔다.
얼어 죽고 굶주려 죽고 아이를 잉태한 산모는 분만 중에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했다.
소련 당국의 비인간적인 명령에 항의하던 젊은이들은 감시병들의 총탄에 쓰러졌다.
그렇게 10여 일을 달린 열차는 중앙아시아의 눈 덮인 벌판에다 사람들을 떨궈 놓았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토굴을 파서 추위를 피했고, 혹독한 겨울을 굶주림으로 지내면 이 고비를 넘기고 봄을 맞으면 씨앗을 뿌릴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강제이주에 따른 소련의 보상 같은 것은 기대할 처지도 못되었고, 설원을 뚫고 이따금 찾아오는 카자흐 사람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보존해 나갔다. 특유의 부지런함과 근면성으로 무장한 한민족이었기에 척박한 땅과 가공할 추위에서 살아남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 속에는 모진 고난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홍범도 장군의 면면이 기술된다. 초로의 노인으로 힘없이 강제이주 열차에 실려서 끌려가지만 어른의 지혜로 동포들을 이끄는 중심 역할을 했다.
독립운동을 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적성 이민족’이란 카테고리에 묶여 소련의 감시에 놓이지만, 일제의 밀정을 자처하던 기회주의자들은 어느새 주인을 바꿔 소련의 조력자가 되었고 독립운동을 하던 한인들을 심판하는 고문자의 자리에 있었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이런 디아스포라 한인들을 돌볼 겨를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겠지만, 친일파로 득세했던 인물들이 민족의 이름으로 심판 한번 받지 않고 이승만 정부와 친미세력에
빌붙는 판국이니 무엇을 탓할 수 있을까?
작품은 1924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신한촌에서 까레이스키로 태어난 생존자들의 증언이 아니면 알 수 없었던 생생한 역사이기에 더욱 값지다.
오래간만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격한 감정의 요동을 경험하며 책을 읽어 나갔다.
1993년 겨울, 나는 일반열차의 운행을 마친 야심한 밤에 대구발 서울행 열차에 실렸다.
장병 후송 열차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밤에만 움직이는지, 신병들을 태워 소속부대로의 보내는 중이었다. 호송관의 엄포와 한차례의 얼차려 이후 잔뜩 겁먹은 신병들은 창밖을 내다볼 생각은 엄두도 못하고 죄인처럼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열차에 몸을 맡겼다.
정상대로라면 열차 안은 난방으로 훈훈했어야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냉랭했고, 달릴수록 창 사이로 스며드는 칼바람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몸을 엎드려 옆사람과 앞사람의 온기를 의지한 채,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두려움과 추위를 견디며 잠들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 깊은 피로감에 빠져들었었다. 새벽 미명에 도착한 광운대역에서 바꿔 탈 열차를 기다리며, 일반인들의 눈에 띄면 안 되는 존재들은 죄수인 듯 짐짝인 듯 어두운 지하 터널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지척이면 집이었고, 불과 얼마 전에는 자유인이었다는 사실이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지며 부모님과 집에 있는 동생들이 서럽도록 그리워졌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끌려간다는 것과 엄동설한의 추위 속에 던져진 열차 안의 광경이 깊이 베인 상처 같은 공감의 아픔으로 몸으로 전해졌다.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헌신했던 디아스포라 선조들의 삶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역사를 잘 진술하고 기술해준 작가의 노고에도 감사한다.
깊은 울림이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