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endangered values
14년 전에 미국의 교수에게서 선물 받은 책이다.
그는 일주일 간의 특강을 위해 L.A에서 뉴욕으로 날아왔고 비행기 안에서 읽은 내용이라고 했다.
6시간의 비행 중에 가볍게 훑어본 글이었을 텐데, 내가 소화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 셈이다.
생각날 때마다 한 쳅터씩 읽어간 이유도 있지만, 빠르게 읽어 나가기엔 뭔가 깊이 생각하고 음미해야 할 구석이 많았다. 신학대학의 교수인 셔우드 링겐펠터는 우리와 함께 생활한 1달 여간의 시간 동안 꽤나 많은 책을 읽었고, 그가 가져온 수십여 권의 책을 강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선물로 안겨주고 돌아갔다.
그때 내게 어울릴 것 같다며 주었던 책을 이제야 비로소 정독하고 나니 남다른 감회가 밀려왔다.
그가 왜 내게 지미 카터의 책을 추천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내용 속에서 느낌 바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수님이 대통령이라면” 이란 제목으로 번역서가 나와 있었다. 책 제목을 완전히 새롭게 의역하긴 했지만 맥락은 통하는 타이틀이다.
실제로 지미 카터는 그의 임기 중에 인기 있었던 대통령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재임에 성공하지 못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그는 오히려 퇴임 이후에 더 신뢰받는 지도자로 자리 잡아갔다. 세계평화를 위한 정치적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겸허하고 헌신적인 삶을 이어나갔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복음주의적 신앙이 그의 모든 가치를 대변한다.
카터의 신앙인 미국 복음주의는 부시 가문이 기반으로 하는 근본주의 신앙과는 결을 달리하는 것이다. 그는 미국 공화당이 극 보수화 된 근본주의 기독교와의 종교적 결탁에 우려를 표한다.
2001년 9.11 사태 이후의 일방적이고 거만한 미국의 정책들이 UN과 세계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UN의 동의도 얻지 못한 파상적 이라크 공격은 결국 이라크 내의 대량살상무기 없음을 확인하며 명분 없는 전쟁의 상흔을 남겼다.
“네오콘”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위험한 팍스아메리카의 가치가 미국의 근본을 위협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글을 읽다 보면 지미 카터는 신실하고 정직한 그리스도인이란 생각이 든다.
그의 재임 시에도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그를 돌보기 위한 마음 씀을 엿볼 수 있다. 미국 밖의 나라에서도 인권을 강조하며 당시 우리나라 박정희 정권에도 미세하나마 압박의 카드로 작동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미국 내부의 빈부 갈등과 양극화 여성 복지 등의 근본적 문제들을 잘 알고 신앙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해결하기를 원했던 그가 실제 정치에서는 왜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추상적 이념과 현실정치 사이의 괴리였을까?
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개혁이 강력한 기득권 세력에 막혀버린 것일까?'
대통령이란 막강한 권력도 국민이란 그릇의 질적 수위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노릇인가 보다.
그렇다 해도 미국 사회를 바라보는 지미 카터의 지적으로 깊고 냉철한 신앙적 혜안이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미국과 유럽은 질적으로 다른 사회란 점은 분명하다. 갑자기 뜬금없이 유럽과 미국 이라니, 맥락이 없지 않은가? 지금 논하기에는 구구절절하니 글을 맺고 다음엔 함 말하고 싶다.
책을 선물했던 링겐펠터 교수는 아마 독일계 조상을 가졌을 터이고 이제는 대학에서 은퇴하셨을 것 같다. 자신이 읽었던 책을 기꺼이 선물해준 신앙의 선배를 두었다는 것과 퇴임 후에도 존경받는 대통령을 둔다는 것은 흐뭇한 행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우리도 깊은 울림을 남기는 역사를 만들어가기를 소원한다.
셔우드G 링겐펠터 교수의 책